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흰소리

준비없이 나선 단석산 산행과 다랭이논 구경

황포돛배 2008. 10. 13. 10:19

올해 가을 들어서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집밖으로 나돌아다닌다.

9월 하순에 충북 청주에 볼 일이 있어서 올라갔다가 무창포 대하축제를 다녀온 서해안 여행 이후로 저지난 주에는 풍기 인삼축제장 구경과 소백산 등반을 했고,

지난 주에는 내연산과 단석산에 다녀왔다.

이제 아이들 셋이 다 대학생이라서 주말에 학교에 잡혀 있거나 하는 일이 없고,

마침 큰 아이가 어학연수를 가기 전에 집에 와서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오랫동안 필요한 목적에 따라 다닌 일 외에는 어디 나다녀본 경험이 없으니 별다른 사전 준비도 없이 길을 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연히 시행착오를 두루 겪는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들끓는 주말 여행이나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축제장 같은 곳으로 나다니는 것을 질색하며 반대하던 내가,

세 주 연속으로 주말마다 나다닌 것을 두고 내 스스로 생각해봐도 변하기는 변했다.

가족들이 정겹게 사는 것이 별 것이 아니라,

살아있을때 서로 이해하고, 함께 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가지고,

오순도순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남기고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지극히 당연한 깨달음을 뒤늦게 얻은 이후로 그것을 실천하고자 한다.

아이들이 다 제 팔 제가 흔드는 성인이지만,

부모인 우리와 함께 할 시간이 어디 그리 많겠느냐는 말로 아이들의 시간을 뺏기도 한다.

 


 

지난 주말만해도, 처음에 가보려고 한 곳은 밀양의 천황산이었다.

부산에서 공부하는 아들을 밀양으로 오라고 해서 가족이 상봉도 할 겸해서 몇 년 전에 한 번 가본 억새밭으로 유명한 천황산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인터넷 사진 사이트에서 추천 촬영지를 올려 놓은 글을 검색해보니,

억새가 있는 가을 경치는 경남 울주군의 신불산이 더 좋다고해서 일요일날 아침에 갑자기 신불산으로 가는 걸로 예정을 변경했고,

신불산 가는 길을 대충 경로만 옮겨 적어 두었다.

집에서 사용하는 컴퓨터가 자주 말썽을 일으키기도 하고,

프린터기는 거의 사용하지 못하므로 인터넷에서 얻은 자료를 인쇄하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해서 그냥 몇 자 메모만 해서 출발을 했다.

 

 


함께 집을 나선다는 것 때문에 약간 들떠있던 아내는 정성껏 김밥을 쌌고,

늦잠을 잔 딸 아이를 깨워서 김밥을 아침 대신으로 먹게 한 뒤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려고 미적거리다가,

다 제 볼일이 있다길래 할 수 없이 우리 내외만 길을 나선 시각이 아홉 시가 넘어 버렸다.

건천을 거쳐서 산내를 지나 큰 고개를 넘어서 석남사로 가는 길머리인 언양까지는 이전에 몇 번 다녀본 적이 있어서 쉽게 찾아갔는데,

언양 들머리에서,

 석남사로 가는 옛길로해서 간월재로 올라가야 하는데,

길눈이 어두워서 표지판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밀양으로 가는 새로 생긴 24번 4차선 국도로 진입을 하고 말았다.

길이만 4킬로가 넘는 새로 생긴 터널을 지나고 나서야,

신불산에 가려면 밀양-언양간 구도로를 타고 산꼭대기인 간월재로 가야하는데 계곡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겨우 깨달았다.

눈앞에 얼음골로 빠지는 안내판이 보였다.

공사중인 길옆으로 빠져나와 길 가장자리에서 차를 돌려서 언양쪽으로 방향을 바꾸어서 다시 터널을 지나서 석남사 앞쪽을 지나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그 때부터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길 왼쪽에 보이는 간월산에는 붉은 단풍으로 물든 곳이 군데군데 보였다. 

포항-대구 고속도로나 포항-건천간 자동차 전용도로가 뚫리기 이전인 90년대 중반에 진주 처가에 갔다가 이 길로 몇 번 돌아온 적이 있었다.

마치 반가운 친구를 만나듯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좀체 차는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간월령(嶺)은 간월산과 가지산 그리고 신불산의 산행기점이기도 하여서

간월령으로 가는 길은 주말을 맞아 산으로 가는 등산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완전히 정차하듯이 막힌 차는 쉽게 빠질 생각을 하지 않는데,

더 걱정되는 일은, 임도로 접어들어 신불산까지 가는 문제였다.

가다가 중간에 건천 송선리에 볼 일이 있어서 잠깐 들러는 바람에 시간은 정오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오던 길로 다시 차를 돌려서 단석산에 가기로 했다.

드라이브 삼아서 왔다간다고 했지만,

한 번 가보기로 마음 먹은 산을 근처에 가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자니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나선 것이 미안하고 찜찜했다.

 

 


먼 길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며,

그 흔한 GPS나 네비게이션도 하나 없이 길을 나선 이후로 길을 잘못 들어서 되돌아서거나 엉뚱한 곳으로 가벼려서 낭패를 당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

이른바 길치이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다녀야 하는 아는 길을 제외하고는 손수 차를 몰고 집을 나서는 일이 거의 없이 살던 버릇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살이를 대충대충 하는 것이 몸에 밴 나쁜 습성 탓이기도 하다.

 

 


그럭저럭 단석산 입구인 송선리에 도착하여서 우중공 깊숙한 곳인 마애석불이 있는 신선사를 거쳐서 단석산 정상으로 향했다.

 


올라가는 도중 700미터 지점쯤에 있는,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높이 10여 미터의 칼로 자른듯한 동남북면의 ㄷ자형 바위 안 벽면에 부처상이 여러 개 새겨져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의 명장 김유신이 삼국통일의 염원을 담고 수련 하던중 怪僧으로 부터 天劍을 받아 바위를 잘랐다고 한다.

깍아지른듯한 바위 면에 불상을 새긴 옛사람들의 불국정토에 대한 믿음과 그 염원의 간절함에 고개가 숙여졌다.

 

 

 

 

 
 

 

 
 

 

 
  

 

 
 

 위의  마애불상군 사진 다섯 장은 인터넷 상의 원오스님 카페에서 퍼 온 사진임.

이 부처님상(像)들에 대한 설자세한 명은 원오스님의 인터넷 카페(http://cafe.daum.net/wono1)를 참고로 하시기 바람.

 

 


정상까지는 채 2킬로가 되지 않았지만 산굽이를 도는 일 없이 산비탈을 타고 바로 올라가는 길은,

초반부인 신선사까지는 길이 무척 가팔랐고 길바닥에 깔아놓은 자갈때문에 미끄러웠지만,

이후에는 길은 역시 가팔랐지만,

 관목이나 솔숲 사이로 올라가는 부드러운 흙길이어서 아내가 길이 좋아서 참 편하다는 말을 연거푸 할 정도였다.

높이가 해발 827m인 정상까지 가는 등상로는,

올라가다가 뒤쳐진 아내를 기다라는 시간을 포함해서도 한 시간 사십분 정도 걸리는 짧은 산행길이었다.

점심을 먹을 시간이 제법 지난 탓인지 시장기가 돌았지만,

올라가는 중간에는 물을 조금 마시고, 오이를 두어 조각 먹고 계속 올라갔다.

억새가 드문드문 서 있는 능선의 부드러운 풀밭에서 준비해 간 김밥과 포도로 허기를 면한 후에,

정상 표지석에 기대어 기념 사진을 몇 장 찍고나서 오케이연수원(목장) 쪽으로 내려 가기로 했다.

 

 

                                              단석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경주시 방향, 아파트가 밀집한 곳이 용강쪽이다.

 

단석산 정상에서 오케이연수원까지는 내려가는 길인데도 거리가 불과 2.4킬로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정상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 시간 남짓하면 내려갈 수 있다고 해서,

다랭이논도 구경할 겸에 그길로 내려 가기로 했다.

 

우리가 타고 간 승용차를 주차 해둔 곳과 거리가 한참은 먼 다른 방향이라고 걱정하는 아내에게 ,

내려가서 산내 택시를 불러서 타고 가면 된다는 쉬운 말로 안심을 시켰다.

다행하게도 내려오는 길은 올라가던 길과는 달리 경사가 완만하고 부드러운 흙길이 대부분이어서 쉽게 내려왔다.

해거름이 되기전에 오케이연수원에 도착하서 어딘지 모를 다랭이논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장소를 찾으려고,

 마음이 급해서 빠르게 내려오는 바람에 아내가 보이지 않아서 몇 번을 멈추어서서 기다리곤 했다.

사람이 드문 산길이라서 아내가 보이지 않으면 걱정이 되었지만,

중간에 느리게 이동하는 다른 가족을 앞질러 오면서 그 일행과 아내가 만날 것 같아서 아내를 혼자 두고 먼저 내려왔다.

 


 

올봄에 비바리님께서 자신의 블로그에 천신만고 끝에 찍으신 무논 사진을 올렸고,

그 절경에 감탄을 한 뒤로,

그 이후로는 여러 곳에서 이 다랭이논 사진을 볼 수 있었다.

 

9월 하순에 다시 가을걷이 직전의 다랭이논 사진이 올라와서 본 적이 있었다.

아직 벼가 누렇게 익을 때는 아니었지만 벼를 하나도 베지 않은 완벽한 사진(?)을 찍으신 것을 보고 그 적절한 타이밍 포착에 감탄을 했다.

황금빛이야 얼마든지 보정이 가능하지만 그 시기를 놓치지 않은 기민함 때문이었다.

 

어느 곳에 다랭이논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에,

혼자 내려오면서 열심히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관목이 빽빽한 숫숲이라서 앞뒤를 제외하고는 주변의 어느 곳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내려오다가 중간에 바위가 있는 언덕이 하나 있길래 길에서 벗어나서 올라가보니,

숲 사이로 왼쪽에 누런 들판이 언뜻 보였고,

혹시나 싶어서 바위 위에 올라가보니 그토록 애타게 찾던 다랭이논이 보였다.

마치 미지의 세계라도 발견한 것처럼 가슴이 벌렁거렸다.

산자락에 논의 일부가 가려서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에서 본 것과는 사뭇 달랐지만,

마침 구름 속에 숨어있던 해도 나왔고해서 뒤에 날씨가 어찌될지 몰라서 시야를 확보한다고 나무 등걸 위에 올라가서,

어설픈 자세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이미 군데군데 벼를 베어낸 빈 논이 보였지만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어서 그런 것이 문제가 될 수 없었다.

 

 

                           단석산에서 오케이목장으로 내려가는 중간 500미터쯤 남은 지점에서 나무 위에 올라가서 찍은 다랭이논 사진이다. 

 

한참을 기다리니 아내가 나를 못본채 지나치려고 해서 민망해서 슬그머니 아내 뒤를 따라 내려오니,

 짧은 억새밭을 지나서 붉은 지붕이 보이기 시작했고 곧 눈앞에 넓은 언덕이 펼쳐지면서 오케이연수원이 보였다.

 

 

 

                                               이 사진은 나중에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올려다보고 찍은 사진이다. 

 

내려오다가 아내의 똑딱이 카메라로 기념 사진을 몇 장 찍어주고는 다랭이 논이 내려다 보이는 곳을 찾았는데,

방향을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의외로 그곳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시야가 다소 흐릿하기는 했지만 발밑에 누런 벼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는 다랭이 논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바위를 찾았다.

바위 위에 올라서서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표준렌즈로도 다랭이논과 마을이 거의 다 파인더 안에 들어왔다.

 


 

 

바위에서 내려다 본 다랭이 논. 이전에 다른 사람이 찍은 곳과 다른 지 화각이 확실하지는 않다.

 

소나무가 군데군데 서 있는 오케이 연수원은 가족단위로 놀러온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그리고 나처럼 다랭이논에 대한 기사를 읽거나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보고 호기심에 찾아온 사람들도 많았다.

포항에서 오셨다는 연세 지긋하신 어른 두 분은 어느 길로 왔는지 전망대쪽으로 올라가시면서 위치를 찾지 못하겠다고 하셨다.

 

오케이연수원은 이전의 목장 자리를 위락단지 겸해서 놀이 시설로 개조를 해서 운영하는 곳인데,

오랫동안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황폐한 느낌이 곳곳에 배어 있어서 안타까웠다.

제대로 돌보았다면 광활한 주변 풍광이 아름답고,

넓은 연못과 언덕이 어우러져서 정말 경치가 빼어난 곳이었다.

나중에 산내쪽으로 내려오면서 얻어타고온 차 주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동안에 여러 사람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가 최근에는 위덕대학교재단에서 소유권을 갖고 있다고 했다.

아마 곧 새로운 용도로 이전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연못이 있는 곳까지 내려와서 114 안내에 산내 개인택시 연락처를 물었더니 산내에는 개인택시가 없다고 한다.

할 수 없이 건천에 있는 개인 택시 전화번호를 물어 요금을 물어보니 생각보다 많이 비싼 거금(?)을 달라고 하였다.

 

돌아다닌다고 몸은 피곤하였지만, 도로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아내는 많이 지쳐서 힘들어 하면서도 뒤로 쳐진 채 별 불평없이 따라왔지만,

산내에 택시가 있는 지 여부도 확인해보지 않고,

사진 찍을 욕심으로 무턱대고 차를 주차해 둔 반대방향으로 내려가자고 억지를 부린 것 같아서 무척 미안했다.

벚나무 단풍이 고운 시멘트 포장길을 한참을 내려가도 차가 다니는 도로는 보이지 않았다.

오케잉녀수원에 놀러왔던 사람들이 탄 차들이 가끔씩 지나갔지만,

사람이 가득타고 있거나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이만 오붓하게 탄 쿠페 차량 등이어서 계속 걸어왔다.

지친 탓인지 주위를 둘러봐도 아름다운 단풍조차 눈에 제대로 들어 오지 않았다.

 

걷다가 지친 아내가 이렇게 얼마나 더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솔직히 나도 얼마나 더 걸어가야하는 지 몰랐다. 

2킬로쯤 걸어내려오다가,

우리가 산에서 내려올 때 정상으로 올라가던 부부가 탄 차를 만났는데 고맙게도 태워주셨다.

산행길에 반갑게 인사를 한 덕을 톡톡히 보는 듯했다.

우리처럼 포항에서 오셨다는 이 분은, 이미 단석산에는 여러 번 다녀 가신 듯,

단석산 등산로를 훤하게 꿰고 있었다.

가까운 곳이라고 등산용 지도 한 장 없이 나선 것이 부끄러웠다.

 

차를 얻어타고 도로까지 내려온 길만해도 거리가 3킬로 정도는 족히 되었고,

더구나 가파른 시멘트 길이라서, 거듭 고맙게 생각하였는데,

단석산과 오케이연수원에 대한 여러 가지 유익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 분들 덕분에 송선리까지 와서,

마을입구에서 아내에게 기다리라고 배낭을 맡겨두고,

미안한 마음에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도록 차가 있는 암자 입구까지 구보로 달려가서 차를 몰고 내려왔지만,

이후로는  가까운 산이라도,

등산지도라도 한 장 구해서 사전에 등산로라도 제대로 알고 다녀야겠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