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26. 08:58ㆍ미련이 남아있는 마라톤 이야기/완주기(마라톤, 울트라)
10월 한 달 사이에 세 번의 공식 대회 풀 코스에 참가를 했다.
(제천-3시간 35분, 춘천-3시간 24분, 경주 3시간 26분)
풀 코스를 뛰고 싶어 안달이 나던 달리기의 갈증은 어느 정도 풀렸으나 이것이 잘 한 것인지는 이후에 내 몸이 말을 해 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험이 바라직한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즐겁게 달리고 싶은데 달리는 도중에 지나치게 고통스러워 포기를 해 버리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달리는 내내 역시 무리라는 것을 느꼈지만 이 모든 일은 모두 내가 선택한 것이다.
토요일날은 바다에서 청룡열차를 탔다.
아침에 포항에서 10시에 출발하여 오후 1시 30분 경에 들어온 배가 낮부터 내린 폭풍주의보 때문에 울릉도에서 출발을 2시간이나 앞 당겨서 들어오자마자 사람을 내리고 짐을 던져내리더니 예정 시간인 4시보다 2시간이나 빠른 2시에 출발을 했고........
느긋하게 여기고 방심을 한 탓인지 배표가 없어서 난리를 지기다가 겨우 막판에 배표를 구해서 눈치를 보면서 배를 탔다.
울릉도에 근무를 한 이래로 2년 동안 수십 번을 다녀도 그렇게 심하게 요동치는 배는 처음 타 보았으니 좋은 경험을 한 셈이었다.
부웅 치솟다가 쑤욱 내려앉더니 배밑을 때리는 파도가 내지르는 굉음이 귀를 때린다.
평소에는 배가 출발을 하자마자 돌아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배 안이 시끄러운데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부안의 격포항 사고 기억이 떠오를 정도로 공포감이 생겼다.
말은 하지 않아도 다들 그런 공포감을 느끼는 듯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신문은 달리기에 미친 어느 선생 이야기를 써 갈길지도 모르고........
경주는 포항의 집과 가까운 곳이라서 믿으니 그랬는지 아침에 늑장을 부려서 9시가 넘어서 엑스포광장에 도착을 하여 클럽 천막을 치는 것을 도와주고 나니 출발 9분전이었다.
보덕동사무소 뒷편의 잔디밭에서 4-5분간 달리다가 겨우 무릎 몇 번 펴보고 출발선으로 가니 2분 전.
추운 날씨인데도 오히려 달리기에는 나을 것 같았다.
워낙 급하게 서두르다 보니 머릿속이 좀 띵한 상태에서 출발.
포항마라톤 클럽의 회원 둘과 동반주를 하다가 10킬로부터는 혼자 나갔음.
길은 초반 3킬로 정도는 오르막이지만 이후에는 15킬로까지가 계속 내리막길이어서 경험이 없으면 오버하기 십상이었는데 나도 이 길은 처음 달려보는 길이고 이 분들도 경험이 없고해서 초반에 무리를 했음.
하프 통과 기록이 예상보다 6분 정도 빠른 1:36:15 정도였으니 무리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음.
하프를 통과할 때 3시간 29분 목표 시간보다 6분 정도 오버를 했으니 뒤에 그 값을 단단히 치루었음.
화랑교육원을 지나고 경주 울산간 산업도로 사거리를 지나가는데 교통통제를 당한 차의 운전자들이 경찰들에게 항의를 한다고 야단이었다.
그들이 무슨 죄가 있으랴?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길이고 산업도로 입구인 이 길을 차단하는 것은 문제가 큰데 우회도로 안내 등의 아무런 대책이 없으니 코스를 변경하지 않는다면 이 대회가 계속되는 한 계속 이런 불상사가 생길 것이다.
달리기도 중요하지만 기간도로를 너무 오랜 시간 통제를 하니 문제는 문제였다.
그리고 경운기나 트랙터를 몰고 바쁜 가을걷이 일을 하러 가는 농민들조차 곳곳에서 발이 묶여 있었으니 미안하기 그지 없어서 달리는 내내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박물관을 지나서 20킬로부터는 다리가 신호를 보내왔고 이후로는 달리기가 싫었다.
이렇게라도 달려야 하는지 회의가 일었고 그래도 달리다보면 결승점에 닿을테니 그냥 참고 달렸다.
꼭 한 번 달려보고 싶은 내년 봄의 동아국제마라톤대회의 참가권 때문에 달렸으니 포기야 할 수 없었다.
35킬로 이후에는 제천대회의 재판이었으나 그렇게까지는 힘이 들지는 않았다.
달리는 것이 별로 즐겁지 않은 것만 제천과 달랐을 뿐이다.
여자부 2위 입상자인 장영신님을 주로에서 두 번이나 만났는데, 중반에는 내가 추월을 했는데 후반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나를 앞질러 가셨다.
대단한 분이다.
10월 초의 제천대회 이후에 2번이나 추월을 당했는데 다음 번에는 추월을 당하지 말자고 다짐을 해 보기도 했다.
지난 번 춘천대회에서는 사진같은 사진이 한 장도 없어서 무척 아쉬웠으므로 이번에는 1-2초 늦추더라도 사진을 찍는 분들을 발견하면 일부러 천천히 달려서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벌려서 한 장 찍히려고 발버둥을 쳤다.
보문 입구의 물레방아 쪽에서도 두 분이 찍고 있었는데 내 앞에 서 있는 사진사가 또 필름을 갈길래 "사진 한 장 확실하게 찍어주세요" 하고 고함을 질렀더니 "옆에 분이 찍었습니다" 하면서 웃었다.
동서들이 처제와 함께 진주에서 달리러 왔는데, 단체로 경주에서 자고 바로 참가를 한다고해서 연락도 못해봤는데 대회장에서 만났다.
좀 미안했다.
지난 봄의 경주 하프 대회 때는 처가 식구들이 우리 집에 다 모였는데 이번에는 우리 집 기상이 별로 맑지 않은 탓이었는지........
막내 동서인 판때기와 고무신 내외는 부부가 풀을 완주를 했고, 하늘맑음 동서는 하프를 완주를 했다.
서로 소속 클럽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다 보니 친척들이 함께 지내는 시간이 줄어드는 듯하여 아쉽다.
내가 나오는데 애로만 없으면 우리 가족이 진주 대회에 가면 만나서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동서들은 모두들 11월 24일에 부산 다대포대회에 함께 간다는데 나는 그 날 대구에서 제자 아이의 결혼식이 있어서 비워두었다.
이미 몇 달 전에 결혼 소식을 전한 제자 아이는 나를 주례로 모시고 싶다는 요청을 해왔다.
나이도 그렇고 사회 경험도 그런 내가 남 앞에 서는 일이 망설여지지만 10여 년 전에 담임을 한 이 아이들과 오랫동안 쌓아온 정이 두터워서 많이 망설였다.
이 제자 아이의 제안은 혼자 등산을 할 때마다 조용히 지난 시절의 내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달리기 시작한 이후로 살이 빠지고 새까만 얼굴이 더 얼망이 되어서 남들 앞에 그것도 주례로 나서기가 망설여져서 오래 전에 정중하게 하던 부탁을 거절하자니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는데 뱃길이 허용하면 사진이라도 찍어 주던가 할 작정으로 비워 두었다.
동서들과 기념 사진을 몇 장 찍고나서 포항으로 왔다.
자고 일어나 보니 오른쪽 무릎 뒤쪽이 조금 불편하지만 다른 곳은 괜찮아서 다행이다.
절뚝절뚝 절면서 오래 걸어다닌 효과가 있나 보다.
다음부터는 절대 매주 이어서 달리지는 말아야지.
혹시 달리게 되더라도 목표를 느리게 잡고 나보다 기록이 늦거나 처음 참가하는 다른 이들의 페이스 메이커라도 하면서 편하게 달려야 하는데 어리석음 때문인지 결과가 뻔할 무리를 했으니.........
달리면서 앞에서 힘들게 달리는 100회 클럽 회원들을 만나면 존경스럽기도 하고 저리 힘든 짓을 왜 100번을 넘게 하려고 할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나도 육지에 나오면 부지런히 참가를 하여 100회를 완주하는 것이 목표이다)
쉬면서 내년 동아대회를 위해서 달리기 시작한 이후에 처음 맞이하는 겨울 연습을 구상해 본다.
참고로 구간 기록을 한 번 적어보면,
거리 계획 시간 실제 달린 시간
5킬로 26분 25분 02초
10킬로 24분(50분) 21분 58초(47:01)
15킬로 24분(1:14) 22분 33초(1:09:34)
20킬로 24분(1:38) 22분 46초(1:32:20)
25킬로 24분(2:02) 23분 26초(1:55:47)
30킬로 24분(2:26) 24분 23초(2:20:10)
35킬로 25분(2:51) 25분 36초(2:45:47)
40킬로 26분(3:17) 28분 26초(3:14:13)
결승 11분(3:28:00) 11분 48초(3:26:01)
으로 오버 페이스가 한 눈에 보인다.
울릉도에서는 머리가 나쁜 사람을 두고 "방어대가리"라고 놀린다.
발음대로 옮기면, "바아대가리"이다.
오늘 달리고 나서 이 말이 생각났다.
내가 그 말을 들어도 싼 사람이다.
지난 주에 이어서 달리면서 편하게 기분 좋게 달리려면 느리게라도 달리든가, 아니면 초반에 오버 페이스라도 하지 말든가.........
무모한 달리기를 하다니 참 어리석었지만 아직은 여러 가지 경험을 쌓는 때이니 좋은 교훈을 얻은 하루였다.
바다는 이번에도 바로 길을 열어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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