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전에서 섬목으로 가는 길 3

2008. 6. 25. 17:13글 소쿠리/자작 시 모음

 

내수전에서 섬목으로 가는 길 3


바다는 제 깊이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서

날카롭게 벼랑을 올려 세워

길을 쉽게 내 주지 않지만

세상살이는 날마다 길을 따라 가는 것

후미진 산길로 가거나

발끝에 닳은 길로 가거나

산자락 안고 더디게 돌아가거나

삶의 들판길을 거침없이 질러가거나 길을 따라가는 것임에

낮은 곳으로 어김없이 내디뎌 닳은

옛 사람의 땀 냄새도 맡고

발자국의 흔적을 살피며 가는 길

그 길은 세월의 이끼에 덮여 숨어있고

나무들마저 드러누워 무심코 앞을 막는 길

헤아릴 수 없는

저 시퍼런

깊은 미궁의 길

산허리를 밟고 지나가는 길

쉽게 자리를 내어준 섬

발걸음 끊겨

잊혀진 길

웃자란 기억

발 밑의 푸른 몸


옛사람 흔적을 밟고 가는

또 다른 흔적이 남는 시간


떠나는 발길 가로막는 저 바다

넘지 못하고 머무는 섬 길

꿈속 같은 길, 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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