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육지라면.........
교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가 흐릿합니다.
먼지가 낀 창에 빗물이 달라붙어서 그렇기도 하고, 강풍주의보 때문에 집에 가지 못하는 제 마음이 우울해서 그런가 봅니다.
"바다가 육지라면"은 철 모르던 어린 시절부터 즐겨 부르던 조미미의 노래 제목입니다.
조미미라는 여자 가수가 고운 음색으로 부른 이 노래는 전형적인 뽕짝입니다.
"바다가 육지라면 눈물은 없었을 것을........"
한이 담긴 노래입니다.
아마도 이 노랫말을 쓴 사람은 섬 출신이거나 적어도 섬살이의 애환을 조금은 아는 분일 것입니다.
서른 해도 더 전에 멋 모르고 따라 불렀던 이 노랫말의 애절함을 오늘 새삼 다시 느낍니다.
2-3일 전부터 주말인 금요일 오후에는 기상 때문에 배가 뜨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나돌았습니다.
지난 주말에 집에 다녀오지 못한 저는 이번 주말을 말 그대로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몇 해 만에 다시 혼자 건너 온 이곳 섬에서 보낸 보름 남짓한 시간이 몇 달은 된 것처럼 길게 느껴집니다.
이른 봄날의 시간이 참 마디게 느리게도 지나갑니다.
좁은 섬을 돌아다니고, 성인봉에도 오르고, 나리 분지길을 걷고 하여도 시간은 잘 가지 않습니다.
제 나이로 볼 때 시간의 속도는 제법 빨라야하는데 올해는 유난히 느리게 갑니다.
섬에서 살면 부족한 것도 아쉬운 것도 많습니다.
이전에 마음대로 누리던 사소한 것들도 이곳에서는 누릴 수 없습니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고 날마다 부둣가에 나가 떠나는 사람들을 쳐다 봅니다.
날마다 들어가 보는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이번 주말에는 강풍주의보도 아닌 경보가 내려져 있습니다.
이럴 때는 기상청 예보가 틀리기를 바랄 뿐이지만, 인터넷을 통해 본 위성 사진이나 일본 기상청 파고 발표를 보면 거짓말처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육지로 나가는 배표를 예약해두었더니 아침에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금일 13일 육지로 출항하는 여객선은 통제되었습니다. 예약은 자동으로 연기 됩니다."
혹시나 하고 지난 밤에 잠들기 전에 했던 기대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내일은 기상이 더 나빠진다고 하니 이번 주말에도 집에 가기는 걸렀습니다.
조금 전에 택배가 하나 왔습니다.
이전에 근무를 하던 울진고등학교의 동료교사들인 학생부 선생님들이 보낸 것입니다.
통조림, 맛김, 참치캔, 고추장, 라면, 고등어 통조림 등입니다.
커다란 우체국 택배 박스에 가득들어 있는 물품을 교무실에서 뜯어 보고,
"위문품이 왔다"고 소리질렀습니다.
눈물이 핑 돕니다.
이곳 섬에는 가격이 좀 비싸기는 해도 사람 사는데 필요한 물건들은 대부분 다 있습니다.
그러나 먹는데 그렇게 집착하지 않으니 아쉬우면 밥을 해 먹고, 먹을거리가 없는대로 살기도 하고, 사러 가기 귀찮아서 그냥 대충 먹고 삽니다.
먹는 것이 풍족한 세태니 영양실조야 걸릴리 없을테니까요.
아무 때나 마음대로 나갈 수 없으니, 절망감 때문에 마음이 외롭습니다.
그게 섬살이입니다.
이발도 하고, 열쇠도 복사하고, .........
어제 저녁에 야간공부방 지도를 하면서, 육지에 나가면 하고 싶은 일들을 적었던 쪽지를 꺼내 봅니다.
오늘 일과를 마치고, 꽁치 통조림을 풀어서 소주나 한 잔 하자는 동료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그냥 웃습니다.
가족이 있는 육지로 나가지 못한 아쉬움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연분홍 치마를 입은 여인네처럼 조용히 다가오는 봄날도 옷고름에 찍은 눈물이 마르면 느리게나마 가겠지요.
힘을 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