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8. 15:20ㆍ미련이 남아있는 마라톤 이야기/완주기(마라톤, 울트라)
서울동아국제마라톤대회 참가(2004)
- 장소 : 광화문-잠실
- 시간 : 3시간 17분 16초 (08:01 - 11:18:16)
- 거리 : 42.195km
- 종류 : 대회참가
- 페이스 : 4'41"/km
- 속도 : 12.83km/h
- 운동화 : -젤 디에스 트레이너 7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이라는 울릉도의 울릉종고에서 3년을 보내고 육지인 영덕군의 영해고등학교에서 근무를 하게 되니 대회에 참가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대회를 앞두고 나갈 수 있을까 싶어서 높은 파도를 쳐다보며 가슴을 졸이던 일도 이제는 한갓 추억이 되어 버렸다.
새학기가 시작이 되고 근무지를 옮기면서 아쉬운 이별과 환영의 자리가 이어졌지만 한쪽 구석에 멀거니 앉아서 술잔을 피해야 하니 힘이 들었다.
한이 많은 만큼 정이 듬뿍 든 섬사람들과 맺은 인연은 질긴 것이라서 이별의 술이라도 한 잔 주고받아야 하였지만 내가 먼저 손사래를 쳤으니 정이 든 지인들에게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달린다는 것을 아는 분들은 사정을 아시니 이해를 하지만 만나는 분들 가운데서는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으니 곤혹스러울 때가 많았다.
더구나 연습을 제대로 못했으니 조바심이 일기도 해서 더욱 몸을 움츠려야 했다.
새 학교에서는 처음 만나는 이들이 반갑게 다가서는 것조차 피해야 하였으니 매정한 사람으로 비칠까봐 신경이 쓰였다.
토요일에 조금 일찍 나간다고 윗분들께 미리 말씀을 드렸더니 흔쾌히 다녀오라고 하셨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학교에서 일찍 나와서 포항에 내려가서 우리 포항마라톤 클럽회원들과 버스를 대절하여 함께 서울로 갔는데 클럽집행부에서 준비를 많이 하여서 편안하고 즐겁게 다녀왔다.
광화문 근처에서 잠을 잤는데 저녁에 잠깐 광화문 광장에 나가서 촛불 시위현장을 보았다.
지난해 12월에 참가 신청을 해 두고 거제와 고성대회를 거쳐서 동아국제마라톤에 참가하였으니 미리 충분한 준비를 하였어야 하지만 2월 한 달과 3월 중순까지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달릴 수 있을는지 걱정이 앞섰다.
지난 해 내내 몸의 상태를 생각하지 않고 초반에 무리를 하다가 중반 이후에 겪었던 고통을 떠올리기도 싫었으니 또 그런 경우를 겪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걱정이 되었지만 올 해 참가한 두 번의 대회 때는 그런대로 달릴 수 있었다고 마음에 위안으로 삼고 낯선 서울의 여관에서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해장국을 먹고 집결지로 옮겨가니 안내 방송이 왕왕 울려서 마음이 다급해졌지만 옷을 맡기고 조금 달리다가 한쪽 구석에서 스트레칭을 했다.
날렵한 몸매의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데 고수들로 보였다.
가슴에 배번은 3000번대를 달았지만 저 사람들과 뛰어서 중간 정도의 등수에라도 들어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슬그머니 자신이 없어졌다.
옷을 맡기기 전에 와띠노님과 조아서님을 만났고 옷보관소 근처에서는 해시계님 내외분을 만났다. 물시계님께서 인연이라시며 반가워 하셨다.
큰 대회에서는 늘 그렇듯이 코끝이 찡해지는 감동 속에 출발을 하였고 몸이 말하는 대로 부담 없이 달렸다.
미리 레드 존의 뒤쪽에 서서 초반에 빨리 달리지 말자고 몇 번이나 다짐을 했다.
출발을 하자마자 호흡이 거칠어지지 않을 정도로 달리니 지난해와는 달리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생겼다. 지난해에 이어서 또 다시 서울 도심을 달린다는 사실 때문에 가볍게 흥분이 되었지만 흐름에서 크게 뒤쳐지지는 않았다. 또 초반에 다소 뒤쳐진다고해도 길고 긴 레이스에서는 앞질러 가는 사람들을 언제든지 다시 만날 수 있으니 조급하지 말자고 다짐을 하며 오버 페이스를 경계했다.
달리는 도중에 보니 도로통제 때문에 항의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열심히 응원을 해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해가 거듭될수록 다른 사람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즐겁게 달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보았다.
각 구청에서 내건 환영 플래카드를 보면서 서울의 여러 구를 지나서 달린다는 것을 알았다. 하기야 백오리길이니 짧은 거리는 아닌 셈이다.
구름도 엷게 끼어 있고 바람이 시원하여 몸에 땀이 별로 나지 않아서 달리기에 편했다.
초반 10킬로 기록이 예상보다 조금 늦었지만 한강 다리를 건넌다는 중간지점 까지는 무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왼쪽 허벅지의 감각이 둔해졌지만 참고 달렸다.
풀코스를 제법 달리다보니, 달리는 순간순간에 겪는 고통은 지나고 나면 대부분 다 잊혀지거나 결승지점에 다다를 때쯤에는 이겨낼 수 있었기에 여유를 갖기로 했다.
푸른나루님을 지나쳐가니 목표 시간에 비해 늦은 게 아니시냐면서 염려를 하셨다. 해시계님도 지나쳤다. 철인 3종을 준비하신다더니 웨이트를 하셔서 그런지 몸이 많이 좋아지셨다. 이경두님과 고영우님도 함께 뵈었다.
지나가는 중간중간에 사진을 찍는 곳에서는 옆으로 빠져나와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곳곳에서 신명나게 울려대던 풍물패나 경쾌한 음악을 연주해주시는 분들 때문에 몸은 지쳐갔지만 힘이 났다.
런다의 희망대로님과 다른 분들께서 재빠르게 곳곳에 옮겨 다니시면서 "런다 힘!"을 외쳐 주셔서 반갑기도 하였고 용기가 났다.
20킬로 지점을 지나가는데 뒤에서 "같이 달립시다!" 하고 인사를 하기에 돌아보니 하늘맑음 동서가 추월을 했다. 연습을 많이 했는지 겨울 대회 때 하프 기록이 좋더니 과연 잘 치고 나갔다.
함께 달리자고 하였지만 내게는 그런 속도가 무리일 것 같아서 먼저 가라고 보냈다.
38킬로쯤에서는 왼쪽 장딴지가 당기기에 속도를 조금 늦추었더니 더 이상 상태가 악화되지는 않았다.
도심을 꾸불꾸불 돌아가는 코스라서 운동장이 보이지 않으니 잠실 운동장이 멀게만 느껴진다.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하였다. 20분 정도만 별 탈 없이 달리면 될 터라서 지쳤지만 힘을 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 마지막 세트에서 목표를 넘어 몇 개 더 하려고 애를 쓰던 힘겨웠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참았다.
마침내 40킬로 지점을 통과했고 시계를 보니 목표 시간 안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조금만 더 일찍 라스트 스퍼트를 했으면 15분 안에도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간사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남은 2킬로도 결코 만만한 거리는 아니며 그 순간에 다리 근육에 경련이 생긴다면 기대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도 있다며 성급한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낯설고 서먹서먹하지만 토요일 수업 시간에 마칠 때 서울에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려고 간다고 하니 "선생님, 잘 달리십시오!" 하고 인사를 건네던 순하고 착한 영해고의 아이들을 떠올리며 당당해지자고 다짐을 하며 달렸다.
나중에 가을대회에 참가할 때는 3학년 아이들의 수능대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등에 격려 문구라도 한 장 붙여서 달려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세 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을 달리면서 주위 사람들의 성원과 격려를 떠올렸고, 목이 터져라고 응원을 해 주시던 분들의 도움으로 올해쯤에 이루었으면 하고 바라던 200분대 안으로 진입을 하였다. 아울러서 개인 최고기록을 달성하였다.
구간 기록 :
5킬로 - 24;39:61
10킬로 - 23:14:82( 47:54:43)
15킬로 - 22:37:65(1:10:32:00)
20킬로 - 22:46:81(1:31;18:00)
하프 - 05:23:48(1:38:42:00)
25킬로 - 17:26:61(1:56:08:00)
30킬로 - 23:18:90(2:19:27:00)
35킬로 - 23:19:77(2:42:47:00)
40킬로 - 24:13;16(3:07:00:00)
결승 - 10:28:82(3:17:16:00)
새학기를 맞아서 섬에서 육지로 옮기면서 연습을 제대로 못하여서 걱정을 했지만 일정한 구간 기록으로 기분 좋게 뛰었으니 성공적으로 달린 셈이다. 겨울동안에 두 번이나 대회의 풀코스에 참가하여 달린 것과 마지막 주에 천천히 욕심 없이 달렸으니 부상이나 피로의 누적도 없어서 좋은 결과를 얻은 힘이 되었다.
지금은 한갓 희망에 불과하지만 꿈은 이루어진다는 바람을 갖고 꾸준하게 연습을 하여서 나의 약점인 스피드가 보강이 되면 언젠가는 서브3에 도전을 하여 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덕 훈련도 하고 구간 훈련도 함께 하여야 할 것이지만 무엇보다 지나친 욕심을 삼가고 꾸준하고 연습량을 늘이고 즐겁게 달려야 할 것이다.
이전보다 기록이 좀 당겨져서 기분이 좋아진 것도 있지만 기복이 없이 일정한 구간 기록으로 성공적인 레이스를 펼쳤다는 사실 때문에 결승지점에 도착을 해서도 기분이 좋았다.
풀코스를 열 다섯 번을 달렸지만 가장 만족스런 대회였다.
달리는 매순간마다 일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달리는 내내 입시 준비에 시달리는 고3인 큰 애와 올해 과학고에 입학하여 낯선 환경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둘째 그리고 이제는 키가 나보다 훌쩍 더 커버린 막내 아이가 생각이 났다.
모두 힘든 생활이지만 애비가 이렇게 힘든 순간을 이기듯 잘 견디어 달라는 부탁을 마음속으로 하면서 달렸다.
그리고 삼 년 세월도 모자라서 다시 또 떨어져 지내는 불편을 감내해 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마음속으로 수십 번도 더 하면서 달렸다.
그리고 풀코스를 별 탈 없이 완주할 수 있도록 건강하게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고향 뒷산에 누워 계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도 잊지 않았다.
많은 이들에게 받은 정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달리는 동안 늘 지니고 살고 싶다.
'미련이 남아있는 마라톤 이야기 > 완주기(마라톤, 울트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주 단축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달리기 (운영 실패기 ) (0) | 2008.09.16 |
---|---|
현대산악마라톤 대회 참가 (0) | 2008.09.16 |
이렇게라도 달려야 하는가? (0) | 2008.09.08 |
멀고도 험한 길(고성마라톤 참가) (0) | 2008.09.08 |
첫 도전-제천 청풍호반 마라톤 (0) | 2008.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