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안으로 들어와 봐

2008. 6. 25. 15:12글 소쿠리/자작 시 모음

 

내 몸 안으로 들어와 봐


뭍으로 나오는 배를 타려고 도동 부두를 빠져나올 때

선착장 모퉁이의 신문 가판대 앞에 서 있던

신문 배달하는 아이 하나

인사를 꾸벅하더니

‘체육선생님은 스포츠 신문’ 하면서

심심풀이로 읽어보라고 내미는

세시간이나 배 멀미에 시달린 기름내 나는 스포츠 신문 한 부


섬에서 벗어나는 일탈의 시간

낡은 옷소매처럼 너덜해진 일상이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 오후

아래층 선실 구석에서 서너 번을 더 읽은

스포츠 신문의 연예란 아래쪽

야한 사이트라고 선전하는 광고에는

반쯤 옷을 벗은 여자 하나

입술을 헤 벌린 채

눈길을 대담하게 치뜨고

내 몸 안으로 들어와

라고 유혹하는 말이 아닌 붉은 글씨

낯선 누군가의 몸 안에 들어서기가

단단한 돌로 된 벽을 뚫고 다가서기 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아는 이들에게

이 유혹은 쓸데없는 짓이지만

단순한 세 토막의 붉은 낱말을 읽고도 이렇게 부끄러울 수 있구나

날마다 드나드는 건물의 입구나

그늘 속에서 나와 성큼 들어서는 햇볕 속이나

고양이가 숨는 덤불 속이 아닌

누군가의 몸으로 들어가는 일이 얼마나 엄숙한 일이고 복잡하여

대단한 준비가 필요한 것인지 알고 있지만

나도 이제 대담하게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


텅 빈 몸 안으로 들어와 봐

섬에 사는 나는 늘 껍데기가 되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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