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6. 07:52ㆍ제주도 오름 이야기
머무는 마지막날이라서,
새벽에 숙소인 게하에서 도둑고양이처럼 빠져나와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성판악 가는 281번 첫 버스를 탔습니다.
성판악 가는 버스는 제주시외버스터미널 홈에서 출발합니다.
도착하자마자 빗방울이 돋기에 급하게 비닐우의 하나 먼저 사고나서,
우거지 국밥을 한 그릇 사먹고 김밥도 두 줄 산 뒤에 등반을 시작했습니다.
주차장은 이미 만차입니다.
요일 모르고 살고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주말이었네요.
성질대로 쉬지 않고 그대로 직진합니다.
카메라 바디만 세 대이니 등짐 무게에 등줄기에 땀이 줄줄합니다.
9.6km 정도인 오르는 등로는 여러 차례 다녀서 낯이 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망할 곳이 별로 없는 이 길고도 지루한 길을 참고 올라가는 것은,
그래도 정상 근처에서 바라보는 멋진 풍광 때문일 것입니다.
몇 년 전에 별빛중학교에 근무할 때,
첫 제주도 수학여행단에 참가한 2, 3학년 아이들 가운데서 한라산 등반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미리 신청을 받아서,
한 달 정도의 준비 기간에 야간자율학습 마치고 학교 주변 둘레길을 걸었고,
단단히 준비를 해서,
참가한 모든 아이들이 무사히 등반을 마칠 수 있었기에,
아이들과 함께 올라갔던 기억이 새로웠습니다.
중간에 쉬지 않고 워낙 빠르게 올라가서,
시간 여유가 있어 사라오름에도 처음 가보았는데,
사진보고 갔다가 실망했는데 업친데 겹친다고 해무가 올라와서 전망대에서 본 시계가 꽝입니다.
사라오름과는 인연이 없나 봅니다.
한라산에 가끔씩 왔어도 늘 단체산행이라서 혼자 옆길로 빠질 수가 없어서 그냥 지나쳤고,
지난 9월 처음으로 단독산행을 했을 때는 물이 가득찼다고 출입통제를 해서 그냥 지나쳤습니다.
진달래 대피소에서 쉬는데,
흘린 땀때문에 한기가 들어서 간단한 요기를 하고는 바로 올라갔습니다.
걸음이 빠른 편인데도 그런 나를 앞질러 가는 젊은이들이 간간이 있습니다.
속으로, '내가 등짐 무게만 아니면 나잇살 먹었어도 날아다니는 몸인데...... .' 하며 혼자 중얼거립니다.
사람이 하도 많아서 어느 구간에서는 앞사람의 엉덩이만 쳐다보고 올라갑니다.
경치고 풍경이고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성판악 코스는 1600고지쯤 올라가는 동안에는 등산로에 갇혀서(?) 올라가니 볼거리가 별로 없습니다.
다행히 정상에서는 따뜻한 가을 햇살을 선물 받아서 먹고나서 주변을 두리번거릴 여유가 생깁니다.
그 힘든 산비탈을 타고 참 많이도 왔더군요.
지난 9월 중순에 올라갔을 때는 백록담에 물이 제법 차 있었는데 바닥이 다 보입니다.
사진 몇 컷 찍고 처음 계획대로 관음사 코스로 내려왔습니다.
이 코스는 역시 듣던대로 조망이 끝내줍니다.
십여년 전 어느 해 겨울에 직원단체여행 때 제주도에 왔는데,
다들 편하게 즐긴다고 한라산 산행희망자는 저를 포함해서 딸랑 두 사람,
그 때도 성판악에서 올라가서 관음사 코스로 내려갔는데,
빙판길에 발밑을 조심하느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서 그랬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역광과 사광이 비치는 잎떨군 가을철 나무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시선을 뺏깁니다.
경사가 장난이 아닌 구간이 더러 있습니다만 적당히 곁눈질하면서 내려왔습니다.
삼각봉까지는 좋았는데 이어지는 구간은 길고도 지루한 길이더군요.
탐라계곡을 따라 내려오는데 경치가 끝내줍니다.
급류에 깎인 자연석이 만들어낸 기묘한 모습에 시선을 뺏겼습니다만 이미 지쳐 있었고,
역광으로 보이는 단풍사진도 많이 찍었지만,
여기에 올리지 않은 이유는 눈으로 본 것과 달리 카메라에 담긴 장면은 그저 그랬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무사히(?) 내려와서,
제주에 와서 처음으로 환승버스도 타보고,
터미널 근처 깨끗한 모텔에서 1박을 합니다.
(제주도 한달살이 카페에 올렸던 글을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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