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못 가도 독일마을엔 다녀왔습니다.
섬 아닌 섬인 남해군 삼동면의 물건방조어부림 숲이 내다 보이는 곳에 독일마을이 있습니다.
이미 메스컴을 하도 탄 곳이라서 소개하는 것이 새삼스러울 지경입니다만,
그래도 날씨가 무더운데 그곳에서 몇 시간 머물면서 사진을 찍은 것이 아까워서 올립니다.
처음에는 날씨가 맑아서 CPL 필터를 끼워서 찍었습니다.
누구나 다 한번쯤은 그림같은 집에 살고 싶다는 꿈을 꿉니다.
저도 한 때는 그런 꿈을 갖고 있었고,
멋진 집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고 전원주택 관련 잡지를 한 2년 정도 정기구독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고향 언덕에 집 지을 땅이 있으니,
언젠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서 멋진 집을 짓고 말겠다는 당찬 꿈이었습니다.
그런 꿈을 꾸게 된 계기는 고향에서 근무를 할 때,
시골 우리집이 너무 낡고 비좁아서,
큰 채는 수리를 하고, 아랫채를 새로 지을 때 실패한 경험 때문입니다.
건축에 대한 안목도,
경제적인 여유도 없을 때라서 그냥 덩그마니 방만 큰 집을 지어 살러 들어 갔더니 아쉬운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설계도면은 중고등학교 다닐 때 기술 시간에 배운 지식만으로 제가 대충 그렸는데,
그 때가 수도권 주택 200만호 건설 시기와 겹치는 바람에,
건축자재 값이 상승하고 품귀현상마저 생겨서 집을 짓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세를 들어살던 집의 좁은 방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큰 방만 두 개 만들어 놓으니
아이들이 마음놓고 쫒아다니기는 딱이었습니다만,
편리함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무지 때문에 생활에 불편함은 말 할 것도 없었고,
난방비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IMF 경제 위기로 유가가 상승했을 때는,
큰 채와 아랫채 두 대의 보일러를 가동하는데 한 달 난방비만 거의 100만원 정도 들어갔지만
부모님이 거처하시는 방은 썰렁(?)해서 친척들에게 욕도 얻어먹었습니다.
아이들 셋을 데리고 남의 집살이를 하는 것이 만만치 않아서,
그냥 무턱대고 집을 지은 후에
예상 밖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좋은 집이 아니라 살기에 편리한 집을 지으려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해야한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그런 꿈을 접었습니다.
퇴직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고,
또 대처에 나가 살 자식들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아이들이라도 돌봐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 삶이란 게,
무대 위에서 펼치는 연극처럼 역할이 끝나면 사라지는 것인데,
대단한 무엇을 남기고 갈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한 몫을 합니다.
또 노년에 가장 소중한 자산은 좋은 친구인데,
고향에 가봐도 마음을 터놓고 허물없이 지낸 친구들이 많지 않습니다.
힘든 삶이 자랄적에 지녔던 순수함을 다 앗아가버렸고,
남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지금의 고향이 제 유년의 고향도 아닙니다.
말하자면 공업화에 따른 이주 때문에,
나서 자라던 정든 곳을 떠나서 낯선 곳으로 옮겨 살았던,
그래서 적잖이 갈등을 겪었던 슬픈 기억만 있을 뿐입니다.
독일마을을 둘러보고 나서,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집들이 지형을 잘 이용하여 쓸모있게 지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을이 터를 잡은 곳은 천혜의 명당이었지만,
그냥 풍수지리학상의 명당이 아니라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사는 사람들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긴 멋진 삶의 터전이라는 것입니다.
보기에 좋은 그림같은 집을 지었으니 돈이야 만만찮게 들었겠지만,
그냥 업자들이 분양하려고 지은 천편일률적인 집이 아니라 집 주인의 개성이 살아있는 집을 지었더군요.
이미 지어서 살고 있는 집이 서른 네 가구라고 하는데 같은 집이 한 채도 없었습니다.
정말 그림같고 살고 싶은 집이 여러 채 있었습니다.
펜션업을 겸하시는 분들도 꽤 되는데,
숙박비를 검색해보니,
비수기에 평일 1박 기준으로,
시설과 평 수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략, 25평 정도 되는 곳은 4인 기준으로 12만원부터, 30평이 넘는 곳은 8인 기준으로 25만원 정도였고,
성수기 주말에는 대략 20만원부터 35만원 정도 까지였습니다.
(제가 몇 군데 둘러 본 것을 참고로 대충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꼭 하루쯤 머물고 싶었지만,
이미 오래 전에 접은 꿈 때문에 아쉬움이 더 클 것 같아서 그냥 구경만 하고 왔습니다.
방학 막바지에 그냥 무작정 나섰다가,
전라남도 쪽으로 갈까하다가,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도 그랬고,
먼거리 여행에 따르는 기름값 부담도 만만치않아서
교직 첫 발령지인 남해로 방향을 틀어서 대교를 건넌 후에,
추억이 깃든 근무지인 서면을 거쳐서,
남면, 상주를 지나 미조쪽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오전에 해안도로를 따라 독일마을에 갔습니다만,
육지에서 독일마을에 접근하려면 남해읍쪽이나 창선쪽으로 가는 것이 훨씬 더 가깝습니다.
독일마을 사진입니다.
남해읍이나 창선쪽에서 들어서면 첫 번째로 만나는 마을 안내도입니다.
마을 입구쪽에 넓은 주차장이 여러 곳에 있습니다.
이미 널리 알려져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무척 많습니다.
마을 입구(?)의 찻집입니다.
같이 갔던 아내는 볕이 잘 드는 이 집이 가장 마음에 든다더군요.
마을의 다른 집들과는 다르게 한 방향으로 확 트이게 지은 것이 살림집이라기 보다는 펜션 용도로 지은 집인듯 합니다.
저는 이 집이 가장 마음에 들더군요.
특히 육각형의 저 공간에서 차를 마시거나 밖을 내다보면 운치가 있겠더군요.
네모 난 공간은 사람을 억압하지만 저런 공간은 좁아도 그 안에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지요.
집들은 대게 지형을 이용한,
아랫쪽 길에서 들어가는 1층,
마당에서 바로 들어가는 2층을 포함하는 3층 집이고,
단독주택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넣어두는 작고 앙증맞은 창고가 있는 집이 많더군요.
땅을 자르고 석축을 쌓아올렸지만 ,
새로 대지를 확보하면서 기존에 있던 소나무 숲을 그대로 살린 것이 마음에 듭니다.
독일에서 타던 차들인지 구형 벤츠 등이 많이 보이더군요.
이런 집들은 민박업을 하는 집입니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눈에 밟히는 그 흔해빠진 전봇대가 없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집집마다 태양광발전 설비를 해서 필요한 전력을 충당하는가 봅니다.
잘 다듬어진 정원이 있고.......
밖에 나와 쉬는 공간이 있고......
물건리쪽에서 올라가면 보이는 마을 안내표지판입니다.
마을의 내력을 설명한 표지석의 글입니다.
대부분의 집들이 울타리는 있어도 담이 없어서 집 안이 다 들여다 보입니다.
작고 이쁜 안내판들.
이런 안내판조차 집집마다 다 다르게 만들어진 것이 소박하지만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