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22. 07:24ㆍ지난 이야기/혼잣말
다시 울릉도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2004년 2월에 도동 부두를 떠나서 육지로 온 지 다섯해 만에 다시 울릉도로 갑니다.
처음 들어갈 때 마흔 넷이었던 저는 어느 사이에 쉰 중반이 다 되어 갑니다.
세월은 참 잘도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처럼 경치 좋은 곳을 찾아 놀러 가는 것이 아니고,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는 승진이라는 꿈을 이루고, 섬동백처럼 착한 아이들과 함께 지내려고 갑니다.
때때로 심술을 부려 뱃길을 막는 동해바다를 우리는 "삶의 바다"라 부릅니다.
파도가 잠잠하거나 고요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성난 파도를 일으키기도 하는 바다를 삶에 비긴 말이기도 하고,
눈앞에 가로놓인 실제 바다가 건널 수 없는 벽으로 다가설 때를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
교직 사회에서는 들어가고 싶다고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도 아니어서,
어떤 이는 한 번 들어가기도 힘들어하는 곳이지만,
또 어떤 이들은 천금을 준다고 해도 근무하기를 꺼리는 삶의 바다를 두 번씩이나 건너서 섬으로 들어가자니 이런저런 생각이 끊이질 않습니다.
자로 재듯이 따지는 능력이 부족하여 대충대충 생각하고 결정하는 저는,
무슨 일이든지 결정을 하고 난 뒤에 제 결정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 심할 정도로 고민합니다.
이전 근무지인 울진고의 아이들은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만큼 순박하고 착합니다.
부족한 제가 4년 동안 늘 웃으며 근무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고마운 아이들과 동료선생님들 덕분이었습니다.
학교의 여러 가지 교육 여건 또한 여유로워서 체육교사로 근무하기에는 그렇게 좋을 수 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이미 깊은 마음의 병이 되어버린 승진에 대한 갈망 때문에,
승진에 대한 별다른 희망이 없어 보이는 육지 근무를 견디어 내기가 힘들었습니다.
승진을 바라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교직 또한 마찬가지로 본인의 노력만으로 쉽게 되지는 않습니다.
경력 때문에 승진서류를 낼 꿈도 못꾸고 있던 제가 25년 경력 만점을 채우고 나니, 지난 해부터 해마다 경력점 만점 기준 햇수가 1년씩 줄어듭니다.
이전에 경력 한 해 차이의 점수는 제가 뛰어 넘을 수 없을 정도로 컸는데 어느 사이에 제가 갖춘 조건이 미약해져 버렸습니다.
농어촌 지역의 학교가 줄어드니 교감 T.O 도 줄어들어서 불과 서너 해 전에 뽑던 인원의 절반도 뽑질 않습니다.
근무 성적 또한 고참들에게 밀리고 치이면서 참고 참고 기다려서 좀 나은 성적을 받을 때가 되니,
격차가 줄어듭니다.
이전에는 근무 성적 평정 기간이 2년이었으므로 경력이 많은 선배들이 당연히 근무 성적을 잘 받는다고 알고 있었고 우리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랬는데 근무 성적 평가 기간이 10년으로 늘어나면서 이제는 후배들이 당당하게 요구를 하고 있어서 저절로 좋은 성적을 받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 밖에도 여러 조건들이 변했습니다.
제가 머피의 법칙을 들먹일 정도로 여러 면에서 운이 따르지 않은 듯 합니다.
거의 승진 폐인이 되다시피했고,
제가 노력한 것에 비해서 돌아오는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번번히 실망하였습니다.
일이 꼬인다고 느끼는 때가 많아졌습니다.
그러니 자연 마음의 병이 깊어졌습니다.
제 탓이라고 소리 높여 외치고 위안을 얻으려고 해도 순간 순간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특히 승진 후보자로 뽑히기 위해 서류를 내는 학년말부터 발표가 나는 두어 달 동안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남들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초조하고, 저를 둘러 싼 여러 여건이 원망스럽고,
지난 날 제가 한 행동이나 결정에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막상 울릉도에 들어갈 수 있다는 발표를 보고 난 뒤에는,
제일 먼저 가족들에게 미안합니다.
승진의 헛된 꿈 때문에 오랜 세월을 가족과 떨어져 지냈습니다.
아이들이 자랄 때는 곁에서 지켜주질 못하고 저 혼자 객지로 돌아다녔습니다.
아이들이 아플 때는 물론이고 기쁜 일이 있을 때도 같이 있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육지에 함께 있어도 같이 지낸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섬으로 들어가면 그나마 함께 지내는 시간이 더 줄어 듭니다.
그래도 처음 들어갈 때 보다는 나은 것이 아이들이 철이 들고 다 자란 것입니다.
그리고 제 자신에 대한 걱정입니다.
결코 화려한 직위에 올라야 성공하는 것도 아니지만,
화려한 직위는 고사하고 끄트머리 자리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성공하려면 자기 절제가 잘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저는 너무 쉽게 분위기에 휩쓸리고,
투박해 보이는 겉 모습과는 달리 유약하여 이런저런 유혹에 잘 빠집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절제력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자주 망가져서 서글픕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 성공보다 절제가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행복해질텐데.......' 하는 반성을 합니다.
마음 먹기에 따라 쉽게 절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랫동안 길들여진 나쁜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서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힘이 들 것입니다.
지난 번에 들어갔을 때는, 술을 절제하려고 마라톤을 시작했습니다.
그 때는 그래도 지금보다 한참은 젊을 때라서 또 나았지만 지금은 조금만 일그러져도 추해지는 나이에 접어들었습니다.
섬에서 지내는 동안 외로움을 견디어낼 방안을 몰색 중입니다.
산에 오르고, 사진을 찍고, 달리기를 계속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전부터 배우고 싶던 색소폰을 한 번 배워볼까 합니다.
마침 함께 근무하게 될 동료선생님 한 분이 그 분야에 조예가 깊다고 하니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것저것 한다고 해도 결코 완벽한 처방이 되지는 않을테니,
먼저 마음을 단단히 다잡야겠지요?
사람의 인연이야 시간이 가도, 섬으로 옮겨가도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발령 소식을 듣고 전화를 해주고, 만나서 격려를 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으니 어느 곳에 간들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겠습니다.
행복해지겠습니다.
섬 아이들과 함께 재밌게 지내겠습니다.
우선은 몇 마디 제 심경을 적은 것으로 섬으로 가는 인사를 대신합니다.
다음 부터는 섬 이야기를 엮어 글과 사진을 올리겠습니다.
내내 행복하십시오.
포항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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