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27. 12:13ㆍ지난 이야기/혼잣말
날씨가 잔뜩 흐리더니 간간이 소나기가 옵니다.
중부 지방에는 어제부터 비가 많이 왔다고 하던데 이곳에는 조금 전까지도 비가 오질 않았습니다.
교무실 창 밖으로 내다보니 오늘은 수평선 부근이 희뿌옇습니다.
아침나절에는 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길래 혹시 오늘도 배가 들어오지 않는가 하고 걱정을 했습니다.
가고 올 일이 없어도
뱃길이 끊기면
육지로 이어진 끈이 끊어지는 듯하여 마음 한 구석이 텅 비어 허전해집니다.
수업이 비는 틈을 타서
현관밖에 나가 도동을 에워싸고 있는 양쪽의 깍아지른듯한 바위 산을 쳐다보는데
2층 음악실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흘러 나옵니다.
"매기의 추억"입니다.
-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매기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매기 내 사랑하는 매기야
동산 수풀은 우거지고
장미화는 피어 만발하였다.
옛날의 노래를 부르자
매기 내 사랑하는 매기야 -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서 아이들이 목청을 가다듬어 부르는 노랫소리가 곱습니다.
어쩌면 이 노래를 듣는 제가 조금 감상적인 기분에 젖어 있어 있고,
그래서 이 노래가 더욱 애잔한지도 모릅니다.
이 노래를 부른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 사이에 저도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백발이 다 되어 갑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음악시간에 하모니카 부는 법을 배웠습니다.
가난하던 시절에 돈 500원은 큰돈이었지만,
하모니카를 하나 사서 즐겨 불었는데 그래도 하모니카는 제가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유일한 악기입니다.
그때 시골 촌놈에게
간단한 악기라도 하나 다룰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신 음악선생님께 늘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백조"라는 값이 싼 하모니카였지만 사춘기의 감성을 달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집 뒤편 산에 소를 먹이러 가거나,
원두막에 홀로 앉아서
학교에서 배운 가곡 "그 집 앞"부터
친구네 집에 가서 레코드로 들었고 손바닥만 한 작은 포켓판 노래책을 빌려서 가사를 빼곡하게 베껴두었던
이른바 뽕짝인 "추억의 백마강"까지,
계이름을 아는 노래들을 서툴지만 두루 불렀습니다.
제가 눈물을 글썽이며 이름을 부르던 저의 "매기"는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고향에 가서 이럭저럭 소식을 물으면 알아낼 수 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매기를 만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제 마음속에만 곱고 순수하던 매기로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오래전 학창 시절에 배운 이래로 즐겨 부르던 가곡을
혼자 있을 때는 가끔씩 불러야겠습니다.
그때 그 눈물 없던 때가 그립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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