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남부선, 기억 속의 길을 가다
2008. 6. 25. 17:03ㆍ글 소쿠리/자작 시 모음
동해남부선, 기억 속의 길을 가다
햇살 거울을 보고 몸단장을 끝낸 부지런한 기차
막 지나가는데도
밤잠을 깬 뒤 화장을 하지 않아
너무 쉽게 드러나는 허접스러운 철길 주변
새벽잠을 깰 때마다 일 저지른다는
고단한 노동의 짐을 져서 등이 굽은 사내 하나
상추밭을 둘러싸고 있는 옥수수 댓잎 사이에 길게 오줌을 갈길 때
오줌발을 피해서 위험하게 철길을 타 넘는 호박 넝쿨
숨찬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벗어난 도시 끝에
기다리고 있는 낯익은 들판
푸른 기억으로 출렁거리고
날마다 바라보던 풍경 속 사물
또 다른 풍경을 보는
이른 아침
조바심을 칠 수도 없이 정해진 길 따라 습관이 되어 가는 길
낮은 습성의 흔적이 고인 늪
바라보기만 하여도 이유도 없이 쓸쓸해지고
타인의 질주를 위해 멈추어 서야 하는
건널목의 붉은 신호등
이제는 잠깐이라도 쉴 수 있어 느긋한 급한 삶의 주행
날마다 내다보는 이 모두 나누어 가져도 넉넉한
잘 다듬어진 창 밖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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