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얼마만인가 - 진주마라톤 10킬로 참가기

2011. 11. 28. 12:27미련이 남아있는 마라톤 이야기/완주기(마라톤, 울트라)

주말에 진주에 내려가서 진주마라톤대회에 10킬로 부문에 참가를 했습니다. 2007년 8월에 허리디스크 증세로 마라톤을 그만둔 이래로 공식적인 대회 참가는 4년 3개월만입니다.

한창 달릴 때는 출발선에만 서면 별 무리 없이 풀코스를 네 시간 안에 완주할 정도였습니다.

그때는 10킬로는 마라톤이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달리기라고 했지요.

풀코스쯤 돼야 마라톤이라는 말을 갖다붙였지요.

 

그때 달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풀코스 100회 완주가 유행병처럼 번질 때여서,

남들보다 빨리 풀코스 100회를 완주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욕심 때문에,

몸의 상태를 생각하며 운동을 했어야 했는데,

하찮은 욕심 때문에 몸이 쉴 틈을 주지도 않고 무리하게 대회에 참가를 했고,

2007년 8월에,

그 무더운데  1주일 동안에,

11일, 토요일에는 서울마라톤 혹서기대회에,

다음 날인 12일, 일요일에는 강원도 양구마라톤대회,

그리고 광복절인 15일에 포항 오천 해병대 혹서기대회에서 연속하여 풀코스를 달리고 나서 허리가 내려앉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달리는 것은 고사하고,

통증 때문에 걷지도 못하여,

수술을 기다리다가,

냥 견디기로 하고 참고 지내다가 4년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달릴 때는 몰랐는데,

길을 가다가 달리는 사람만 보면 부러워서 한참을 쳐다보곤 했습니다.

 

 

달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달린다는 것이 쉬운 일이 결코 아니기에 차근차근 몸을 만들어 달리는 꿈을 늘 지니고 있었습니다.

9월 초순부터 근무지 근처에서 슬슬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많이 걷고, 가끔씩 짧은 거리를 달리면서,

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했고,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마라톤 용품을 꺼내고,

신발을 새로 사고.......

다시는 불가능할 것 같던 풀코스 완주의 희망을 다시 품게 되었습니다.

 

긴 준비 기간을 거쳐서,

어느 날 한 시간 반쯤을 별로 힘들지 않게 한 번 달리고 나서야 달릴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겨서,

진주마라톤대회와 호미곶마라톤대회에 10킬로와 하프부문의 참가 신청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걷기대회 때문에 많이 걸었고,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다가,

진주대회를 일주일쯤 남겨둔 지난주 화요일부터 느닷없이 허리가 아파서 고통스러웠습니다.

근무할 때 의자에 앉아 있기가 힘들어서 틈틈이 건물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근육이완제를 먹고 허리와 엉덩이 쪽에 파스를 석 장이나 붙이고 기다렸지만 통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서 실망이 컸습니다.

10킬로를 달려야 한 주 뒤에 있는 하프코스에 도전할 수 있기에,

절망적인 상태였지만 드러내 놓고 아프다 소리도 하지 못하고 집사람 몰래 약을 먹고,

파스를 붙였습니다.

 

금요일 저녁에는 조카의 사무실 개소식 축하잔치에 갔고,

토요일은 다시 처가 집안 일로 거제까지 운전을 해 갔기에 허리가 여전히 아파서,

진주 딸네 집에서 자면서도 몇 번이나 엎치락뒤치락했습니다.

겨우 10킬로인데 마지막 몸 관리를 못해서 그걸 못 달리다니,

안타깝고 답답했습니다.

일요일 새벽에 일어나서 조심스럽게 발을 디뎌보니 여전히 불편하였습니다.

심하게 아픈 것을 집사람이 눈치챌까 봐 얼굴을 찡그릴 수도 없었습니다.

어쩌면 집사람이 눈치를 챘겠지만 한 번 달려보려는 제 속내를 알기에 모르는 척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일단 대회장까지는 가보자 싶어서 주섬주섬 챙겨서 나섰습니다.

 

 

대회장에 가서 낯익은 사람들이 있나 두리번거리다가,

출발 시간 20분 전까지도 물품을 맡기지 않고 그냥 있다가,

탈의실에 들어가 보니 풀코스 참가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나도 한 때 저랬는데 싶을 정도로 활기차고 당당해 보여서 잔뜩 주눅이 들었습니다.

한쪽 구석에서 돌아서서 옷을 갈아 입고 물품보관소에 맡기고 나서,

대회장 근처의 숲길로 가보니 고수들이 한창 몸을 풀고 있었습니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고수들이 힘차게 워밍업을 하는 근처에서 그냥 뱅뱅 돌다가

10킬로 부문의 출발 차례가 되어서야 광장으로 내려왔습니다.

제한 시간이 1시간 30분이니 정 안 되면 걸어도 그 시간에는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단 달리는데 까지 욕심내지 말고 아주 느리게라도 달려보자 싶었습니다.

 

맨 후미에 서서 출발하여 1킬로 지점에 지나치면서 시계를 보니 5분 46초였습니다.

나이가 어린 학생들이나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

그리고 스무 살쯤 돼 보이는 젊은 여자 참가자들이 달리는 것을 보고,

그래도 풀코스를 70회 이상 달린 경험을 믿고 싶었습니다.

 

 

무리할 수도 없어서 그냥 천천히 달리다가,

 진주 풀뿌리 마라톤의 대부격인 경상대의 전차수 교수를 만났습니다.

몇 년 전 춘천마라톤대회와 중앙일보 마라톤대회에서 인사를 했기에,

아는 체하며 인사를 했더니 기억을 하고 반갑게 말을 받아주었습니다.

출발하여서는 대부분의 길이 내리막이라서 생각보다 다음 거리 표지판이 빨리 나타난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그 길로 돌아와야 하니 후반부를 생각하여 무리하게 욕심을 낼 일이 없어 그냥 흐름에 따라 달렸습니다.

구간별 랩을 측정할 수 있는 스톱워치를 차고 갔지만 하도 오래 사용하지 않아서 당황하여서 체크를 하지 못했습니다.

반환점을 돌면서 보니 26분 후반 대였습니다.

예상보다는 좀 빠르게 달린 셈입니다.

 

후반에는 숨이 차고 머리가 멍해지는 듯하여 걱정도 되었습니다.

약을 먹고 달리는 것도 그렇고,

마지막 일주일 동안 전혀 달리지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혹시나 그러다가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낭패일 것 같아서 빨리 달리고 싶은 욕심을 억누르고 속도를 늦추었습니다.

반환점을 돈 이후로 안정되게 달리는 사람이 한 사람 보여서 곁에서 따라 달렸습니다.

나이가 좀 들었는데 달리는 자세가 안정이 되어 있었고,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것을 보니 경험이 많아 보였습니다.

성급하게 달리던 젊은 사람들이 뒤로 처지거나 걷다가 뛰다가 하는 것이 많이 보였습니다.

 

 

몸이 반응하는 대로 달리는데 은근히 욕심이 나기도 했습니다.

지금부터 50명 정도만 뒤로 제쳐볼까 하는 건방진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전에 풀코스를 달릴 때도 초반에 무리하지 않고 달려서 후반부에는 늘 앞질러 달릴 수 있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이븐 페이스지요.

그러나 추월은커녕 그저 달릴 수 있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 했습니다.

 

오르막을 달리 때는 시선을 내리 깔고 달렸습니다.

그러면서 근무지 인근의 가파른 경사가 진 언덕을 달리던 생각을 하면서 견디었습니다.

언덕이 짧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그래도 다행이었습니다.

 

남강댐 둑을 지나서 마지막 1킬로를 남겨둔 지점에서는 속도를 조금 늦추었습니다.

경험으로 볼 때 결승지점에 들어갈 때 혼자 들어가야 사진이라도 몇 장 남지,

그냥 한꺼번에 몰려서 들어가면 대회 참가사진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결승지점을 통과하면서 시계를 보니 50분대 초반쯤의 기록이었습니다.

완주메달을 받고,

대회장 주변을 둘러보며 아침에 출발 전에 갔던 장소에 가서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였습니다.

염려했던 통증도 심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10킬로지만 무사히 달렸다는 사실에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맡겨두었던 옷이 든 비닐봉지를 찾아서 옷을 겹쳐 입고 전화를 확인하고는 대회장을 떠났습니다.

 

마이크를 잡고 결승선 근처에서

고함을 지르며 완주자들을 격려하는 강동섭씨가 보여서 인사를 하고 천천히 걸어 내려왔습니다.

 

 

갑자기 몸이 아파서 걱정을 많이 했기에,

그래서 비록 10킬로 부문의 완주지만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집사람에게 전화를 하니 벌써(?) 들어왔느냐고 놀랍니다.

 

 

콤팩트를 차에 두고 가서 기념사진을 한 장도 못 찍어서 아쉬웠습니다.

집에 와서 거실 바닥에 배번과 완주메달을 펼쳐놓고 사진을 찍으니,

오랜만에 받은 거라서 귀한 모양이라고 놀려 댑니다.

 

 

 

 이전에는 동그란 기념 메달 일색이었는데 요새는 이렇게 디자인이 잘 된 이쁜 것들이 많습니다.

유명한 마라톤 격언인,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달린다"는 말을 형상화한 듯합니다.

 

 

 

 

 

 

 

진주마라톤의 대회 구호는 "파이팅"이 아니라 순수한 우리말인 "힘"입니다.

 

 

 

 

 

맡긴 물품을 찾을 때 체크 하고,

완주기념품을 줄 때 또 체크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