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18. 12:51ㆍ지난 이야기/흰소리
갈수록 선생 노릇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해도,
그래도 아이들과 잘 어울려서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머리가 굳어서 아이들도 싫어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제가 잘 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참고 잘 따라준 것입니다.
중간에 교직을 떠나는 많은 분들이,
가르치는데 힘이 부쳐서 그만 두기 보다는 대게 아이들을 마주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그런 이유로 중간에 그만 두는가 봅니다.
올해 스승의 날에 아고라 등의 토론방에 올라온 글을 읽으면 낯이 뜨겁습니다.
또 어느 여가수는 초등학교 시절에 담임교사에게 당한 폭력의 상처가 크다는 글을 트윗에 남겼습니다.
"촌지" 나 "봉투"라는 이야기는 평생 시골로만 다닌 저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심하게 다루었다는 점에서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모난 성질 때문일수도 있고,
하찮은 사명감 때문일 수도 있었습니다.
정말 그 때는 난장판을 만들려는 애들에게서 학교의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위기감도 있었습니다.
그랬다지만 개인에게 상처를 준 일이 참 많았으니 부끄럽습니다.
아직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자제해야 할 것 같아서 망설입니다만,
언젠가 교직생활을 하면서 느낀 그런 이야기들을 이곳에 풀어놓겠습니다.
공교육이 무너지는 것은 교사들의 실력 때문이 아니라
학교가 난장판이 되어가는 것을 막아주지 못한 탓도 있습니다.
체벌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교실이 붕괴되고 있는 것을 방치하지 말아야 합니다.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한 개인의 피해는 부각하면서
개인의 잘못된 행동으로 전체에 미치는 나쁜 영향에 대해서는 방관하거나 함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결과가 오는 것은,
유연하게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는 교사들의 문제일 수도 있고
세상의 변화가 나쁜 쪽으로 학교에 영향을 미치는 것 때문일수도 있습니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어느 학교의 행정실 직원이란 분이,
행사와 관련하여 학교 내 교사들의 행동을 문제 삼은 글을 올렸습니다.
대부분 욕설과 폄하로 채워진 댓글들을 읽으면,
밖에 나가서 교사라고 말을 하고 다니기가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우리 학교에는 선물 고민 같은 것조차 없습니다.
아이들이 연례행사로 달아주는 꽃 한 송이까지도 받지 말자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런데 올해도,
서른 해 전의 제자들은 안부전화를 해주고,
안부 메일을 보내줍니다.
교사로서의 자질인 이해와 관용이 가장 부족하던 시기에 만났던 아이들입니다.
그래도 오래 기억해주는 것은,
제가 잘 나서가 아니라 그 아이들의(이제는 중고등 학생의 부모들입니다) 심성이 착하기 때문입니다.
아고라의 댓글을 읽으면서 참 불행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초중고 12년을 통털어서 삶의 등불로 삼을 스승 한 사람 만나지 못했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올해는 괜찮은 선물을 받아서 자랑하려고 이 글을 씁니다.
공무원은 업무와 관련하여서는 일체 선물을 받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청렴 규정이 있습니다.
저도 이 규정에 서약을 했습니다.
제가 스승의 날을 기념해서 받은 선물은 가치로 따지기가 힘들만큼 귀한 것입니다.
지난 16일날에 우리 학교 도서관에서는 작은 전시가 있었습니다.
그림에 소질이 있어 열심히 갈고 닦으신 선생님 한 분이 전 교직원을 상대로 손수 그림을 그린 부채 한 점씩을 고루 나눠주셨습니다.
개인이 많은 돈을 들여 재료를 구입하여,
오랜 시간동안 정성껏 그림을 그려 선물한 것입니다.
올해 여름은 , 이 부채 하나로, 더위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면 우리 학교에는 특별히 직원들간에 갈등이 없습니다.
어느 쪽이든지 서로 주장을 내세우기 보다는 배려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콩 한 조각도 서로 나누어 먹으려고 합니다.
한 예로 우리 학교 직원테니스모임의 회장은 행정실 소속의 주무관입니다.
나이와 직급에 관계없이 가장 열성적으로 활동을 하시기 때문에 이구동성으로 추천을 했습니다.
학교의 분위기가 좋은 까닭은, 관리자인 교장선생님부터 학생들과 직원들을 먼저 배려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들도 개인적으로 차이는 있지만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 또한 남다릅니다.
직장 내 구성원끼리 서로 불편한 마음으로 근무하는 많은 분들에게 자랑하고 싶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곳의 이야기를 말입니다.
부채를 그려 선물하신 선행의 주인공 박영오선생님이십니다.
제가 선택한 부채입니다.
폭포 물줄기처럼 시원한 바람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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