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2. 14:54ㆍ지난 이야기/소소한 일상
부모님 두 분이 다 돌아가신 지 1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이제는 1년에 몇 번씩 성묘와 벌초하러 가서 산소와 빈 집을 둘러보고 오는 것 외에는 고향 갈 일이 없습니다.
그저께는 아들을 데리고 집사람과 같이 고향집에 다녀왔습니다.
전날이 아버지 기일이라서 집에 온 아들을 데리고 갔는데,
아이가 고향집을 떠난 지 스무 해가 다 되어가니 어릴 때 살던 기억은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집 마당에 차를 주차해두고 1킬로 조금 넘는 산길을 걸어서 올라갔습니다.
그 짧은 길에 얽힌 추억이 많습니다만
이제는 둘레길이 되어서 그래도 걷는 사람들이 제법 다니는 듯합니다.
멀리서 모교 감포초와 감포중고등학교 사진을 몇 컷 찍어 왔습니다.
모교이자 스무 몇 해전 근무지였던 감포중고등학교 건물입니다.
개교할 무렵인 50년 대 중반에 인근의 경주고등학교 교장으로 봉직하시던 시인 청마 유치환선생님이 가사를 썼다는,
모교 감포고등학교 교가의 가사처럼 "창망한 동해 물결"이 언덕너머로 빛납니다.
체육관을 새로 짓고
본 건물은 칼라강판으로 외관을 리모델링했습니다만,
이전에는 흰색 3층 단독 건물이라서,
우리 자유로운 청춘을 가두는 "정신병원"이라고 희희덕거리기도 했습니다.
진하영감님 산막재의 벚나무입니다.
벚꽃이 호드라지면 동네아주머님들이 꽃놀이(花煎놀이)를 하던 곳입니다.
지금보니 늙은 벚나무입니다만 봄철 한 때는 화사한 꽃등을 켜기도 했습니다.
장마철 어두운 밤에 큰비가 올때 물꼬를 돌리러 가면서 이곳을 지나칠 때 통금사이렌이 불면,
읍내불빛이 보이질 않아서 공포감을 느끼던 곳입니다.
밤눈이 어두우신 아버지 대신에 열 몇 살 무렵부터 물꼬를 보러 다녔습니다.
우리 논 윗쪽에 작은 못이 있었지만 천수답이나 다를 바 없어서
비가 올 때 도랑의 물꼬를 돌려두지만 밤새 큰비가 오면 못에 물이 넘쳐서 논둑이 터져버리니
아버지는 주무시지 않고 걱정을 하시고,
그래도 사내라고 제가 늦은 밤에 물꼬를 돌리러 다녔습니다.
아랫쪽 건물이 감포초등이고 왼쪽 언덕 위의 건물이 감포중고등학교입니다.
감포초등은 제가 다닐 때 학생 수가 2,000 명이 훨씬 넘었는데,
지금은 전촌과 대본 두 초등학교를 폐교하여 통합하고도 학생 수가 1/10 이하로 줄어버렸습니다.
격세지감이지요.
초등학교는 통폐합하면서 새로 건물을 지은듯한데 가까이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감포항에 예전에 없던 큰방파제가 새로 생겼네요.
태풍이 올 때 집채만한 파도가 밀려오면,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 내항을 덮쳐서 배들이 부서지는 일도 종종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염려는 없을 것 같습니다.
누가 이름도 곱게 지어서,
"고아라해변" 이더군요.
이전에 우리는 그냥 지명을 따서 "오류해수욕장" 이라고 했는데요.
이전에는 모래가 많은 멋진 해수욕장이었는데,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이 해변의 고운 모래를 LST로 퍼가서 모처에 있는 대통령별장에 깔았다고 합니다.
해안선의 변화가 별로없어서 바닷물 흐름 자체도 별로 변하지않을 것인데 그 많던 모래가 없어진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쨋거나 겨울바다 파도는 쉼없이 밀려왔다 밀려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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