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부 사진이 있던데요? -만해가 머물렀던 백담사

2011. 8. 20. 10:33사진 소쿠리/세상 구경한 사진

설악산 산행을 겸한 강원도 여행 마지막날에,

만해가 구도(求道)를 하면서 머물렀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권좌에 물러난 전두환씨가 머물렀던 백담사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인제 근처에 몇 번 갔지만 백담사에는 처음 가보았습니다.

설악산자락에서는 알고보면 그곳이 그곳인데도,

한 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대통령의 유배지를 20여년이 지난 다음에야 가봤습니다.

 

 

 

머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그렇다면 괴물이지요? 그런데 어떤 이들은 혼동해서 이렇게 말 합니다.),

머리카락이 덜 난 제게는 머리카락에 얽힌 여러 가지 애피소드가 많습니다.

고향에 살 때는 서너 살 짜리 아들 손을 잡고 읍내 목욕탕에 다녀오는 길에,

동네 담벼락에 붙은 경주시장 선거 벽보판에 있던 이원식후보자의 사진을 보고는 아들 녀석이,

"아빠다" 하고 소리를 지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경주시장 선거에 출마해서 당선된 이원식시장과는 친척은 커녕 동본도 아니었지만,

한글로 이름 두 자가 같았고 이마가 넓은 것이 닮아서 사람들이 친척간이냐고 물은 적이 더러 있었습니다.

 

 

이번에 처제들과의 설악산 여행에서도,

수원처제가,

"형부사진이 백담사에 있던데요?" 하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눈치챈 제가 웃으니,

조카들도 이구동성으로 "큰이모부하고 진짜 진짜 닮았던데요......." 하면서 한술 더 떠서 모두 웃고 말았습니다.

 

 

만해 한용운님은 민족운동을 한 스님으로,

주옥같은 시를 남긴 문인으로 기억이 되는 분입니다.

저희 또래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학생이라면 누구나 만해의 시를 몇 편 정도는 다 읽었습니다.

 

 

불교계에서는 알아주는 유서가 깊은 절인지는 모르겠지만,

백담사가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는 전직대통령의 유배 이후부터입니다.

박정희서거 이후의 혼란기에 권력을 잡은 서슬 퍼렇던 전두환씨가

친구인 노태우씨에게 대통령자리를 물려준 뒤 여론에 떠밀려 백담사에서 도피생활을 했습니다.

 

이른바 쌍팔년도 올림픽이 끝난 뒤인 1988년 11월 23일 부터 약 2년에 걸친 기간 동안 백담사계곡,

깊은 골짜기에서 베일에 쌓여 지냈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 전두환씨는 삼엄한 보호 속에 극락보전 앞 화엄실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산을 타고 몰래 접근을 한 용기있는 사진기자가,

초장망원렌즈를 장착하여 찍은,

 희미한 사진 한 장을 보고 저 역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버스비 2천원을 내고 용대리에서 마을 버스를 타고 계곡을 따라 난 길로 들어가서

마음대로,

만해의 삶과 만나고,

전두환씨 유배의 흔적도 살펴보았습니다.

 

 

만해야 본디 이마가 넓은 분이 아니라 출가승으로 삭발을 했을테지요.

그렇다쳐도,

만해와 전두환씨와 제가 백담사 경내에 함께 머물렀다면 극락보전 앞 뜰이 훤할 것입니다.

 

 

눈부셔서 눈을 못뜨는 아이들도 더러 있겠지요?

 

 

 

백담사 만해기념관 뜰에 있는 만해 흉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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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씨가 머물던 흔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