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벚꽃마라톤대회 참가 완주기(2003년)

2008. 9. 16. 19:43미련이 남아있는 마라톤 이야기/완주기(마라톤, 울트라)

달리기를 시작도 하기 전에 물을 충분히 마셨는데도 입안이 마른다.

초반에 허니 박중윤님을 만나서 오버 페이스를 했다(5킬로-23분07초). 10킬로쯤 지나니 달리기 싫어진다.(2번째 5킬로 랩 타임-22분 01초)

하프 주자들이 돌아서는 지점에서부터 달리기가 싫어지더니 황성공원 옆을 지날 때는 포기를 해버릴까 싶은 생각이 든다.

여러 번 풀 코스를 달려봤지만 이리 힘이 든 적이 있었는가?

이후로는 거듭된 후회의 연속이었다.


보문을 지나 보불로로 가는데 다리가 왼쪽 장딴지 근육이 푸들거리면서 신호를 보내더니 불국사역에서 돌아오면서 마침내 쥐가 난다. 조금 걷다가 조심스럽게 속도를 늦추어 오르막을 달려서 코오롱호텔 입구 반환점을 돌아오는데 왼쪽 다리의 사타구니까지 경련이 인다.

이어서 오른쪽 사타구니쪽까지 경련이 올라 오면서 정신이 혼미해진다.

오한이 들면서 온몸이 마비기 되더니 완전히 지쳐버렸다.


달려야하나 말아야 하나.......


쑥쑥 달리는 주자들을 보니 갑자기 부러운 생각이 난다.

조금 전까지는 내가 저들을 추월했었는데 이제는 위치가 바뀌어 나는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남은 10킬로쯤이 얼마나 먼거리인가는 지쳐서 달려보면 안다.

구급차에서 에어 파스를 얻어 다리에 뿌려보지만 효과가 없다.

걷다가 스트레칭을 하다가 또 걷다가.........


나같은 사람들이 더러 보인다.

저들도 대부분 이 코스를 잘 모른 무지에서 초반에 오버 페이스를 한 것일 것이다.


조금만 달리면 근육이 퍼덕거린다.

한 발만 더 내디디면 경련으로 이어질 태세라서 그렇게 절면서 절면서 35킬로 지점을 지나서 걸어오다가 길가에서 맨소래덤 통 하나를 발견했는데 안에 약이 많이 들어 있었다.

온 손에 칠갑을 하여 경련이 이는 다리에 고루 발랐는데 그 덕을 좀 보았는지 내리막을 만난 탓인지 느리게라도 달릴 수 있어서 네 시간 안에는 겨우 들어올 수 있었다.

늦게 들어오는 주자들이 더 힘이 든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으니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는 모든 이들에게 아낌없이 격려를 보낼 것이다.


내 처지에 걸어서라도 한 발작이라도 가까이 다가섰고 그것도 다행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많은 곳에 오니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고 달렸다.

온천지에 마라톤 한다고 소문을 내놓고 겨우 이렇게 달릴려고 온갖 무리를 감수하고 섬에서 나왔는가 하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결승선을 3킬로 정도 남겨둔 곳에서 부터는 느리게라도 달려서 들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온 신경은 두 다리에 쏠려 있었고 살얼음판을 딛듯이 조심해서 달렸지만 그래도 완주는 완주다.

이런 경험도 앞으로 내가 즐겁게 달리는데 도움이 된다면 결코 실패한 달리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시계로 잰 랩 타임은,

1 - 5 킬로 : 23분 07초

6 -10 킬로 : 22분 01초

11-15 킬로 : 24분 15초

16-20 킬로 : 26분 05초

21-30 킬로 : 49분 48초

31-35 킬로 : 37분 44초

36-40 킬로 : 39분 33초

마지막 구간 : 13분 05초 이다.


후반의 기록은 상황을 잘 나타내준다.


어깨 때문에 한 달 정도 계속 약을 먹었는데, 누군가가 그런 약은 근육이완 성분의 약제란다.

포항 병원에서 처방을 해 준 약은 일상 생활에서 별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며칠 먹어도 속만 조금 불편한 정도였는데,

치료를 하다말다 하니 상태가 더 나빠져서 울릉도에 있는 보건의료원에 갔더니 지어준 약은 먹고나니,

경상도말로 "자무실린다" 고 표현을 해야할 정도였다.

마치 어릴 때 부모 몰래 바다에 가서 놀다가 점심 때가 훨씬 지나서 땡볕 아래서 배가 고파 집으로 올라올 때 탈진할 지경이어서 온 몸에 힘이 쭉 빠진 상태라고나 할까?


그래서 달릴 욕심으로 어제 오후부터는 아예 약을 먹지 않았다.


약을 먹고나면 온몸에 힘이 빠지고 길위에 붕 떠다니는 것 같은데 허방을 디딜까 겁이날 정도로 머릿속이 어질어질하였다.

또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기 시작하고 물을 많이 마셔도 속은 출렁이지만 입안은 몇 번이나 양치질을 해도 텁텁해서 주위에서 달리지 말라고 만류를 할 정도였지만 달리기를 포기를 하지 않았는데 잘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뒤에 오랫동안 후유증에 시달릴 것을 생각하면 달리기가 겁이 난다.


어차피 어깨는 고쳐야하고.......

약은 먹어야 하고........

언제까지 먹어야 할까.......


더 이상 미련을 부리지는 않아야 하는데.......


오늘 그렇게 힘들게 달린 것은 몸의 상태를 생각하지 않고 초반에 무리를 한 것과 독한 약을 오랫동안 복용한 탓인 것 같다.


아마 한 보름은 더 치료를 받아야 할텐데........

다리에 쥐가 난 이런 일이 징크스가 되지 말아야 할텐데.......


그리고 내 스스로에게 '왜 달리는가', 누구의 닉네임처럼 '와 뛰노'를 물어야 한다.

즐거움은 스스로 구하는 것이기에 실패라고 볼 수 있는 이런 부끄러운 결과이지만 자축을 한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뜰 것이고 달릴 기회는 무진장 있으니 오늘은 편히 쉬고 보자.


수고했어 빛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