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예주고을 이야기

관어대에 올라.....

황포돛배 2015. 6. 4. 14:28

순서가 바뀌었습니다만, 관어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대진마을 뒤산인 상대산 정상에 올 4월에 새로 정자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본래 관어대 자리는 지금 정자가 세워진 곳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이전에 관어대란 정자가 있었다는 기록에 따라 새로 정자를 세운듯 합니다.

2014년 5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2015년 4월에 마쳤으니 1년 정도 공사를 하였습니다.

 

아직은 나무 냄새가 나는 말그대로 삐까번쩍한 새 정자입니다.

 

관어(觀魚)라는 말은 물고기가 노니는 것을 내려다본다 라는 뜻입니다.

관어대(觀魚臺)란 이름에 얽힌 설은 여럿 있지만,

 이 중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는 이색선생이 지은 ‘관어대소부’에서  ‘노는 물고기를 셀 수 있다’고 하여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집니다.

옛 문헌에는 상대산을 관어대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고산자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 등 여러 지도에서도 관어대라 표기되어 있습니다.

 

관어대에 관한 다른 글이 있어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영덕군 홈페이의 글을 재인용합니다.

 

"동해안 최고의 명승절경 관어대는

삼국시대 이래 동해중부를 관장하던 예주(영해지역의 엤지명입니다)도호부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현재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 2리 산1번지이며
해발 181m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지만 송천강하구와 동해바다를 감싸고 돌아
미녀의 콧날처럼 우뚝 쏟아있어 경관은 해발 500m를 능가합니다.
백두산에서 출발한 백두대간은 동해안을 타고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을 지나 태백산줄기에서 낙동정맥으로 갈라집니다.
백암산, 일월산, 칠보산, 명동산에서 남쪽으로 동대산, 내연산으로 뻗어나고
동쪽으로 독경산, 대소산 봉수대로 와서 북으로 뻗어와 망월봉을 지나
동해의 끝자락에서 그 정기를 모아 우뚝 솟은 명산으로
그 정상에 오르면 동서남북 막힘이 없고
북으로는 후포항이 눈썹 밑에 붙어 있는듯하고
남으로는 장기의 호랑이 꼬리가 잡힐듯하고,
서쪽으로는 동해안 최고의 평야와 송천강 줄기가 한눈에 들고
동해안의 명산 칠보산과 자연휴양림이 한눈에 들어오고
동쪽으로는 “일만 무제“의 동해가 막힌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 있어
울릉도가 보일 것 같은 느낌과
바닷물이 맑을 때는 바다고기가 노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니
우리나라 어느 산에 올라도 이런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가 있을까요?

그리고 풍수지리 적으로도 관어대 정상은 동해안에서 가장 좋은 영산이라고 하여 오랜 세월
야간에 남몰래 묘를 쓰고 달아나는 현상이 잦았다고 전해 옵니다.
(지금은 안동권씨 문중의 소유 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상대산은 고려 말까지 성황당산으로 불렸는데
이는 인근한 창수면 인량리에서 준동하던 팔령신을 붙잡아
동해에 빠뜨려 죽였는데 이들을 제사지내는 곳을 성황사라 하여
산기슭에 두었으며 이에 따라 산의 이름을 오랫동안 성황당산이라 불리었고
아직 그 흔적은 지금도 남아있다.
그 이후 상대산이라 불리었는데
산 이름 자체를 관어대 라고도 부른 것으로 보인다.
고산자 김정호가 만든 “대동영지도” 등 여러 고 지도를 보면
일관되게 산의 지명을 관어대라 하고 있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관어대란 지명은 언제부터 불이었는지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목은 이색선생이 지은 “관어대소부”의 다음 구절로
“ 관어대는 예주부에 있는데 동해에 임하여 있으며,
바위 아래 노는 물고기를 셀 수 있다” 문장이 가장 많이 알려지고
지역 사람들이 확신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목은 이색선생이 관어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인지
관어대란 이름을 새롭게 지어 붙였다는 의미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목은 이색선생보다 앞서 관어대란 명칭이 있기 때문이다.
“관동별곡“ ”죽계별곡”등을 지어 문명이 높았던 근제 안축 이라는 분이
1330년 강원도 존무사로 와서 관내를 순찰하다
울진에 왔을 때 읊은 시에 관어대란 지명이 나오기 때문이다.
“남쪽 관어대란 곳이 있다.
나는 이십년 전의 일로 이미 오래되었지만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한가하게 가보지를 못하고 루에 올라 돌아만 보고 미적거리며 배회하다가
차마 가보지를 못하였다.”

“안축- 근재집”안축 선생은 1287년에 태어나 1348년에 작고했고
목은 이색선생은 1328년 태어나 1396년에 돌아가시니
위 글을 보면 1310년 안축이 예주부의 주부로 왔을 때
이미 관어대라 불리었으니
옛날부터 동해안 명승절경으로 칭송받으며 널리 불리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관어대란 지명은 적국 각지에 무수히 많지만
여기 관어대 처럼 절경이고 수많은 시와 부를 남긴 곳은 유일하다 하겠습니다.
관어대에 관한 무수한 작품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강원도 존무사로 왔던 안축 선생(1330)의
“단양(영해의 옛 지명) 북루에 부치는 시”가 제일 오래되었으며
영해를 고향으로 돌아가신 신석보라는 선비를 전송하며 읊은
목은 이색의 “신석보를 전송하면서”
이승이라는 분의 “관어대에 올라”라는 시가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임진왜란전의 초기에는
영해부에 귀양을 오거나 공무로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시가 많은데
1409년 영해로 귀양온 “안노생의 관어대”를 시작으로
세조 때의 관찰사로 온 “황수신의 관어대”
중종 때의 “고형산의 관어대에 올라.
명종 때의 ”이언적의 관어대“란 시가 대표적인 것들이고
그 이후 남긴 작품은 영해 출신 학자들이 남긴 작품이 대다수 인데
관어대의 풍광과 자연을 찬양하는 작품이 수없이 전해지며
선비와 문인의 절찬을 받던 관어대가 세월의 흐름 속에 묻혀 오늘에 이르렀다.


관어대의 절경을 읊은 시 이외에
자유스러운 부(賦)의 형식으로 읊은 것이 모두 3개가 있다.
목은 이색선생이 고려 말에 지어 중국에까지 전함에 따라
우리 영해부 명승절경의 관어대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에까지 알려지게 된 유명한 목은 이색선생의
“관어대소부”가 대표적인 것이며,
조선시대 영남학파의 종조인 점필제 김종직 선생이
세조 때 함경도에서 반란을 일으켜 함경도 일대를 점령하고
왕조의 흥망을 위협하든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기 위한 토벌하려고
영해부에 왔을 때 목은 이색선생의 관어대소부의 운을 차운하여 지은
“관어대부“ 가 있으며
유일하게 우리 지역인사로 한평생 성리학을 궁구하며 수많은 저술을 남긴
붕주 남국주선생의 ”공경히 목은 이선생의 관어대부를 차운하다“라는
제목의 부가 전해진다.

그동안 산업화의 물결 속에 살아가는 예주권역주민들은
동해안 최고의 명승절경을 인식하지 못하다,
관광교통 인프라 구축으로 고래불 관광휴양지 개발이 가시화 되면서
관어대 부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상대산 정상에 관어대(루)를 복원하고
환 동해권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강원도 관동팔경과 강릉 정동진과
비교 할 수 없이 아름다운 대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를 만들면
동해안 최고의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예주권역의 명성절경 관어대가
동해안 최고의 풍광 관광지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예주고을 동호회 박춘택 회장님이 군청 홈피에 올려 놓은것을 어느 분이 펌해 온 글을 제가 다시 펌해왔습니다.

 

 

 

 

 

 

 

 

 

 

 

 

 

 

 

 

 

 

 

 

 

5월 20일날 아침에 찍은 사진입니다.

이 때는 아직 논보리를 베지 않을 때입니다.

 

 

 

 

 

 

 

 

 

 

 

바다쪽에서 바라본 관어대입니다.

 

 

 

 

 

괴시2리 마을 뒷산으로 올라가면서 소나무 사이로 본 관어대입니다.

 

 

 

 

 

관어대(觀魚臺) 현판 글씨입니다.

어떤 사람이 관어대(觀漁臺)라고 글을 쓴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물고기를 이르는 어(魚)와 고기잡을 어(漁)는 다릅니다.

황어(黃魚) 등 고기 종류는 어(魚)이고,

 고기잡는 사람을 가르키는 어부(漁夫)는 고기잡을 어(漁)를 쓰는 것이 맞습니다.

 

 

 

 

 

 

 

 

 

 

 

이전에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한시(漢詩)를 배울 때 오언절구니 칠언절구니 하던 생각이 납니다.

이 시는 칠언율시인가요?

한시가 가잘 발달했던 당나라 때부터 발달한 시체(詩體)인 근체시(近體詩)로 심전기, 송지문 등에 의해

  수립되었으며 구수(句數)에 따라 4구로 이루어진 것을 '절구(絶句)', 8구로 이뤄진

  것을 '율시(律詩)', 대개 12구이상의 것을 '배율(排律)'이라 한다.

    () 절구 : 한 수가 4구로 된 것.

  - 오언 절구(1구가 5×4)

  - 칠언 절구(1구가 7×4)

() 율시 : 한 수가 8구로 된 것.

- 오언 율시(1구가 5×8)

- 칠언 율시(1구가 7×8)

() 배율 : 한 수가 12구 이상으로 된 것.

- 오언 배율(1구가 5×12구 이상)

- 칠언 배율(1구가 7×12구 이상) 이 있습니다.

 

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겨울에 호기롭게 관어대에 올라,

눈 앞에 쳘쳐진 바다와 먼 칠보산 산자락을 보면서 읊은 시인듯합니다.

 

 

 

 

 

 

 

 

 

 

 

 

 

 

 

 

 

 

 

 

 

 

 

 

 

 

 

 

 

 

 

 

이전에 경치 좋은 곳에는 다 그랬듯이 시인 묵객이 다녀가면서 시(詩)와 부(賦)를 남긴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관어대에도 목은 이색, 점필제 김종직, 안노생, 원천석 이런 분들이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료를 찾다보니 "관어대"란 곳이 충북 영동에도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