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25. 17:08ㆍ글 소쿠리/자작 시 모음
대성식당에서
비가 비로 이어지는 긴 장마
버스에서 막 내린 습기가 정류장에서 걸어 나와
비탈진 길바닥에 머뭇거리며 번질거릴 때
얼굴 검은 사내 넷
선풍기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실내에서
비에 쫓겨 일을 공치고 낮술을 마시는데
문밖의 바람이 비를 피해 들어오려고 추렴을 사납게 밀어대고
머리의 덜 마른 빗물을 털며 사내들이 해대는 이야기는
대서양 라스팔마스 원양어장 가까운 페루의
차를 몰고 와 이방 사내를 유혹하는 여인의 사타구니 암내에서
영일만 부둣가 대포집 막사발 같은 아낙의 가슴팍 숨어서나던 젖내까지
수만 리 먼 길을 시차도 없이 아슬아슬하게 오고갈 때
무거운 바다를 건져 올리는 일에 단련된 굵은 팔뚝에는
서툴게 새긴 문신 하나
푸르게 바다가 되어 꿈틀거린다
오래 전부터 건져온 몽환의 바다
검은 깊이만큼의 얼룩 되어 벽에서 흐르고
누구도 건너지 못하는 삶의 해연
이야기 속에서는 쉽게도 건너갈 듯
가볍게 부표에 매달려 떠오른다
시간 속에 갇힌 담배 연기
붉은 얼굴에 핏줄 돋는 사내들 이야기에 취해
밖으로 나가기 싫어 꿈틀대고
탁자 위에 엎질러진 술
저절로 이야기를 따라가며 지도를 그릴 때
사내들 옆에 앉아 하품을 물고 있다가
빈 찻잔을 들고 떠나는 다방 아가씨
성냥 몇 개비 부러뜨리며 망가진 삶을 쳐 넣고 온
제 속 다른 삶의 바다를 바라보며 용케도 바다 냄새를 견디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햇살 아래서도 삭지 않은 저 바다
염장으로 보존되는 기억의
몸통 몇 토막 갉아먹는 유월의 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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