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삭꽃이 피었습니다.
진주 딸네집에 갔다가 여수 아쿠아플라넷에 다녀 오면서 광양 옥곡에 있는 조카 사위인 노서방네 집에 다녀왔습니다.
촌수로 조카인 노서방댁은 ,
이종사촌 누님의 딸인데 나이가 저보다 몇 살 더 많은 할머니입니다.
전라남도 광양시의 옥곡 톨게이트를 막 벗어난 곳에서 식당을 하는데,
포항에서 광양으로 간 지가 서른 해가 다 되어 가니 이제 광양 사람입니다.
조카의 아버지인 이종사총 자형은,
제가 중고등학교 까까머리 시절에 이미 백두옹이셨습니다.
조카들의 어머니인 이종사촌 누님은 팔남매 맏이인 구정리 큰이모님의 큰딸인데,
이 누님이 막내였던 우리 어머니보다 나이가 더 많았습니다.
다산을 하던 옛날에는 더러 그런 집들이 있었다지요?
출가한 딸보다 친정어머니가 더 늦게 출산을 하여 뱃속의 삼촌도 더러 있었다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이 자형이 사람이 참 좋으신 분이라서,
자식들 보다 더 어린 저를 "처남 처남" 하시면서 살갑게 대해 주셨습니다.
포항 오천에 사시다가 부산으로 이사를 갔는데,
나중에 제가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부족한 수학공부를 보충하러 학원에 다닌다고 부산에 가서 자형집에 두어 달쯤 얹혀 지냈습니다.
조카들은 나이가 자기들 보다 어리거나 비슷한 저를 아재(아저씨)라고 부르지 않고,
"아재비"라고 불럿습니다.
그러다가 제 부모한테 꾸중을 듣기도 했지만 정작 저는 그 호칭이 친근감이 있어서 더 듣기 좋았습니다.
조카들이 하나같이 착했거든요.
벌써 40년 전의 일입니다.
그간에 누이나 어머니는 광양 조카네 집에 몇 번 다녀왔지만 일찍 객지 생활을 한 저는 한 번도 갈 기회가 없었습니다.
하여튼 저는 조카네 식당에도 몇 년 전에 조카네 큰아이 혼사가 있을 때서야 한 번 가봤습니다.
그 때도 식당에서 조금 떨어진 집에는 가지 않고 그냥 왔는데,
경치 좋은 곳에 잘 지은 집이라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습니다.
여수에서 진주로 오는 길에 옥곡으로 해서 식당에 들렀는데,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낀 저를 조카가 바로 알아보질 못하더군요.
식사를 마치고 조카네 집에 가서,
손재주 좋고 부지런한 노서방이 하나 하나 직접 가꾼 백여평에 가까운 정원을 구경하고,
뒷밭에서 매실도 한 자루 따왔는데,
마당에 놓인 분재들 가운데 흰꽃이 핀 화분들이 여러 개 보였지만,
둥치 굵은 수목들만 쳐다 본다고 제대로 보질 않았는데,
이 흰꽃이 전부 마삭꽃이었습니다.
진주 딸네 집에서 자고 곤양 처가에 가서,
집사람이 아버님 드실 밑반찬이랑 음식을 준비할 때 저는 카메라를 꺼내들고 집 뒤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대나무밭 근처에 있는 모시풀에 모시하늘소는 올해도 왔는 지(?),
칡덩쿨이나 담쟁이 덩쿨에 서식하는 또 다른 곤충들은 여전한 지,
마삭줄은 잘 번졌는 지 살피고 다녔습니다.
아! 그런데 싱싱한 마삭 덩쿨 사이에 피어있는 자그마한 순백의 꽃을 발견하고 넋을 놓고 한참 동안 쳐다봤습니다.
흡사 치자꽃처럼 소박하면서도 깔끔한 꽃이파리가
마치 바람개비처럼 회전형태로 달려있는 것을 보니 신기하였습니다.
"꽃이파리가 이렇게 달린 경우도 있다니" 하고 말입니다.
나중에 마삭꽃을 봤다고 이야기하니,
집사람이, "어제 옥곡 조카네 정원에 지천이던데" 하길래 비로소 흰꽃 생각을 했습니다.
서른 해도 더 전에 남해 초임근무시절의 순박한 아이들 같았던 치자꽃과 마찬가지로,
순박한 마삭꽃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런데 처가에 한 두번 간 것도 아닌데,
왜 이제서야 마삭꽃을 찾아냈을까요?
화려한 붉은 꽃보다 소박한 흰꽃들이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까요?
알 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