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16. 19:51ㆍ미련이 남아있는 마라톤 이야기/완주기(마라톤, 울트라)
호미곶마라톤대회 참가
조바심을 낸 끝에 참가한 올해의 마지막 풀 코스 대회인 호미곶마라톤대회를 참가하고 나서 클럽회원들의 희생에 고맙다는 말뿐 달리 할 말이 없다.
올 겨울 첫 한파가 닥쳐서 호미곶의 바람은 차가웠지만 클럽 회원들의 훈훈한 인심 덕분에 추위를 모르고 달린 대회였다.
경주 동아 오픈을 끝으로 달리기 싫어서 그냥 쉬었다.
나약해진 마음을 따라서 몸도 게을러졌고 가끔씩 늦은 밤까지 술도 마셨다.
가뜩이나 시원찮은 몸이 망가지는 것이 눈에 보였지만 이런 생활도 올해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견디어 냈다.
코스가 그렇게 험한 호미곶에서 달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천천히 달리면 되겠지........
그래도 올 한 해 동안 풀 코스를 여나므 번을 달렸는데 하는 자만심도 없지는 않았다. 그래 부딪혀 보는 거다. 이것 또한 경험이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대회 한 달 전까지 50킬로도 달리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아침 저녁으로 한 시간 정도씩은 걸어다녀서 체중이 별로 변하지는 않았으니 영 젬병은 아니라고 생각을 했다.
토요일날 법원 앞에 가서 남들 가는 코스에는 못 따라가고 직선도로를 천천히 달렸는데 숨이 목까지 차오르고 다리 근육이 아우성이었다. 특히 오른쪽발목 부분과 왼쪽 장경인대(무릎에서 엉덩이 옆까지 이어지는 인대)가 불편하였다.
달리지 않아도 스트레칭을 부지런히 해두어야 하는데 온몸의 근육이나 인대가 많이 굳어 있었다.
달리지 않은 동안에는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배구를 하면서 오히려 몸의 컨디션이 더 나은 것을 깨달았다. 몸은 많이 굳어있지만 피로하지는 않은 것이었다.
토요일날 오랫만에 라이언 김영곤님을 만났는데, 몸이 어느 정도는 회복이 되었다하시면서 자신이 있어 보였다. 이선생님도 이전에 잘 달렸으니 충분히 달릴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를 해주셨다.
출발선에 설 때 목표 시간을 4시간 20분 안으로 정했다. 내 최저 기록을 깨지는 말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참가하는 대회마다 코스가 다 다른데 최고 최저 기록이무슨 의미가 있겠나마는 달리는 순간의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혀지지만 그래도 기록은 남는다.
함께 살방살방 달리자던 우리 클럽의 동료들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에 지난 호미곶 울트라 때처럼 비슷한 수준의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겁게 달리자는 생각을 했다. 초반에는 가톨릭마라톤 동호회 소속인 부산지역의 형제분들과 함께 달렸다. 춘천대회 때 미사 전에 인사를 했는데 기억을 하고 있어서 반갑다는 인사를 나누었다.
4킬로 지점에서 고맙게도 런다이어리의 울산의 현기 강성진회원을 만났는데 깍듯이 선배님 선배님 하길래 나는 우리 고향 후배인가 보다 했는데 아니었다. 지난 해 부산 대회와 다른 몇 대회에서 얼굴을 보고 인사를 했다면서 무척 반가워 했다. 하여튼 20킬로까지를 함께 달렸다. 대략 27-8분 페이스로 달렸는데 달릴만했다. 나중에 내리막과 평지를 지나는 15킬로 지점까지는 24분대로 속도가 올라가길래 오버 페이스를 하는 것 같다고 느리게 달리자고 했는데 같이 속도를 늦추고 따라 주었다. 결국 20킬로 지점까지 따라오던 이 양반은 그 쯤에서 나보고 먼저 가라고 하면서 뒤로 쳐졌다. 고마운 동반주여서 이번 완주는 이 양반의 도움이 컸다고 할 수 있다.
혼자서 달리는데 반환점을 돌아오는 안천수님과 김영곤님 김도완님 신진우님 정종영님 박경태님 임상현님 염우정님 오주택님 등의 모습이 보였다. 힘차게 반환점을 돌아오는 그 분들을 보니 부러웠지만 뿌린대로 거두는 달리기인데 연습을 제대로 하지않은 나는 겨우 그곳까지 달려간 처지만으로도 감사를 해야할 지경이었다.
이 때까지는 워낙 느리게 달리니 몸의 통증은 별로 없었지만 알 수없는 것이 몸이니 조금만 경사가 진 곳이라도 나중에 닥칠 일을 염려해서 속도를 늦추어 달렸다.
반환지점에서 시계를 보니 잘만하면 4시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힘을 내었다. 마음 속으로 30킬로만 넘기면 걸어서라도 제한 시간 안에 들어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도구 다리 밑에서 반환매트를 밟고나서 돌아오는 길에 박만호님과 오하수님이 함께 나란히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조금 지나서는 임채봉님이 달려오는 모습도 보였다. 반환점을 다시 지나서 25킬로 지점에서부터는 천안에서 온 명장이란 닉네임의 런다회원을 만나서 함께 달렸다. 처음 출전이라면서 걱정을 하면서도 잘달리는 이 양반이 부러웠다.
31킬로를 지나면서 왼쪽 허벅지에서 신호가 왔다. 경련의 고통을 아는지라 속도를 아주 늦추었다. 오르막에는 미리 겁을 먹고 걷고 내리막에는 걷듯이 느리게 뛰고 하면서 시계만 들여다 봤다. 4시간 안으로 들어가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듯하였다.
발산 근처에서 앞서가는 이경미님을 만났다. 함께 좀 달리려다가 내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자칫하면 누가 될 것같아서 그냥 인사만 건내고 달렸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지만 거리는 차츰 줄고 있었고 마침내 40킬로를 알리는 표지판을 보게 되었다. 이 때부터는 경사도 별로 없고해서 걷지 않고 달렸다. 앞서 가던 낯모르는 누군가를 만나면 잠시 인사를 하고 얼마간을 함께 달렸다. 몇 번의 경험으로 그렇게 달리는 것이 마지막의 고통을 이기는 좋은 방법이었다.
시계를 보니 더 이상 걷지만 않으면 4시간 안에 들어갈 수 있을 것도 같아서 힘이 났다.
호미곶 광장을 앞 둔 지점에서는 정수영회장님과 여성회원님들이 마중을 나오셔서 "포항마라톤 이원락 힘"을 외쳐 주셨다. 비축해 두었던 힘을 쏟으며 사진을 잘 찍히려고 포즈를 취하면서 여유있게 결승지점을 통과했다.
고맙게도 결승선에서 기다리시던 김태일선생님이 오셔서 운동화 끈을 풀고 칩을 풀어주셨다. 그리고 아내가 건네준 옷을 받아 입고나니 걷다가 달리다가 한 여느 때처럼 몸이 그리 힘이 들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렇게 몸 생각해가면서 달리다가 걷다가 달린 것이 살방살방 달린 것이지도 모른다.
추운 날씨에도 여러 회원님들이 봉사하신 덕분에 따신 국물과 음료수를 마셨더니 얼었던 몸이 녹고 마음이 한결 푸근해졌다.
눈비만 오지 않는다면 호미곶 코스는 달릴만 한 코스다. 경사가 심한 곳이 몇 군데 있지만 장거리 훈련을 하는 심정으로 달린다면 오히려 좋은 훈련 코스가 될 것이고 추운 겨울 날씨임에도 웃으며 봉사를 해 준 학생들과 해병대원들은 물론이고 주민들도 대체로 우호적이었다.
중간에 차들이 몇 대 다녀서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한 주최측이 고마웠다. 우리 인근 지역에 이런 좋은 대회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고 언젠가는 우리 클럽도 이런 대회를 한 번쯤은 열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해봤다.
어제 추운데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봉사해주신 클럽의 여러회원님들께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 한 번 올린다.
귀한 시간을 내어서 웃으며 추위를 참고 봉사를 해주는 그런 것이 클럽의 힘이고 소속감을 높여주는 계기가 된다는 사실을 더욱 절실하게 깨달은 하루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차라리 달리는 게 낫지. 그 추운데 기다리는 고통이라니......... " 하고 푸념을 했다.
아내의 그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달리지 않고 추위에 떨면서 기다리다가 봉사해주신 분들이 더욱 고맙게 느껴진다.
"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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