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17. 18:17ㆍ글 소쿠리/자작 시 모음
갈수기(渴水期)
그 해 여름 내내 우리는
강을 가로질러 다녔다
마른 먼지가 기둥이 되어 일어서는 강바닥을 내려다보면
눈가가 얼얼해졌다.
우리 살다 힘들어 무릎을 꿇으면
삶의 궂은 모습이
어느 때인가
저리 속속들이 드러나
미세한 감정조차 걷잡을 수 없이 다 드러내 보이겠지
무심히 지나쳤던 사소한 일들도
저리 휘몰려
처참하게 일그러져
아픈 모습으로 남아있겠지
물이 사납게 할퀴고 가면 묻혀있던 뿌리까지 드러나듯
우리 머물던 시기에
은밀하게 떠돌다 가라앉은 말들이 묶은 줄을 풀고
익사체로 떠오르고
둘러선 구경꾼들의 끈질긴 호기심 앞에
속속들이 헤집어지겠지
가슴속에 묻어두고 은밀한 웃음 나누던
우리들 사이의 하찮은 비밀마저도 공개되어
가까이 서서 들여다보던 사람들 모두 고개를 돌리겠지
돌을 덮은 마른 물이끼처럼
벗어버릴 수 없는 두꺼운 가면을 덮어쓰고
서글픈 속 웃음을 웃으며 누워있어도
거센 손에 가면이 벗겨지고
그 때까지 남아있을 상흔들이 한꺼번에 드러나면
아무 것도 감출 수 없음을 슬퍼하겠지
살다가 생긴
아픈 생채기만 속에 안고
세월의 강 복판에서 마른 바람맞고 서 있겠지
그 해 여름 내내 우리는 마른 강의 허리를 밟고 다니며
마침내 어쩔 수 없이 속을 드러낼 허술한 덮개를 지닌 삶의 부분들과
그런 날을 두려워하는 뒤늦은 눈뜸에 까닭 없이 마른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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