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오전

2008. 6. 17. 18:13글 소쿠리/자작 시 모음

 

수요일 오전


아파트 단지 건너편 서점에 갔다.


들말 아파트, 108동 뒤쪽 도로변에 터진 앞섶처럼 열려있는 울타리를 빠져 나와 파란 바탕인 연속무늬의 보도 블록 가운데 놓여 있는 붉은 것들만 골라 밟으며 갔다. 가끔씩 제자리 찾지 못한 보도 블록이 발목을 흔들었다. 겨울호 문예지 세 권을 사서 가까운 횡단보도를 두고 강둑이 보이는 삼거리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마른 강바닥을 메운 모래더미에 막혀 흐르지 못하는 검은 물 속에 겨울 철새들이 흔들거리며 떠 있다. 강바닥이 물이 되어 흐르던 여름 장마철에는 낮아 보이던 둑이 높이 허리를 세우고 버티고 있다. 바람이 훑고 지나가는 맞은 편 산기슭에는 검은 줄기 나무들이 마른 가지를 하늘에 맡긴 채 서서 웅성거린다.

살다가 가끔씩 먼길로 돌아가 볼 수 있다면 지름길로 갈 때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 세상살이는 마음먹기 나름이어서 빨리 가지는 못하지만 더 여유가 있다. 


가까운 붕어빵 가게에서 한 사내가 붕어빵을 한 봉지 사 간다.

비닐 봉지 안에는 온기들이 서로 기대려다 밀려 고개를 내민다.

따라 가지 못한 어묵은 속을 졸이며 남는다.

맞은편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왼쪽을 쳐다본다. 길 건너편에서 쳐다보는 것을 아는 지

어쩌다 앞을 보기도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린다. 늙은이들은 마른손을 비비고 여자들은 목도리를 고쳐 맨다.

학생들은 가방을 흔든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여전히 왼쪽을 쳐다본다. 곁을 지나가는 버스에 가려 내 시선이 토막 난다. 얼굴을 붉히며 버티는 신호등은 쉽게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신호등이 푸르게 웃으며 길을 틔워주어 건너가니 아이의 손을 잡고 버스를 기다리던 젊은 여자가 등을 보이며 버스를 타고 가 버린다.


기다리던 사람은 내가 돌아오기 전에 떠난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왼쪽을 쳐다본다.


먼길을 돌아오는 것이 내 삶에는 여유가 있으나 때때로 나를 기다리던 사람은 참지 못하고 돌아오기 전에 떠나버린다.


107동 꼭대기 위에 있는 금속 환풍기에 햇살이 미적거리고 앉아 희미하게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