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25. 15:24ㆍ글 소쿠리/자작 시 모음
가끔씩 밤 기차 소리를 듣는다
늦은 밤 마른 기침을 하는 창문 밖 어둠의 깊은 속에 함께 갇혀
뒤척이다가 얕은 잠결에 기차 소리를 들었다
뭍에서 떨어진 먼 섬인 이곳에는 철길이 없다
기차는 늘 철길을 따라 다니므로 모래더미가 길게 누워 막고 있는 건너편 바다를 한사코 넘지 못한다
바다 속 깊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제는 한참을 지나온 어느 시절에
저무는 해를 한꺼번에 싣고 떠나는 기차를 따라 가던 철길을 보았거나
따라가지 못한 햇살이 철길 위를 위태롭게 걸어가는 것을 보았거나
그 기차 속에 두고 내린 낡은 기억이 타고 있었지만 그저 바라만 보았거나
고개를 숙였더라도 조금 전에 햇살이 산허리에 비껴간 노을을 보다가 울었거나
그러다가 날마다 잠이 들었거나
한 밤중에 내가 들은 기차 소리는 환청이 아니라 떠나고 싶은 내면의 소리가 시간을 맞춰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는 것이거나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이 먼저 낯익은 역사 앞에 나가 서성거리거나
하루 동안 밀려나지 않다가 마침내 떨어지는 붉은 봉숭아 꽃잎을 바라보다가
떨어지는 꽃잎 하나마다 모두 받아들이는 땅의 어이없는 포용에 몸서리치다가
현기증 이는 유월의 햇살을 피해 그늘 아래 서서 또 다른 세상을 바라볼 때
마른 땅 위에 수직으로 꽂히는 날이 선 빛살은 어찌 그리 날카로웠을까
끝간데 없이 이어지던 철길을 바라보며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던 많은 물음들
- 이제는 박제된 옛 그리움이라도 찾아 나서는가
시간이 정지된 곳이라도 있어 그 곳을 찾아가는가
길을 나선 사람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아 기다림에 속이 타던 초여름의 들판에 수직으로 내리꽂히던 굵은 소나기는 생기를 안겨주고 어디로 갔을까
낯익은 사람들이 모두 길을 나서고
길을 나서서 떠돌던 사람들이 그리운 고장에 조용히 내리면
머물지 못하고 가버리는 기차의 무거운 울음만 남지만
따라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마른 풀 사이로 숨어드는 뱀처럼 여운 긴 꼬리가 남아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기도 하였지
떠나는 것들은 모두 뒷모습을 보이고 사라졌지만 여전히 서성거리네, 이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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