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오름 이야기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이야기

황포돛배 2020. 12. 20. 08:42

제주도에 들어온 지 한참 지나서야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에 다녀왔습니다.

김영갑이라는 분에 대해서 막연하게 알고는 있었지만 두모악에 가서 두 가지 사실을 알고 놀랬습니다.

전시된 사진 한 컷, 한 컷을 담기 위해 오랜 시간 끈질기게 매달리고 치열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고, 이미 오래전에 고인이 된 김영갑사진작가가 저와 출생 연도가 같은데 젊은 나이에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어설픈 저와는 많이 달랐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후지 파노라마 617 필름 카메라!

오래전부터 사진을 좀 찍었던 사람들은 이 카메라를 어렴풋이 알고들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저 준다고 해도 사용할 엄두를 못 내는 지극히 수동적이고 조작하기 번거로운 기계식이며 쉽게 휴대할 수 없는 크기와 무게는 물론이고, 그 포맷에 맞는 풍경을 찾으려면 말 그대로 엄청난 내공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카메라가 기본적인 자체 노출계조차 없는 기계식이라는 수동성의 문제뿐만 아니라, 당시 사용한 필름이 후지크롬이라는 포지티브(흔히 슬라이드 필름이라고들 함) 필름인데, 대표적이던 벨비아는 기본 감도가 ISO 50일뿐이고, 노출관용도가 거의 없기 때문에(조금만 노출이 모자라거나 지나치면 한 컷도 못 건지고 완전 꽝이라는 말입니다) 적정 노출을 찾는다는 것이 엄청 피곤한 작업이었습니다.

심지어 야경 촬영 같은 경우에는 필름 한 롤의 노출이 전혀 맞지 않아 하나도 화면에 담기지 않아서 새까만 필름을 자르지도 않은 상태로 받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김영갑작가가 찍은 사진 대부분이 밝은 대낮에 빛 조건이 충분할 때 찍은 것이 아니라, 흐리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거나, 이른 아침이거나, 늦은 저녁이거나, 하여튼 빛을 이용하는 사진 촬영 작업 조건이 나쁠 때(?) 찍은 사진들입니다.

사실 멋진 사진은 그런 나쁜(?) 조건 상태에서 제대로 찍을 수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한 번 찍고나서 바로 제대로 촬영했는지 확인을 할 수 없고 필름 현상을 우편이나 행낭으로 서울의 전문현상소에 맡겨야 되니 아무리 빨리 되돌려 받아도 최소한 1주일 이상은 지난 후입니다.

심지어는 보름 정도 더 걸리는 때도 있으니 계절이 바뀔 정도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자연현상을 신중하게 제대로 담지 못하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할 정도였습니다.

한마디로 사진 구도는 고사하고 노출만해도 아주 치밀하게 계산해서 촬영을 해야 한다는 커다란 제약이 있었습니다.

삼각대를 세울 지형 조건이 나쁘거나 주의를 소홀하면 흔들리는 정도야 말할 것도 없었고요.

617 파노라마 카메라 종류는, 대략 찍히는 필름 한 컷의 크기가 세로로 6cm, 가로로 17cm라고 이해하면 쉬울 듯합니다. 중형필름이라는 120 필름 한 롤로 단 네 컷 정도를 찍을 수 있는데 20년 전에도 한 롤 찍고 현상하는데 1만 원 정도 비용이 들었으니 기본적인 경비 문제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물론 같은 장소에 수 십번을 찾아가는 노력과 시간 투자는 말할 것도 없고요.

 

제가 90년대 초반에 상태가 좋은 호스만 612라는 작은(?) 파노라마 카메라를 중고로 살 때 당시 르망이라는 승용차 새 차 한 대 값을 치렀는데, 후지 파노라마 617은 가질 엄두도 못 냈습니다.

물론 저는 그런 비싼 카메라를 사놓고 제대로 활용을 못했으니, 당연히 제가 후지파노라마 617 같은 엄청난 카메라를 가졌다 해도 기능의 10%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은 여전합니다.

김영갑사진작가는 대형 뷰-카메라도 사용했지만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는 거의 대부분의 사진을 이 후지 파노라마 617 카메라를 사용해서 찍었기에, 오죽하면 우스개 소리로, 김영갑사진작가 갤러리 두모악에 다녀온 사람들 덕분에 단종된 지 스무 해가 넘는 이 구닥다리(?) 카메라를 여전히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심지어 저도 몇 년 전에 다시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면서 중고시장에 전설적인 이 파노라마 카메라가 온전한 세트로 나온 것을 발견(?)하고는 오랫동안 미련을 버리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단종된지 한참 지난지라 중고 가격이 웬만한 디지털카메라 정도로 많이 떨어졌지만 가격보다는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는지 여부가 더 관건이었습니다.

물론 이 카메라보다 훨씬 렌즈 성능이 뛰어난 독일제 린호프 테크노라마 617 이란 고급 카메라가 있습니다만, 렌즈 세트를 포함한 장비 전체 가격이 고급 승용차 한 대 가격이고 주문 생산이니 돈을 주고도 아무나 살 수 없을 정도로 희소성이 높습니다.

오름 근처에 갈 때마다 왜 김영갑사진작가가 후지 파노라마 617을 사용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작가가 애착을 가지고 사진에 담은 용눈이오름처럼 완만한 경사를 지닌 기저가 넓은 오름을 제대로 사진으로 담는 데는 후지 파노라마 카메라의 617 포맷이 제격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만 좋다고 소문이나면 사람들이 떼거리로 몰려드는 지금과는 달리 한 가지 조건에서는 좀 자유롭지 않았나 싶기는 합니다.

그것은 출입제한일 겁니다.

탐방로라고 목책이나 철책을 둘러놓고 한 발이라도 벗어나면 죄인 취급하는 지금과는 달리 그때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 작가의 의도대로 자유롭게 촬영 위치를 옮겨 다닐 수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디지털 시대라서,

후보정 기술이나 촬영 편의성 같은 것은 기계식 필름 카메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편리한 만큼 마구 찍어대니 가벼워지는 의식의 변화는,

제대로 된 사진을 찍고 싶다면 여전히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갤러리에서 사진을 보고 있으면,

사진 속에 담긴 작가의 치열했던 삶의 궤적이 들여다 보이기에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얻는 교훈이 큽니다.

작가가 이 갤러리 어느 감나무 아래 잠들어 있다고 하더군요.

사진 속의 오른쪽 카메라가 후지파노라마 617입니다.

카메라도 크지만, 이 큰 카메라를 든든하게 받혀줄 삼각대도 필요하고 노출을 재는 노출계도 필요합니다.

영상을 보니 제 것과 같은 노출계를 사용하셨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