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25. 10:02ㆍ글 소쿠리/붓가는대로 쓴 글
내세를 기다리는 사람들
오래 전에 문화공보부 장관을 지내신 분 가운데 윤주영이란 분이 있습니다. 그 나이 또래의 남들이 뒷짐을 지고 회고사나 읊을 나이에 이 분은 아프리카와 인도 등지의 주로 오지로 여행을 하시고, 여행을 하면서 찍은 사진을 전시를 하고 책으로 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노구를 이끌고 베트남을 다녀와서 그곳 여인네들의 질곡에 찬 삶을 필름에 담아 와서 몇 군데의 도시에서 사진 전시를 하였습니다.
이 분이 연 두 번째 사진전과 책의 제목이 "내세를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봉사한 곳으로도 잘 알려진 인도의 캘커타 부근의 노인들이 요양하는 곳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병든 이들의 모습을 렌즈에 담았습니다.
죽음이 이승을 떠나는 이별이 아니라 고통이 없는 내세의 삶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기꺼이 맞이하는 그 곳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철학이 사람의 마음을 끌지만 더하고 덜함이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러나 사진기가 아닌 인간의 눈으로 보고 담아온 그 사진들이 오래 기억이 납니다.
사람들이 믿는 종교마다 죽음에 대한 의미를 다르게 부여하지만 저는 죽음은 헤어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이 든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아끼던 것들과 발을 딛고 있던 이승의 온갖 생명이 있는 것들과도 헤어지는 것입니다.
죽음은 나이에 따르는 것이 아니지만, 늙으면 죽음에 가까워집니다. 우리 주변에는 나이가 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분들은 온갖 회한과 아픔을 안고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시대를 거쳐 왔지만 그 시절을 겪어보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떠밀려서 주변으로 물러나 계신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제 부모님 두 분은 일흔을 겨우 넘기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두 분 모두 몸이 편찮으셔서 생의 마지막 기간 동안에는 병석에서 고생을 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후회가 오랫동안 회한으로 남을 것입니다. 돌아가신 지 몇 해가 지났지만 혼자 있을 때면 자주 생각이 납니다. 산길을 가다가 저녁놀을 보거나 운전을 하며 지나가는 길에 몸이 약해져서 걸음을 겨우 옮기는 늙은 분들을 뵈면 부모님 생각이 나서 속절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제 아버님은 집에서 10여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고향의 선산에 누워 계십니다. 지난날 당신께서 손수 농사를 지으시던 논밭이 있는 비탈의 한 산자락 누워 계십니다. 당신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발치에 누워 계십니다. 가난한 살림살이에 여러 자식들의 공부 뒷바라지를 하시느라고 일찍 혼자 몸이 되신 할머니를 더 가난한 큰집에 두고 모시지 못한 회한을 늘 가슴에 지니면서 사시다 가셨습니다.
아버님 생각이 나면 어쩌다가 고향에 들러서 혼자 산소에 찾아가거나 당신의 손자인 제 아들과 함께 가서 무덤 앞에 절 한 번 올리고 따뜻한 양지에 앉아서 제가 다니던 모교와 그 운동장 한 모퉁이 해송을 지나 푸른 바다를 보고 있다가 그냥 돌아옵니다. 아버지가 누워 계시는 그 산자락에는 솔바람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곳입니다. 예순을 넘기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동네 앞에 새로 뚫린 도로에서 사고를 당하셔서 10여 년을 불편하신 몸으로 고생을 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몸이 아프신 가운데서도 내리 사랑이 지극하시어 철없던 제 아이들에게도 참 좋은 할아버지였습니다.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정규의 학교 교육을 받으신 것이 없으시나 스스로 노력하시어 한글은 물론 한자를 깨우쳐서 웃어른들의 제사 때는 대학을 나온 자식인 제가 부끄러워할 만큼 유려하게 지방을 쓰시곤 하셨습니다. 일 년에 한번씩 쓰시면서 그 어려운 한자들을 획 하나 틀리지 않고 반듯하게 써내시는지 신기할 정도였지만 세월이 한참 지나서 생각해보면 학교에서 배운 것은 없으셨으나 무식을 면하려는 노력과 조상을 모시는 정성이 가득하셨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당신이 배우지 못한 한을 자식들에게는 물려주지 않으시려고 어깨가 짓물리도록 지게질을 하여 산자락 비탈의 다락 논에 벼농사를 짓고 집 옆의 천 평 밭에 온갖 채소를 가꾸어 내다 팔아서 우리 사 남매의 공부 뒷바라지를 하셨습니다. 남을 속이는 일이나 거짓말을 하는 것을 싫어하셔서 남에게 내다 팔 채소라도 농약을 함부로 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자식 교육에도 아주 엄하셨는데, 거짓말을 하거나 이웃 어른들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따끔하게 혼을 내셔서 어릴 적에는 겁이 났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엄한 모습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가끔씩 아버님 무덤 앞에 놓을 비석에 쓸 "가난한 농부로 평생을 살았지만 땅을 사랑하였고 자식들에게 스스로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셨다”는 묘비명을 혼자 떠올리고는 합니다.
어머니는 막내를 낳으시고 난 뒤에 바쁜 농사일에 쫓겨 몸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신 탓으로 서른 해 가까이를 관절염으로 고생을 하셨습니다. 한 때는 걸음을 못 걸으셔서 문밖 출입도 못 하신 때도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애써 가꾼 채소나 과일들을 장터에서 종일 파시면서 허기진 자신을 위해서는 십 원 한 닢을 제대로 쓰시지 않으신 분입니다. 돌아가시기 전에도 늘 저희들을 위해서 묵주 기도를 하시고 믿음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오랜 고질병으로 벗어나기 힘든 고통을 참으시고 자신을 낮추시어 여느 일에나 감사하셨습니다. 마지막에는 고향을 떠나서 포항의 병원과 제 집에서 오랜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고생 끝에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나이를 몇 살이나 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그런지 요즘에는 활기가 넘치는 젊은이들보다는 깨끗하고 건강하게 늙은 분들이 더 눈에 들어옵니다.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평균연령이 늘어났지만, 과학의 발달에 따른 의술의 진보로 질병의 치료가 수월해져서 개개인의 수명이 연장되기는 했지만, 단순한 수명의 연장이 건강하고 복된 삶의 연장은 아닙니다. 기계문명이 발달하여 우리의 생활이 편리해졌지만 그에 따르는 부작용 또한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 제 겨우 마흔을 조금 넘긴 저도 몸이 심하게 아플 때면, 혹시 이런 고통이 뒷날 오래 계속된다면, 오래 산다는 것이 복이 아니라 고통일 것임을 예감하며 서글퍼질 때도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고독이니 어쩌니 하지만, 나이 드신 분들이야말로 정말 외롭습니다. 더구나 산업화로 젊은 사람들이 모두 도시로 몰려가니, 시골에는 자식들과 떨어져 혼자 계시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고 하는 우리나라의 복지 정책은 아직도 미미한 수준이니 나이 드신 분들이 살면서 겪는 어려움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미국의 청소년들이 주로 하는 봉사활동 가운데서 가치 있는 활동을 여러 가지 예로 들 수가 있지만, 혼자 사시는 나이가 드신 분들을 찾아가서 말벗이 되어드리고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랍니다.
저는 병든 부모를 고향에 두고 오랫동안 객지로 떠돌이 다녔습니다. 승진이라는 허깨비감투 같은 일신의 영달을 추구한다는 어리석은 욕망의 포로가 되어서 말입니다.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는 삶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가끔씩 빠져드는 제 사색의 화두로 삼고 있습니다.
잘못 살아왔고 잘못 생각했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후회지요. 가족을 떠나서 혼자 와 있는 낯선 곳에서 사는 삶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지난날 제 어리석음에 대한 반성입니다.
우리 조상들 가운데는 늙고 병든 부모를 모시고자 어렵사리 얻은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분들이 많습니다. 지난 시절에 한 때이지만 저는 그 분들이 참 어리석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자식이 벼슬길에 나서서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것도 효의 한 방법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조차 서슴없이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야 나이가 드신 부모님은 자식이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시지 않으시고,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를 제대로 모시는 것이 인간사의 가장 근본이 되는 일임을 느낍니다.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금전적인 지원이나 물질적인 지원도 필요하지만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마음 씀씀이가 더 필요합니다. 늙는다는 것을 서글프게 생각하지 않도록 집안 어른들이나 이웃의 나이 드신 분들을 위하는 마음이 먼저 입니다. 뿌리가 없는 줄기나 가지는 없습니다.
가을이 한결 짙어지더니 겨울이 성큼 다가옵니다. 온 산을 덮던 화려한 단풍도 어느덧 낙엽으로 떨어져 땅으로 돌아가고 빈 가지들만 바람을 맞고 서 있습니다.
산 속에서 혼자 그 가지들에 닿는 바람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이승을 떠났지만 여전히 자리 잡지 못한 온갖 영혼의 부르짖음 같기도 합니다.
끊 임없이 생기고 없어지는 우주의 질서에 비긴다면 우리 삶은 찰나에 불과하답니다.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을 거두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삽니다.
저도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승에서의 삶을 힘겹지만 즐겁고 보람되게 살다가 저 산자락 위로 흩어지는 구름처럼 소리도 없이 가고 싶습니다.
한 계절이 또 속절없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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