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신라의 달밤 165리 완보기

2018. 12. 11. 18:40미련이 남아있는 마라톤 이야기/두리번 거리면서 걷기

출발을 앞둔 설렘

  저녁 어스름이 내리던 황성공원 축구장에는 모여든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전에 운동장 앞이나 실내체육관 앞에서 출발 할 때 보다는 입구가 좀 번잡스러웠습니다만 거리별로 출발 시간을 달리하여 통제하기에는 더 나았던 것 같습니다. 배번을 받고 나누어준 물품을 배낭에 집어넣고는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초록과 노랑 배번호를 단 참가한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는데 66킬로 코스에 참가한 초록색 배번을 단 사람들이 많아 보여서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낮부터 불던 바람이 해 질 때까지도 멈추지 않고 여전히 불어서 한기를 느끼면서도 배낭 속에 든 점퍼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동편 관중석에 앉아서 저녁식사 대용으로 갖고 간 떡을 꺼내서 두유와 함께 먹고 마신 뒤에 발바닥에 물집방지 처리를 하려고 배낭을 열었는데 아뿔싸, 발바닥에 붙일 스포츠 테이프를 집에 두고 갔더군요. 테이프 자를 작은 가위는 챙겨갔는데 무슨 영문인지 제일 중요한 물품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분명히 챙긴다고 거실바닥에 내놨는데 어떻게 된 건지 생각나질 않았습니다. 한 주 전 주말에 근무지인 영천에서 열린 영천댐별빛댐걷기대회에 참가했는데 21킬로라는 거리를 만만하게 보고 신발이나 양말을 대충 신고 갔다가 중간에 물집이 생겨서 애를 먹었고 뜯어낸 발바닥이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아서 테이프가 꼭 필요한데 없으니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배낭 안의 잡다한 물건을 다 꺼내고 아무리 뒤져봐도 테이프가 없어서 할 수없이 신고 간 양말을 벗고 발가락 사이와 발바닥에 바셀린을 듬뿍 바르고 발가락 양말을 신고 다시 양말 위에 바셀린을 더 바르고 다른 양말을 덧신고 나서 신발을 신고 디뎌보니 엄지발가락과 새끼발가락 쪽이 불편해서 앞으로 열 몇 시간을 걸어야할 일이 남아 있어서 신발 끈을 풀어서 여유 있게 다시 맸지만 더 걱정스러웠습니다.

  스탠드 앞쪽에 여자 두 분들이 앉아 있었는데, 나이 드신 분이 내게 혼자 왔느냐고 묻더니 그렇다고 하니 어디에서 왔느냐고 또 물으셔서 포항에서 왔다고 하니 자기들도 포항에서 왔다면서 반갑다고 하셨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녀가 함께 참가한 것이랍니다. 자세히 쳐다보지는 않았지만 나이 든 모친은 표정이 밝고 참 상냥하셨고 곱게 나이 드신 분 같았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테이프 이야기를 하니 병원에 근무한다는 따님이 종이반창고를 꺼내주길래 일단 염치 불구하고 좀 여유 있게 얻어서 바셀린을 담아간 필름 통에 감아두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식전공연이 시작되어 세 분의 연주가가 나와서 통기타로 노래 몇 곳을 불렀고, 이어서 스무 명 정도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와서 화려한 난타공연을 펼쳤고, 독도 퍼포먼스가 이어지는 동안에 부지런히 주변을 돌아다니며 현장 스케치하듯 사진을 찍었습니다. 준비해간 이온음료수와 물을 넉넉하게 마셨고 긴장한 탓에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참석한 내빈 소개에 이어서 경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장이 인사를 하고 경주시장, 시의회의장, 경북관광공사 사장이 인사를 하는 동안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출발은 두 코스 참가자들이 섞여 혼잡스럽던 이전과는 달리 비교적 질서 있게 66킬로 참가자들이 먼저 출발을 했습니다. 출발지에서 시차를 두고 체크카드를 나누어주라던 많은 사람들의 건의가 받아들여진 것 같았습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걷기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보통사람들에 비해서 엄청나게 빨랐습니다. 빨리 걷는 무리 속에 휩싸이다 보니 내 걸음도 저절로 빨라져서 이러다가 오버 페이스를 하는 건 아닐까 걱정을 했습니다. 몇 킬로쯤 걸으니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흩어지고 그룹이 형성되어서 걷는데 여유가 생겼습니다.

      

걷다가 만난 사람들

  시야가 확 트인 강변 산책로를 따라 환한 달을 쳐다보며 혼자 생각에 잠겨 걷고 있는데 옆에 걸어가던 남자분이, 배낭도 무거운데 큰 카메라까지 들고 가느냐고 말을 걸어서 쳐다보니 몸매가 다부져 보이는 남자분이, 차가 밀려서 행사장에 늦게 도착하여 급하게 출발했다고 하면서 울산에서 왔는데 고향은 감포라고 자기소개를 해서 그런데서 또 고향사람을 만났기에 무척 반가웠습니다. 고향사람인데 안면이 없어 나이를 물어보니 중고등학교 몇 년 후배였으나 출신초등학교가 다르고 나이 차이가 있어서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닌 적이 없어서 그랬나봅니다. 지난 9월에도 지역 교육청 모임에서 전입해온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자기소개 인사말 끝에 고향이 감포라고 하기에, 시골이라서 좁은 바닥이고 더구나 같은 교직에 있는 몇 되는 않은 사람은 초중이 달라도 다 안다 싶었는데 안면이 없어서 행사 끝나고 나서 이야기를 해보니 역시 나이차가 있어서 같이 학교를 다닌 적이 없었고 내 여동생과 동기였는데, 우리 고향사람들은 고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지 소개할 때 꼭 고향을 밝히는구나 싶어서 반가웠던 생각이 났습니다.

  내가 살던 동네를 이야기 하니 우리 동네 후배와 친구라고 했고 그 동네 살던 친구 이름을 대니 다 알기에 어렵잖게 자랄 때의 여러 추억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짐작으로 막내 여동생과 동기쯤 되어 보였으니 그래도 쉰을 훨씬 넘긴 나이인데도 얼마나 걸음 속도가 빠른지 보문단지의 자동차 박물관까지 같이 가면서 빠르게 걷는 이 친구를 따라간다고 내 걷는 속도도 장난 아니게 빨라졌는데 불빛이 밝은 곳을 지날 때 여러 번 사진을 찍는다고 시간을 지체하니 한두 번 기다려주더니 먼저 가버려 이름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그냥 헤어져서 명함이라도 하나 건네줘서 연락이라도 하라고 할 걸 하고 아쉬워했습니다.

  보문단지에는 가을을 맞아온 관광객들이 많아서 산책로가 비좁았고 여유 있게 걸으면서 바쁘게 지나가는 우리를 쳐다보며 놀라는 표정들도 재미있었습니다.

  멋진 야경을 카메라에 담아보려고 했지만 마음이 더 바빴고, 들고 간 카메라는 하이앤드답게 줌 기능은 괜찮지만 야간촬영 시 노이즈가 심해서 화질이 떨어져서 무겁더라도 다른 카메라를 들고 오지 않은 것이 아쉬웠습니다.

  출발할 때 카메라를 배낭에 넣을 틈이 없어서 손에 카메라를 들고 두어 시간 이동하여서 그런지 어깨가 아파서 불빛이 화려한 보문단지를 지나서 암곡으로 접어들기 전에 형형색색의 불빛으로 화려한 프로방스의 사진을 찍고는 카메라를 배낭에 집어넣었습니다.

  반짝이는 안전등의 붉은 불빛만 보이는 어두운 길을 걸어가는데, 도로 한 가운데로 지그재그로 가로질러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기에 가끔씩 지나다니는 차량에 부딪히는 사고라도 날까봐 쓸데없는 걱정을 했지만 대부분의 차량들이 천천히 다녀서 다행스러웠습니다. 배낭에 든 점퍼를 꺼내기 싫어서 얇은 바람막이 점퍼와 티셔츠를 입고 출발을 했는데 두어 시간쯤 지나 와동마을 구판장에서는 따뜻한 어묵이라도 사 먹을까 싶었는데 올해는 어묵을 팔지 않았습니다.

  벌써 길가 곳곳에서는 쉬는 사람들이 더러 보였지만 꾸준하게 걸었습니다.

  보름이 지난 지 며칠 되어서 그런지 달이 늦게 떠서 와동마을에서 덕동댐 삼거리까지 약 10킬로쯤 되는 구간은 민가가 드문드문 있고 산 그림자가 길게 내리거나 나무 그림자에 덮여 곳곳에 어두운 곳이 많아서 발밑을 살피며 조심해서 걸었습니다. 이 구간은 한참을 굽이굽이 돌아가야 첫 체크 포인트를 만날 수 있기에 조바심을 내지 않고 걸었는데, 걸음이 느린 내가 꾸준하게 쉬지 않고 걸어야 겨우 쳐지지 않고 따라갈 정도라서 걷는 내내 힘들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앞질러 가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면서 걷는데 출발 할 때부터 여러 차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젊은 여자 분 세 분이 또 앞질러 가는데, 배낭 뒷면의 배번호 붙인 아래 문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누구야! 너니까 힘들더라도 잘 헤쳐나갈거야대충 이런 내용의 각각 다른 격려 문구를 읽는 순간 사연이 궁금했지만 오지랖 넓게 물어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간절한 바램을 표현한 그 심정은 알 것 같아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사정을 모르지만 정말 누군가가 힘든 일을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같이 걷던 후배와 보문에서 헤어진 이후로 몇 시간 째 누구와 말 한 마디 섞지 않고 발밑만 내려다보며 묵언수행 하듯이 걸었습니다.

  첫 번째 체크 포인트에 닿으니 이전과는 달리 쉴 수 있는 간이천막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후에 간식과 음료를 지급한 곳은 전부 다 그런 천막이 설치되어 있어서 참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덕동댐 삼거리에서 추령재 올라가는 길가의 일부 구간은 새로 정비를 해두어서 지나가는 차량을 의식하지 않고 갓길로 편하게 걸었는데 이 구간에는 바람이 많이 불고 기온이 서늘해져서 한기가 들었지만 그냥 얇은 옷을 입은 채로 걸었습니다. 처음 이 걷기대회에 겁 없이 아내와 딸을 데리고 참가했을 때 어두운 갓길을 걷던 아내가 발목을 접질러서 먼저 회송차를 탔는데 황룡마을 입구에 정차해 있는 회송차를 보니 그 때 생각이 났습니다. 비록 완보는 못했지만 아내는 그 때 태어나서 가장 먼 길을 걸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라톤에 미쳐있던 내가 준비가 덜 된 아내를 고생시킨 것이 두고두고 미안했지만 이 때 겨우 완보한 딸아이는 나중에 보니 취업 준비를 할 때 자기소개서에 66킬로를 완보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써 둔 것을 보고는 영 잘못된 도전은 아니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겁 없이 도전한 젊은이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도 언젠가 어느 곳에서든가 힘든 이 순간을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일이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저 습관처럼 걷기

   추령재로 올라가는 큰 도로인 경감로에는 달빛이 무더기로 쏟아져 내려 대낮처럼 밝은데 앞뒤를 둘러봐도 가까운 곳에 사람이 보이질 않고 이따금 지나가는 차량들 외에는 천지가 조용합니다. 길가에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서 철책너머 물 흐르는 곳을 쳐다보다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걷고 또 걸으며 추령재에서 먹을 국물이 따뜻한 왕뚜겅 라면 생각을 하며 그저 걷기만 했습니다.

  스스로 내 몸의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간단한 한 가지 방법이 살고 있는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 일입니다. 저층이라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늘 걸어 올라가는데 빠르게 걸어 올라가도 숨이 전혀 차지 않을 때가 있지만 어떤 때는 숨이 목까지 차오를 때도 있고, 세 계단을 한꺼번에 올라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몸이 가볍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두 계단씩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힘들 때가 있습니다. 걷기대회에서는 도로 구간을 벗어나 백년찻집이 있는 추령재까지 올라가면서 힘든 상태를 확인하곤 하는데 이날은 지루하고 힘이 들었습니다.

  백년찻집을 알리는 색이 바랜 간판은 늦은 밤인데도 환하게 켜진 불빛 아래 그냥 서 있었고 반가운 마음에 카메라를 꺼내 몇 컷 찍고는 다시 고개를 올라가는데 왼쪽 옛길 방향에 왕의 길이라는 도로 표지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고개 양쪽에 쭉 늘어서 있는 한지가로등이 마치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듯 서 있어 그래도 힘을 냈습니다. 지난 해 만파식적동산에서 보았다고 생각했던 길은 그리움을 부른다는 글귀가 길가에 두 군데나 붙어 있어서 카메라에 다시 담았고 재 정상에 새로 설치된 여러 가지 조형물도 역시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따뜻한 국물의 힘

  25km 지점인 추령재 정상의 휴게공간도 역시 이전보다 천막을 서너 개 더 쳐서 바람을 피해 의자에 앉아서 라면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두어서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김치와 라면을 받아 천막 한쪽 구석에 앉아서 국물까지 다 마셨습니다. 인스턴트식품이라고 평소에 라면을 입에 대지도 않는데 덜 불은 왕뚜껑 라면 맛이 기가 막힙니다.

  라면을 먹고 서둘러 일어나서 양말을 갈아 신고 바셀린을 더 바르려다가 견딜만해서 백년찻집에도 들르지 않고 바로 추령재를 내려가는데 따뜻한 라면국물을 마셔서 그런지 발걸음이 많이 가볍습니다. 시계를 보니 이미 시간은 자정을 넘긴 1245분이었지만 그래도 115분경에 통과한 지난해보다는 걷는 속도가 더 빠른 셈이었습니다. 터널에서 이어지는 도로의 거대한 교각 사이를 지나니 장항리의 커다란 건물인 한수원 본부 간판이 보였고 마을 가운데 있는 화랑고등학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경주 쪽에서 지나온 도로 곳곳에 신입생모집 광고물을 게시해둔 것을 보고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항리에서 석굴암 올라가는 도중에 장항사지석탑 근처가 66km의 중간지점쯤 되니 반쯤은 지나왔다는 생각에 힘이 납니다. 이 지점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출발해서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터라 뒷모습이 눈에 익습니다. 장항사지석탑 맞은편에 설치된 34킬로 지점 휴게소에서 따뜻한 꿀물을 한 잔 얻어 마셨는데 밀감도 하나 주더군요. 이곳에도 역시 휴게용 천막을 더 설치해두어서 의자에 앉아 잠시 쉬면서 양말을 벗고 발가락에 바셀린을 더 바르고 신던 발가락양말 겉에 다시 바셀린을 듬뿍 바르고 양말을 덧신었습니다. 나이 드신 한 분은 발톱이 갈라져서 더 걷지 못하겠다면서 회송차를 탄다고 하셨는데 많이 실망한 눈치였습니다. 커다란 찜통에 뜨거운 마실 물을 펄펄 끓이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나서 바로 나서서 오르막길을 쭉 걸었습니다. 토함산자연휴양림을 지나서 가파른 길을 걷는데도 지치지 않고 힘이 났습니다. 해마다 이 지점에서 졸음이 와서 힘들었는데 손수내린 더치커피 원액을 가져가서 물에 간간이 타서 마셔서 그런지 정신이 말똥말똥하였고 얇은 겉옷을 입었는데도 춥기는커녕 오히려 등에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 체크 포인트에서 확인을 받으면서 친구와 닮은 사람이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어서 반가운 척 했는데 진주에서 온 친구가 아니어서 멋쩍은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길가 숲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리는 길을 가는데 적적하여 혼자 낮은 목소리로 학교 다닐 때 부르던 동요와 가곡을 부르며 갔습니다. “섬집 아기”, “오빠생각”, “엄마야 누나야”, “동심초”, “희망의 나라로”, “울산아가씨”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힘들어도 참고 가자

   석굴암 주차장의 불빛은 어두운 바다에서 보는 등댓불 같은 존재입니다. 휴게 천막의 불빛을 보는 순간 반가운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졌고 기다리지 않고 시락국밥과 김치를 받아서 천막 한 곳에 앉았습니다. 이곳 역시 지난 해 보다 훨씬 많은 천막을 설치해 두어서 여유 있게 앉아서 쉴 수 있었습니다만 빨리 먹고 일어나서 석굴암주차장 화장실 입구에 가서 퍼질러 앉아서 배낭을 꺼내 두꺼운 점퍼를 꺼내 입고 다시 발바닥과 발가락 위에 바셀린을 바르며 20분 정도 넉넉하게 쉬었습니다.

  그런데 따뜻한 국밥을 먹어서 그런지 불국사까지 내려가는 동안에 어둡고 가장 험한 길을 내려갈 때 졸음이 오기에 돌계단 길이라서 순간이라도 방심을 하면 다칠 위험이 가장 많은 구간이어서 바짝 긴장을 해서 말 그대로 슬슬 기듯이 내려와서 이 구간에서 유일하게 여러 사람에게 추월을 당했습니다. 불국사 정문에서 사진을 한 컷 찍고 붉은색의 네온 안내 표지판이 가리키는 대로 길을 찾아서 코오롱호텔 삼거리까지 쉽게 내려갔습니다. 2007년 가을에 첫 참가를 했을 때 딸내미가 이 지점에서 퍼져서 회수차를 타라고 아무리 달래도 완보를 하겠다고 고집을 피워서 한참을 실랑이를 하던 생각이 났습니다.

  이미 시간이 여섯시가 지나서 주변이 밝아지기 시작했고 구정동으로 세 번째 체크 포인트까지 내려오는 길에는 보도블록이 튀어나온 곳이 여러 군데 있어서 올해도 조심스럽게 도로 가장자리 흰 선 밖을 타고 걸었습니다. 장항에서부터 이곳까지 혼자 온 중년 여자 분과 일행 여러 명이 함께 온 남자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걸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버스 정류장에 앉아 쉬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었고, 중간에 보니 몇 명이 들판 가운데 길로 가는 것이 보였지만 이왕 힘들게 걷는 것이니 지정된 코스를 벗어나지 않고 다른 이들과 함께 차량이 질주하는 산업도로 갓길을 따라 통일전으로 접어드는 삼거리까지 꾸준하게 걸었습니다.

  은행나무에 단풍색은 아직 덜 들었지만 보도블록 위에 은행 열매가 무더기로 떨어져 있어서 떨어진 은행 열매를 피하지 않고 밟으며 그대로 지나갔습니다. 은행나무 가로수를 배경으로 걷는 사람들을 찍기 위해 해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모여 있던 통일전 앞에 올해는 사진 찍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54km 지점에서 주는 막걸리와 바나나를 얻어먹고 잘 생긴 남산의 소나무와 역광 속에 반짝이며 흔들리는 억새꽃 사진을 몇 장 찍는다고 시간을 지체하다가 뛰어가는 젊은 사람들을 뒤따라 화랑교육원과 경상북도산림연수원 옆을 지나치면서 또 사진을 몇 컷 찍었는데 무슨 까닭인지 올해는 잎이 멋있게 물든 나무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배반동 강변의 네 번째 체크 포인트에서 확인 도장을 받고 강둑길로 걸어가는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젊은이가 힘들게 걷고 있어 학생이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해서 혹시 K고등학생이냐니까 그렇다고 하면서 아저씨는 오래 참가했느냐고 묻고 나서 그렇다고 대답을 하니 대뜸 물집이 생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고 묻는다. 올해 2학년이고 친구 사이라는데, 같이 66km코스에 참가한 마흔 명 중에서 반 이상이 중간에 포기를 했다고 하며 자기들도 무척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였다. 나도 학교에 근무하고 있다고 소개를 하고 출신중학교를 물어보니 내 자격연수 동기가 교장으로 근무하던 학교라서 아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지금 힘들지만 그 나이에 이런 도전을 한 자체가 대단한 일이고 혹시라도 나중에 진학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쓸 때 힘든 고비를 이겨낸 것을 솔직하게 적는다면 지금의 이런 도전을 대단한 용기로 인정해 줄 것이라는 위로를 포함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박물관 근처까지 속도를 늦추어 같이 걸었는데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어 완보할 수 있도록 끝까지 힘내라고 인사를 하고 먼저 나섰습니다.

  박물관과 반월성 사이 길을 걸어가는데 코스모스가 곱게 핀 강변을 지날 때 행사 공식 사진사가 기다리고 있다가 사진을 찍어주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고, 월정교를 건너서 교동마을 입구에서 다시 계림 숲 앞으로 이동하는 코스는 처음이라서 낯설었지만 짧은 거리 안에 경주의 명소를 두루 보여주려는 고육책이 아닐까 싶기도 했고, 지루한 강변길로 가지 않고 바로 대능원으로 들어가니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역시나 이곳에서도 코스 곳곳에 안내하는 봉사자들이 서서 횡단보도를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차량통제까지 해주어서 정말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대능원 후문의 63km 지점의 마지막 체크 포인트는 이전과 같아서 몇 년 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고 결승지점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미 몸이 지쳐 있으니 이 구간이 얼마나 지루한지는 여러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마지막까지 힘을 내자고 다짐을 하며 걸었습니다.

  걷는 동안의 생생한 기록이랍시고 사진을 마음대로 찍어대던 이전과는 달리 사람이 포함된 사진을 찍는 일이 조심스러워서 되도록이면 사람이 지나갈 때는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지나가도록 기다릴 수도 없고 사진을 찍어야 하니 비키라고 할 수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특징이 드러나지 않도록 말 그대로 풍경으로 인식할 정도로만 사진을 찍었습니다.

  대능원을 지나올 때도 그랬고 이후 시내를 통과할 때도 사진을 찍고는 재빨리 이동하기를 반복하였고 또 시내를 통과할 때는 신호를 대기해야 하니 걸음이 좀 더딘 두 젊은 남녀 일행과 동행하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는데, 내가 마지막 체크 포인트에서, “남은 코스는 이전과 같은 코스네요?” 하며 물을 때 곁에서 들었는지 지난해에도 본 것 같다면서 나보고 이전부터 여러 번 참가했느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고 남은 거리를 같이 이동하였는데, 여자 분이 앳되어 보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부녀지간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면 단체로 같이 온 학생과 선생님인가 싶기도 했는데 나중에 골인지점에서 막걸리를 한 잔 얻어먹으면서 옆 자리에 앉아 어묵안주를 나누어 먹으면서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니 같이 참가한 단체 팀원이었습니다.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완보한 남자분도 대단하지만 여성분은 정말 대단해 보였습니다.

  몇 시간 전에 언제쯤 도착하느냐고 마중을 가겠다고 카톡을 보냈던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골인지점으로 들어서면서 기념 촬영을 하고 완보증과 메달을 받고 포토 존에서 사진을 찍는데 행사 공식 전담사진사가 또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그 분이 들고 있는 니콘 D5가 대단한 성능의 카메라라서 그런 카메라에 사진 찍히는 것이 개인적으로 영광이라고 농담을 하였고, 지난 대회에도 골인지점에서 우리 부부를 함께 찍어주셔서 행사 홈페이지의 대문에 사진을 실렸다고 고맙다고 하니 기분 좋게 몇 컷을 더 찍어주었습니다. 지난 해 후반부에 함께 걸었던 박**씨를 만났는데 이미 완보증을 받고 행사장에서 나오는 걸음이었습니다.

   아내가 차를 가져와서 운전을 하니 걱정 없이 주최측에서 주는 막걸리를 몇 잔 얻어 마시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조수석에서 곯아떨어졌습니다.

      

힘든 내색을 하지 못한 이유

   추석 전에 고향 선산에 벌초를 하러 갔다가 증조모님 산소까지 벌초를 마치고 내려오다가 예초기를 맨 채로 미끄러져서 허리를 삐끗하였는데 통증이 오래 계속되어서 몰래 약을 사먹고 버티었는데 좀체 풀리지 않고 통증이 끊이지 않아서 끙끙 앓았는데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눈치 채고는 올해는 그 먼 길을 걸을 생각을 하지도 말라고 했지만 기어코 참가를 하고 싶었기에 힘든 내색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다시 내년을 기다리며

  마지막으로 주최 측에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남깁니다

.

  덕분에 멋진 추억거리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지요? 힘드니까 또 다시 도전합니다.

  올해는 어느 해 보다 대회 준비에 신경을 더 많이 쓴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느꼈습니다.

  또 내년을 기약합니다.

  같은 길을 걸었던 이름도 모르는 많은 분들에게도 내년에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남깁니다.

 

 

 

* 사진은 천천히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