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 달 가듯이 달리고 싶다(2007 고성마라톤 참가기)

2007. 8. 29. 09:23미련이 남아있는 마라톤 이야기/완주기(마라톤, 울트라)

꿈을 꾸었다.

바다 날씨가 사나워서 여객선이 다니지 않아서 군용선을 타고 나오는데 소 한 마리가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간다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내려서 바위틈에 감겨있는 밧줄을 풀어 소를 구해냈다. 장한 일을 했다고 관청에 불려가서 상을 받았는데 상금으로 받은 돈이 적은 액수의 지폐와 수표 한 장 그리고 무슨 상품권이라서 꿈속에서도 참 이상하다고 중얼거렸다.        
섬생활을 마감한 지가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섬에서 벗어나는 꿈을 자주 꾼다.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서 외롭게 지내는 내 인생살이가 섬인가 보다.
꿈에 소가 보이면 조상님이라는데, 아버지께서 당신의 제사를 하루 앞두고 달리러 간 철없는 내게 호통을 치신 모양이다.
살아 계실 때에 힘든 농사일을 하시면서도 조상의 제사 때는 목욕계제하시고 두루마기를 갖추어 입고 단정한 차림으로 근신하시던 아버지 생각에 달리면서 목이 메었다.
아버지께서는 왜 어려운 살림살이임에도 불구하고 지극한 정성으로 제사를 모셨을까?
한참 세월이 지나, 지난 시절의 아버지쯤 나이를 먹고 난 요즘에야, 조상님들께, 어린 자식들이 별 탈 없이 자라게 해달라고 간곡히 당부하신 그 깊은 뜻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늦잠을 잤다.

저녁에 늦게 도착을 해서 숙소인 늘봄모텔 앞의 레스토랑에서 수제비와 커피가 함께 나오는 세트 메뉴로 저녁을 때웠는데 분위기 좋다고 음악 들으며 양껏 마신 커피가 문제였다. 자가용으로 먼저 고성에 와서 미리 숙소를 잡아둔 영곤아우님과 함께 잠을 잤는데 아우님이 서브-3를 목표로 오랫동안 준비해 온 것을 알기 때문에 방해를 하지 않으려고 잠이 오지 않는데도 불을 끄고 누워 있으니 머릿속이 더 맑아져서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공부를 더 한다고 백수로 남아 있을 때 일찌감치 발령을 받아 돈을 벌던 친한 친구 김인수선생에게 밥과 술을 얻어 먹으러 자주 고성에 내려왔었고 결국은 그것이 인연이 되어 당시에 유행하던 미드나이트 형태의 술집에서 몇 달 동안 지배인과 멤버 일을 동시에 맡아서 했다.
열 몇 사람이나 되었지만 개성이 강해 다루기 힘들었던 일하던 아가씨들에 대한 기억이나, 낮에 쉬는 시간에 고성농고 테니스장에 가서 테니스 치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사람이 모자라면 라켓을 빌려서 함께 테니스를 치거나 심판을 봐주고 막걸리를 얻어마시던 추억도 있다. 친구가 근무하던 학교의 작가지망생이던 여선생을 만나서 어두운 바닷가 길을 함께 걷던 생각도 났다.
세월은 한참이나 흘러갔지만 스무 몇 해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성에서의 추억은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그런데 나는 다시 이곳 고성 땅에 달리러 왔으니 인연은 깊은가 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이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달릴 자신도 없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하루 전날 까지도 대회에 참가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오후 늦게야 포항에서 고성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며칠 전에 영곤아우님이 전화를 해서 자기 차로 함께 가자는 것을 가족이 진주에 갈 일이 있어서 차를 가지고 같이 간다고 혼자 가라고 했는데, 방학인데도 실험실에서 지낸다며 진주에 있던 큰 애가 치과진료 때문에 집에 왔다가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간다며 새 학기에 제가 있을 방은 혼자 구할 수 있으니 제 어미가 방을 구하려 함께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바람에 아내가 달리는데 따라와서 방도 구해주고 겸사겸사로 친정 나들이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급하게 일어나서 대충 씻고나니 시간이 일곱 시가 훨씬 지나있었는데 식사를 하러 모텔 앞 도로변의 식당 문이 닫혀 있어서 급하게 읍내로 나가니 이른 시간 탓인지 장사를 하는 식당이 눈에 띄질 않았다. 세 시간 전에는 밥을 먹어야 한다는데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침 식사가 늦어졌다. 영곤아우님이 서브-3를 하려면 몸도 마음도 편안해야 하는데 어제 저녁에 늦게 도착한 내 탓인 것 같아서 괜히 아우님께 미안했다.
한참을 찾다가 들어간 식당의 사람 좋아 보이는 친절한 주인아주머니가 내온 밥상의 밑반찬과 해물탕이 맛깔스러워 보였지만 다른 반찬은 손도 대지않고 국물만 조금 떠먹고는 밥을 여러 번 꼭꼭 씹어 먹었다. 밥을 반 이상 남긴 아우님과는 달리 나는 천천히 시간을 끌면서 밥 한 공기를 다 비웠다.


출발선 뒤쪽에서 서성거렸다.        

개회식을 진행하는 사회자의 고함소리가 스피커에서 왕왕거렸지만 운동장 밖에서 짧은 거리를 반복하여 천천히 달렸다. 5분 정도 움직이다가 스트레칭을 했다. 왼쪽 햄스트링이 신경이 쓰여서 오랫동안 윗몸을 앞으로 굽혀서 햄스트링 스트레칭을 했다. 출발 시간이 가까워져서 운동장에 들어가니 몸을 푼다고 트랙을 달리는 사람들이 물고기 떼처럼 무리를 지어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 틈에 들어가서 코너 부근을 몇 번 왔다 갔다 하다가 지난 해 곳곳에 함께 달리러 다녔던 해병대 50회 클럽의 문태창고문님을 만났다. 그린넷마에서 주최한 호미곶마라톤대회에서 100회를 완주하신 대단한 열정을 지닌 분이시다. 함께 다닐 때 늘 형님처럼 챙겨주신 고마운 정 때문에 호미곶에서는 풀코스 100회 달성을 기념하여 동반주를 했었다.
출발 신호가 울렸다. 풀코스 주자의 맨 뒤에 서 있다가 사람들이 어느 정도 빠져나가고 나서 출발선을 통과했는데 이미 시간은 3분 정도 지나 있었다. 4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들이 운동장 출입문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깊은 수렁에 빠지다.

달리는데 무슨 자존심이 필요할까마는 한 때는 거침없이 잘 나갔는데 부상과 연습 부족이 겹쳐서 이제는 대회에 참가하면 완주하는데 그치는 느림보 주자가 되어 버렸다. 펀-런이란 잘 달릴 수 있는데 느긋하게 천천히 달리는 것인데, 달리는 것이 두렵고 빠르게 달리는 것이 무척 힘이 드니, 좋아서 시작한 달리기가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어느 사이에 괴롭고 무거운 짐이 되어버렸다.
지난 해 5월에 호미곶 월광소나타 100킬로 울트라에 참가를 해서 70킬로 지점에서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는데도 미련스럽게 30킬로나 남은 거리를 절뚝거리며 걷다가 뒤꿈치로 달리다가 서다가를 반복한 이후로 왼쪽 고관절에 큰 부상을 입었다.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버티다가 고질병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도 8월 중순에 서울마라톤클럽의 혹서기대회에 참가했고 한 주일 뒤에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이던 부산 썸머 비치 울트라대회에 참가를 했다가 50킬로 조금 지나서 중간에 주저앉고 말았다.
엎친데 덥친격으로, 약한 왼쪽 다리의 근력을 보강한답시고 웨이트를 실시하면서 쳐다보는 남들의 눈을 의식해서 너무 무게를 무겁게 드는 바람에 허리에 무리가 많이 갔는데도 미련한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9월에는 진통제를 먹어가면서 철원DMZ대회에 이어서 김제지평선과 곡성섬진강대회에 세 주 동안 내리 이어서 참가를 했는데 곡성에서 뛰고 나서는 허리가 끊어질듯이 아파서 병원에 가니 왼쪽 허리뼈의 끝부분이 잘게 조각이 나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허리 부근의 척추에 흰 부스러기가 보이는 X-선 사진을 보고나니 온 몸에 힘이 빠졌지만 고통을 멈추게 하는 일이 우선이어서 진통제가 들어가는 약을 한 달 이상 먹으며 근무하는 짬짬이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했다.
가을 시즌에 참가 신청을 해둔 여섯 개의 대회에 모조리 참가하지 못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달리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어느 사이에 네 시간 반에 뛰는 것도 힘이 들 정도로 뒷걸음질 친 기록과 달리는 것이 두려운 자신을 보고 절망감이 앞섰다.


재활의 몸부림을 치다.

12월 초순에 호미곶마라톤 대회가 끝나자마자 오랫동안 편찮으시던 장모님께서 돌아가셔서 상을 치르고 학교에 돌아와서는 기말시험과 우리 부서가 주관하는 학생축제와 학생회장단 선거에 매달렸다. 코앞에 닥친 학년말 업무 때문에 운동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몸이 아프고 달리기 힘들다고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며 집착하던 달리기를 영영 그만 둘 수도 없었기에 겨울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마음을 다져 먹고 재활 훈련을 시작했다. 통증은 거의 없었지만 굳어 있는 왼쪽 햄스트링을 강화하는데 중점을 두고 틈만 나면 스트레칭을 하고 보강운동으로 앰티비를 탔다. 달리지 못하면 오랜 시간 동안 걸었다. 늘 달리기만 할 때는 몰랐지만 걷는 재미도 괜찮았다. 집에서 나와서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가 법원 앞을 지나서 감티재를 넘어 흥해 들판까지 걷다가 어느 날은 대여섯 시간을 걸어서 청하를 거쳐서 신광온천까지 걸어갔다.
차가 많이 다니는 혼잡한 길을 피해서 들길을 걷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갓길이 좁은 도로 옆을 다닐 때는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차들이 내지르는 굉음 때문에 여러 번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아마 운전하는 사람들에게는 인적이 드문 길을 따라 걷는 내가 실성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기도 했다.
클릿 페달을 사용하는 앰티비는 안장 뒷부분에 엉덩이를 걸치면 햄스트링을 많이 사용한다기에 오르막을 올라갈 때는 엉덩이를 뒤로 잔뜩 뺀 상태에서 페달링을 했고 평지에서 탈 때도 왼쪽 발에 더 힘을 준 채 페달을 끌어 올렸는데 근력이 조금씩 붙으며 유난히 약하던 한 쪽 다리 힘이 차츰 나아지는 것 같았다.


마음은 앞서 가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어느 정도 몸의 상태가 나아지는듯해서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느릿하게 짧은 거리를 달렸는데 조금만 달려도 숨이 목까지 차올랐다.
혼잣말로 ' 나, 마라토너 맞아?' 하는 말을 속으로 수도 없이 되풀이 했다.
앰티비를 타면서 일부러 오르막에서 기어 변속을 늦추어서 숨이 차도록 페달을 밟았는데도 달리는 데는 별 효과가 없는 듯 했다. 가끔씩 길에서 만나는 옛 달리기 동료들은 힘차게 달리는데 나는 너무 느리고 힘들게 달리니 같이 달리자고 연락을 해도 킬로당 5분 정도로 달린다는 말을 듣고는 따라 뛰지 못할 것 같아 창피해서 따라 나서지도 못했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할 때 힘들었던 일들을 기억하며 부끄러워하지 말고 달리면서, 달릴 수 있어 즐거웠던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다짐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했다.
스트레스를 풀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얻으려고 시작한 달리기가 때로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남과 비교하지 말고 조금씩 나아지는 내 몸의 변화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잘 달리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꾸준하게 노력한 결과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순간순간에 가끔씩 절망감이 들었지만 그런대로 견딜 만 했다.
비밀 훈련을 하듯이 혼자서 언덕길과 들길을 번갈아 가면서 달렸다. 차에 자전거를 싣고 가서 자전거를 좀 타다가 차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달리기도 했다.        
        

몸의 말을 듣기로 했다.

대회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페이스메이커들의 주로 운영 계획을 보고 기가 죽었다. 대회 날짜가 가까워지고 마음은 조급한데 LSD를 한답시고 무턱대고 장거리를 달릴 수도 없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결과야 어찌되던지 간에 자신감을 얻어 보려고 대회가 있는 주의 수요일 까지 장거리를 달렸는데 25킬로 정도도 제대로 달리지 못하고 퍼져 버렸다. 온몸의 힘이 다 빠져 나가버려 속도를 내서 달린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지경이었다.
사정이 이러니 아무래도 4시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 뛰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4시간 30분짜리 페이스메이커를 따라 뛰다가 혹시라도 퍼지면 걸어 들어올 시간 여유도 없을 테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참으로 난감했다.
그래서 천천히 몸의 상태를 보가면서 달리기로 했다. 그래도 풀코스를 쉰 번을 넘게 달렸고 고성대회만 다섯 번째 참가를 하는데 욕심을 내지 않으면 완주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완주를 못하더라도 모처럼 장거리 훈련을 했다는 사실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연습이 부족하여 걱정을 하다.

거대한 물결처럼 밀려가는 주자들의 꽁무니를 따라 천천히 운동장을 벗어났다. 버스정류장을 지나 동해면 쪽으로 접어드는 길에서 보니 선두 주자들은 이미 시야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추울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날씨가 따뜻하여 얼굴에 땀이 흐리기 시작했다. 후미 주자들 가운데는 체중이 많이 나가서 뛰는 것이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래도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체중은 그렇게 많이 나가지 않으니 내가 좀 나은 듯 했다. 하루에 몇 시간씩 걷고, 뛰고, 자전거를 타는 동안에 체중이 2킬로 정도 줄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주로에서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달리면 힘이 덜 드니 그런 사람을 찾았는데 마침 머슬가이라는 낮 익은 닉네임을 가진 이윤희씨 일행을 만났다. 우락부락할 것 같았던 닉네임과는 달리 준수하게 생긴 이 분은 욕심을 내지 않고 안정되게 달리는 것 같았다. 반갑다는 인사를 하고 함께 달렸다.
5킬로 구간을 통과하고 나서 시계를 눌러놓고 보니 27분 33초가 지나 있었다. 네 시간 페이스메이커가 28분 정도에 통과할 것이라고 해서 따라 뛰지 못할 것 같아서 겁을 먹었는데 오히려 1분 정도를 빨리 뛴 셈인데도 그렇게 힘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몸이 조금 가벼워진다고 초반에 무리를 하면 후반에 단단히 그 값을 치른다는 것을 알기에 느긋하게 달렸다.
길가에 나와서 응원을 해주는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고맙다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손을 내미는 아이들과는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달렸는데 기분이 괜찮았다.
새로 포장을 해서 노면 상태가 좋은 도로를 달리니 발바닥이 편했고, 차량 통제가 완벽하게 잘 되어서 마음 놓고 달리니 달리기가 무척 편했다. 고성대회의 큰 매력이 바로 완벽한 차량통제가 아닌가.
10킬로 지점을 통과하고 나서 시계를 보니 랩 타임이 27분 39초였다. 10 킬로를 55분 정도에 달렸으니 예상보다는 훨씬 앞서가고 있었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어서 여전히 조심스럽게 달렸다.
달리다가 100회 클럽의 정미영님을 만났다. 지난 가을의 철원대회에서 이 분이 두르신 머리띠를 보고 내 근무지인 울진사람이라는 것을 알고서도 달리고 나서 만나지 못해서 인사를 못 드렸는데 또 우연히 만나게 되어서 반갑게 인사를 드렸다.
후포가 친정인데, 이전에 내가 100회 클럽에 가입하려고 한 적이 있다고 하니 100회 클럽의 사무국장 직책을 맡으셨다면서 100회 클럽에 가입하라고 권하셨다. 연세가 나보다 많으신데도 강단 있게 잘 달리셨다.
몸이 풀리면서 호흡도 안정이 되었지만 아직은 전반이니만치 무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 반환점까지 편안하게 달리기로 하고 속도를 높이지 않았는데도 15킬로와 20킬로 통과 기록이 각각 26분 46초와 26분 39초로 초반보다 1분 정도 빨리 달린 셈이다.
달리는 도중에 보니 무슨 까닭인지는 몰라도 레이스를 포기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컨디션이 좋아서 잘 달릴 때는 반환코스를 돌아오는 선두 주자들을 18킬로나 19킬로쯤에서 만나는데 16킬로 쯤 가니 벌써 선도 차량 뒤를 첫 번째 주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이제는 잘 달리는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을 제법 아는데 예상대로 선두 주자는 낯익은 얼굴이었는데 마치 장거리 연습을 하듯이 편안하게 달리는 듯 했다.
뒤를 이어서 이른바 고수들이 힘차게 달려오고 있었는데 어떤 주자는 편안하게 달리는 반면에 어떤 주자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면서 힘들게 달리고 있었다.
포항 지역의 최고수인 검프 박영인님과 포항마라톤클럽의 송준칠 고문도 선두 그룹에서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온 거리만큼만 더 달리면 되는구나.

반환점에 다가 갈수록 아는 얼굴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지난 시절에 내가 반환점을 돌아 올 때 이제 반환점을 향해 가고 있던 사람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이제는 처지가 바뀐 것이다. 힘차게 앞서가는 그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어쩌면 이런 것들이 달리기의 매력인지도 모른다. 속임수 없이 땀 흘리고 노력한 만큼 정직하게 결과가 나타나는 운동이 마라톤 아닌가.
반환점을 1시간 53분에 통과를 했으니 잘하면 4시간 안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후반부에 기분 좋게 달리다.

반환점을 통과했는데도 그렇게 힘이 든다는 느낌은 없고 달릴만하였다. 지난해 후반기 같으면 이맘 때 쯤부터 왼쪽 다리 뒤쪽이 뻐근하면서 서서히 다리가 굳어 졌는데 이번에는 괜찮았다.
25킬로와 30킬로 지점을 통과한 랩타임이 25분 30초 정도로 오히려 전반보다 기록이 1분 정도 빨라졌다. 앞에서 달리던 어떤 사람들은 이미 지쳐서 걷거나, 힘이 빠져서 상체를 잔뜩 움츠리고 느릿하게 움직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서 지치지 않은 듯 힘차게 달리는 사람이 눈이 띄었다. 따라 뛸 요량으로 조금 속도를 올려서 따라가서 보니 나이가 젊은 사람이었다. 청주마라톤클럽 소속이었는데 지치지 않은 듯 잘 달렸다. 바짝 뒤따라 달리다가 실례가 될 것 같아서 옆에 다가가서 가볍게 목례를 한 뒤에 함께 달렸다. 나이가 젊은 또 다른 달림이 한 사람이 따라 달렸는데 사람들을 한 사람씩 앞질러 가면서 계속 달렸다.
한 10킬로쯤을 함께 달렸는데 그 덕분에 35킬로 지점의 랩 타임은 25분 13초였다.
나보다 훨씬 힘이 있어 보이던 두 사람이 먼저 지쳤는지 차례로 뒤로 쳐졌다. 혼자서 꾸준하게 사람들을 앞지르며 달리다가 모교의 이름이 등에 새겨진 노란색 유니폼을 입은 분을 만나서 인사를 나누었다. 대학본부에 근무하시다가 지금은 부속병원에 근무하신다고 하셨다.
어느 곳이든 달리러 가서 모교에 근무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ㅇㅇ과 몇 회 졸업생입니다” 하고 먼저 인사를 드린다.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모교이지만 이제는 큰애가 그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니 인연이 더 깊어지는가 보다.
이 분과 5킬로 정도를 함께 달렸는데 40킬로 근처에서 다리에 쥐가 나시는지 스프레이를 뿌리신다면서 먼저 가라고 하셨다.
머릿속이 조금 어지러웠지만 처음에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후반에도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어서 기분은 너무 좋았다. 남은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아서 힘이 저절로 나는 듯 했지만 쉬임없이 달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좋아서 1-2분 정도의 기록 단축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는듯 하여 더 이상 무리하게 속도를 높이지는 않았다.
마지막 힘을 다하여 신나게 달려서 운동장에 들어섰다. 트랙을 돌아서 결승지점을 통과할 때는 기념사진을 제대로 찍히려고 일부러 속도를 줄여서 앞사람을 먼저 보내고 조금 간격을 두고 들어가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결승지점을 통과하자마자 시계의 스톱 버턴을 누르고 기록을 확인해보니 3시간 41분 10초쯤 되었다.


입이 귀에 걸리다.

지난 해 기록보다 10분 이상 늦었지만 예상 밖의 기록에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중간에 퍼져서 걸을까봐 걱정을 했는데 끝까지 달려서 기분이 더욱 더 좋았다.
지난 해 여름의 혹서기대회 부터는 기록이 전부 4시간이 넘었는데 모처럼 서브-4를 하였으니 그렇고, 달리고나서도 딱히 아픈데가 없으니 오랜 부상의 늪에서 헤어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을만큼 기분이 좋았다. 더구나 후반에 전반보다 5분 정도나 빨리 달리며 어느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았으니 러너스 하이를 만끽한 셈이다.
그리고 함께 포항으로 오기로 한 영곤아우님을 조금이라도 덜 기다리게 하였으니 다행스러웠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신나게 달릴 수 있었을까?

어느 것이 더 도움이 되었는지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부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시간 동안 자전거를 타서 햄스트링이 많이 좋아졌고 큰 욕심 없이 몇 번이나 20킬로 이상을 달려서 다리 근력이 제법 길러졌기 때문이다. 큰 언덕을 코스에 포함시켜서 몇 번 넘었으므로 자신감이 생겨, 짧은 기간의 훈련이었지만 훈련의 효과가 의외로 컸던 것 같다.
그리고 대회 사흘 전까지 천천히 장거리를 달렸으나 마지막 이틀을 욕심 부리지 않고 푹 쉰 것이 기력 회복에 도움을 주었다.        
대회 일주일 전부터 낮 시간대에 비교적 긴 거리를 천천히 달려서 배가 고픈 상태(카보 고갈 단계)에 이르렀다가 이틀 전부터 빵을 먹었고 하루 전날에는 떡을 넉넉하게 먹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소프트 카보로딩을 한 효과를 본 것 같다.
그리고 대회날 아침 식사를 천천히 씹어서 오랫동안 먹었고, 식후에는 바나나를 잘 익은 것으로 두 쪽이나 먹어서 열량을 충분하게 비축하였고, 영양 젤을, 뛰기 전에 한 봉지, 27.5킬로 지점에서 한 봉지, 마지막에는 35킬로 지점에서 한 봉지를 먹었는데 다른 때와는 달리 속도 편안했고 달리는 동안에 배고픈 것을 몰랐다.
초반에 무리하게 1분을 앞당기려고 욕심을 내면 후반에 10분을 손해를 본다는 것도 여러 번 경험했기에 10킬로 지점을 통과한 이후에 앞으로 나가고 싶은 것을 잘 참아냈기 때문에 후반까지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이제는 서울 동아다.

기록이 썩 좋은 것은 아니지만 오랜 부상과 부진에서 벗어나서 자신감을 얻었으니 남은 기간 동안에 꾸준하게 앰티비를 타고, 장거리 지속주를 가끔씩 하면서 훈련의 마지막에는 짧은 거리라도 전력으로 달린다면 올봄의 동아마라톤에서는 기분 좋게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대회에 자주 참가하는 내 경우에는 겨울철에 다양한 운동으로 기초체력을 높이는 준비가 더욱더 필요하다.


마치면서.......

잘 달리는 사람들에 비하면 3시간 41분이라는 내 기록은 자랑할 기록이라 할 것도 없다.
그러나 과학적인 근거가 뒷받침 되지는 않을지 몰라도 부상과 부진의 늪에서 헤어난 내 경험을 나와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었다.
풀코스 완주 횟수가 50회를 넘어 100회를 향해 달리는 올해는 단지 풀코스를 몇 번 완주했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페이스를 분배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게 달려야겠다.
달리고나서도 꾸준하게 페이스를 유지한 경우가 더 즐거웠다. 기록을 단축하는 것도 목표지만 만족스럽게 달리는 것이 더 즐겁다.
달리지 않는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풀코스를 완주하고 나서도 즐겁거나 뿌듯하지 않다면 좋아서 하는 달리기 자체가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아직도 스트레스가 남아 있다면, 달리기를 처음 시작할 때 가입해서 활동하다가 지지부진한 상태로 그만 둔 마라톤 클럽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서 여기저기 떠돌며 지내는 직장생활을 함께 운동하지 않는 핑게로 삼지만, 소속되어 있던 짧은 기간동안 어울리면서 지낸 기억이 무척 많아 애증이 교차하는 묘한 감정이 여지껏 남아 있다. 혼자 다니기를 좋아하고 제 페이스대로 달리는데 참가하는 대회 때마다 아는 얼굴을 마주치는 것이 무척 부담스럽다.
지금도 만나면 반가운 사람들이 많으니 쌓인 정은 그대로이니 차츰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 대하기가 편안해지겠지.
달리면서 늘 느끼지만 건강하게 달릴 수 있는 몸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힘들게 연습을 하여 거뜬히 달리는 자신이 고맙다.
어제 낮에 모처럼 학교에 출근하여 공문 처리를 하다가 마신 진한 커피 때문에 늦은 밤까지 잠이 오지 않아서 새벽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서 횡설수설 하고 있다.

감히 말하건데,
<달리기는 내 인생 후반기에 누리는 최고의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