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포돛배의 울릉도 이야기(1) - 집 이야기
울릉도에 처음 가 본 것이 95년 여름입니다.
그 때 이미 저는 승진을 하기 위해서, 장차 울릉도에 근무를 하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울릉도에 가는데 필요한 땅점수(지역에 따라 점수를 부여하고 이 점수가 인사발령의 잣대가 되므로 지역점수라고 합니다.)를
얻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 울진지역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학교 동료교사들과 함께 울릉도에 탐색을 겸한 여행을 갔습니다.
다섯 가족과 동료 한 사람이 함께 갔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울릉도의 풍경은 여러 면에서 색다르고 신비스럽습니다.
울릉도에 가서 느낀 첫인상이 어땠는지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탐색여행 이후 6년 뒤에 울릉도의 유일한 고등학교인 울릉종합고등학교(올 3월부터는 울릉고등학교로 이름이 바뀜)에 발령을 받아갔는데,
학교 소재지가 울릉도의 관문인 도동이 아니라 고개 하나 너머 마을인 어촌마을 저동이었습니다.
육지에서도 바닷가는 대부분 가파른 자연지형에 따라 마을이 형성되기 때문에 주거 조건이 좀 열악합니다만
울릉도 특히 저동의 주거환경이 참 열악하다는 것을 늘 느꼈습니다.
같이 간 동료들 가운데서 몇 명은 곰팡이가 피어있는 벽을 보고 사택에 대해 불평을 좀했지만,
며칠 동안 마을 곳곳을 둘러 본 저는 감히 불평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걷기삼아 둘러 본 산비탈에 위치한 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블록이나 벽돌을 쌓아서 지은 집이 아니라 함석이나 베니어합판 등으로 바람만 막는 그런 허술한 집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잘 사는 사람들이야 붉은 벽돌로 지은 번듯한 양옥집에서 보란 듯이 살고 있었지만,
언덕배기에 있는 마을의 사람들이 사는 집은 담장은 고사하고 비가림도 힘들어보일 정도로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런 집에 비하면 비록 곰팡이가 좀 피어 있었고 벽지가 너덜거렸지만 우리가 배정받아 살 사택은
반듯한 양옥의 고급(?) 다세대주택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서야, 울릉도에는 건축자재가 귀하여,
시멘트나 목재는 물론이고 모래나 자갈 등의 기초 건축자재도 다 육지에서 배로 싣고와야 하므로,
육지에 비해서 건축비가 엄청나게 비싸게 먹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스개말로 한 때는 모래값이 같은 부피의 쌀값과 맞먹었다고도 하더군요.
그래서 비교적 값이 싸고 구하기 쉬운 함석종류와 베니어, 스치로폼 등으로 간이 주택형태의 집을 짓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집에도 안을 들여다 보면 커다란 냉장고는 두 서너대씩 다 있고,
육지와 달리 집집마다 보일러 기름을 넣어두는 기름탱크가 두어 개씩은 다 있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태풍이나 풍랑 등의 바다날씨 변화에 따라 생필품 공급이 끊기는 상황에 대비하고,
겨울철 폭설에 대비하여 난방유는 넉넉하게 확보해 둔다는,
말 그대로 생활의 지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섬살이가 무조건 고달프고 힘든 것만은 아닙니다.
어느 곳보다 억척스럽지만 인간미가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건축붐이 일어서 팬션형태의 고급 주택도 들어서고.
휴먼시아라는 토지주택공사의 아파트도 저동에 들어섰습니다.
우중충하던 저동의 상록아파트도 말끔하게 도색을 해서 먼발치에서 보면 한결 낫습니다.
그리고 섬 전체를 시멘트로 도배를 하는 인상을 받을 정도로 토목공사도 많이 벌려놨습니다.
부드럽던 흙길이 줄어들고 딱딱한 시멘트길이 늘어납니다.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편리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산길조차도 시멘트로 깨끗하게(?) 바르고 있습니다.
그러나곳곳을 둘러보면 사람들이 떠난 빈집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간혹 어떤 분들은 겨울을 육지의 자식들 집에서 지내시다가 봄에 나물철이 되면 섬으로 돌아오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겨울철에 본 것만으로 섬 전체가 비어간다고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오랫만에 울릉도에 들어가서 주민이 아닌 여행자의 눈으로 섬을 둘러보았습니다.
갑자기 밀려오는 개발에 따른 변화가 섬의 장래를 생각해볼 때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를 한 번쯤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울릉도다운 것이 가장 세계답다는 말을 명심해두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섬의 절경이 생산성이 아닌 보존이 우선되어야 하는 천연관광자원이기에 이 말이 한 치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평생을 살고 뼈를 묻는 것이 아니라
잠깐 섬에 머물다 가면서 섬을 다 아는 듯이 이야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지도 모르지만
숲속에서 숲을 제대로 볼 수없듯이 내부에서 보이지 않는 것도 밖에서 보면 보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서 울릉도 이야기를 올려볼까 합니다.
두서가 없더라도 제가 직접 보고 느낀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보겠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이야기로 겉보기에 허술해 보이지만 세상살이의 따뜻함이 묻어나던 집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