글 소쿠리/자작 동시(35)
-
봄을 파는 시장
봄을 파는 시장 아파트 앞 빈터로 들판이 성큼성큼 걸어 나와 여린 봄 냄새 상큼한 나물 냄새 노랑나비 흰나비 되어 팔랑팔랑 돌아다니고 이른 봄 추위에 솜털 옷 입은 쑥 따뜻한 땅속 입김 가득 담은 동그란 달래 묵은 밭에서 뒹굴다 온 냉이, 씀바귀 겨울 내내 숨어있던 초록 친구들 핼쑥한 얼굴로 손..
2008.06.25 -
대나무 피리
대나무 피리 대숲에는 온갖 바람이 많이도 불지 봄에는 나무의 긴 옆구리를 간지르는 바람 여름에는 댓잎 끝에서 나오는 땀 식히는 바람 가을에는 쓸쓸하게 와서 낙엽 하나 데리고 조용히 가버리는 바람 겨울에는 우우 몰려와서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니다가 간다온다 말도 없이 훌쩍 떠나는 바람 ..
2008.06.25 -
나무 교실
나무 교실 성인봉 길섶 나무 학교 비탈길 올라가서 교문으로 들어서면 얼굴이 검은 곰솔 푸른 이름표를 달고 멀쑥한 키 뽐내며 먼저 달려나와 꾸벅 인사를 하고 울타리 뒤에 기대어 숨는 섬쥐똥나무 곁에는 돌아서서 눈치를 살피는 허리 굽은 말오줌나무가 보이고 섬피나무, 섬단풍나무 정답게 어깨..
2008.06.25 -
학교에 간 강아지
학교에 간 강아지 도대체 우린 어디 가서 예절을 배우라는 말인가 의젓하게 가릴 것은 가리고 살아야지 오늘은 학교에 한 번 가볼까 매끈한 몸뚱이를 살랑대며 방울까지 목에 달고 찾아간 학교 아무데나 들어가고 보자 열린 문틈으로 달려가다 보니 벽이 길을 막고 서서 너 어디 가는데 하고 묻길래 ..
2008.06.25 -
찌그러진 공
찌그러진 공 신나게 통통 튀어 오를 때는 귀엽다고 서로 안아주려고 하더니 바람 빠져 얼굴이 찌그러져서 운동장 가운데로 놀러 나갔더니 보는 아이들마다 이건 뭐야 못 쓰는 공이잖아 발로 툭 차버리니 도랑에 쳐 박혀서 숨이 막혀 헉헉거리다가 개울물을 타고 바다로 가니 둥둥 떠다니며 넓은 세상..
2008.06.25 -
첫 눈
첫 눈 단풍이 떠난다고 인사도 없었는데 은행나무는 노란 옷을 벗지도 않았는데 잎 떨어진 가지 끝에 감이 아직 얼굴을 붉히고 있는데 수숫대 끝엔 잠자리가 여전히 맴도는데 자고 일어나니 들판도 지붕도 하얀 옷을 입었다 앞산의 나무들도 가지에 흰 소매를 걸치고 햇살 아래 손을 흔들고 있다 밤 ..
2008.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