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통신 - 가을 아름다운 죽파

2008. 6. 17. 19:03글 소쿠리/자작 시 모음

 

영양통신 - 가을 아름다운 죽파


죽파 골짜기 좁은 하늘 위에서

햇살이 그림이라도 그리다가 붉은 물감 통을 떨어뜨렸나 보다

색색의 물감 방울 튄 곳마다

쳐다보기 두려운 저 붉은 빛

많은 비밀들을 감추느라 돌아앉아 혼자 낯을 붉히는 잎사귀들

햇살이 설핏 기우니

곧 돌아가리라 한다

곧 돌아가리라 한다

돌아가는 모든 것들은 슬픈 얼굴이 아니라

저렇듯 기쁨에 열 올라 손을 흔들고 가는 것은

돌아갈 곳을 아는 탓이리라


한꺼번에 모두 보내는 것이 아쉬운지

골짜기는 깊은 숨 쉬고 있고

새들은 이따금 낮게 날며 날개를 벼르는데

말없이 보고 있는 소나무

긴 가지 끝에 푸른 잎 드리우고 서서

손을 흔들며 철마다 떠나는 이웃을 보낸다


사람이 귀한 골짜기

옛 사람 살던 흔적은 무너져 내렸지만

골짜기에 박힌 웃음

심심한 메아리에 묻혀 오고

오는가

가는가

묻는 인사가

고개를 넘을 때까지 따라 온다


숲은 여름 내내 모은 이슬을

맑은 눈물 방울로 달고 있다가

밤마다 서리되어 하얗게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