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마라톤대회 참가 완주기
올 해 첫 대회로 참가한 거제 마라톤대회에 다녀온 지 이틀이 지났습니다.
며칠 뒤에 차분하게 참가기를 쓰려다가 우선에 오랫만에 런다 가족들에게 인사를 드릴 겸해서 몇 자 적습니다.
저는 10일날 포항 집에서 버스를 타고 마산을 거쳐서 거제로 갔습니다.
혼자 먼 거리를 다닐 때는 직접 운전을 하는 것보다는 창밖의 경치도 감상하면서 떠오르는 시상(詩想)을 메모도 하면서 다니는 것이 더 즐겁더군요.
작은 수첩을 하나 준비하여 부지런히 메모를 하면서 느긋하게 창밖을 바라보며 갔습니다.
진주에 사는 하늘맑음 동서가 진주에 와서 자기 차로 함께 가자고 고마운 제안을 했지만,
방학이지만 마침 아내가 연수 중이었고, 1월달에만 진주(사천) 처가에 갈 일이 두 서너번은 더 있을 것 같아서 아쉽지만 그냥 혼자 거제에 다녀 오기로 했습니다.
거제 시청 소재지인 고현에 저녁 늦게 도착하여 택시 기사에게 물어서 바닷가에 위치한 아파트 인근의 비교적 시설이 괜찮은 목욕탕 겸용 찜질방에서 자고 정류장 근처에서 콩나물 해장국을 한 그릇 먹고 주최측에서 준비한 대우조선의 출퇴근용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대회장에 갔습니다.
첫차인 셔틀 버스는 생각보다 한산하였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만난 충주 달림이 두 분과 안양마라톤 클럽의 권자현이란 분과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거제의 날씨는 겨울답지 않게 따뜻하고 맑았으며 기온은 뛰기에 적당하였습니다. 그래서 짧은 카보샷 바지에 얇은 쿨맥스 긴 팔 옷을 입고 달리기로 했습니다. 같은 포항마라톤클럽 소속의 박영인님 차에 짐을 맡겨 두고 옷을 갈아 입었습니다. 동서인 하늘맑음과 판때기를 찾아 다닌다고 준비 러닝과 스트레칭을 충분하게 하지 못한 채 주로 반대쪽으로 천천히 달려서 한 번 갔다온 뒤에 간단하게 하체 위주로 스트레칭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맨 끝에 서있다가 출발을 했습니다.
코스는 악명이 높다고 듣던대로 초반부터 살인적인 오르막이어서 천천히 몸의 흐름에 맡기며 달렸습니다. 지난 해 호미곶에서 달려보니 초반에 느리게 뛰는 것이 몸 고생 마음 고생을 줄이는 길이더군요. 어차피 최고 기록을 내려고 참가한 대회도 아니고 그냥 봄철 메이저대회에 대비한 LSD훈련이려니 하는 생각이었고 지난 해 연습이 부족한 가운데서 힘든 코스를 달리다가 쥐가나서 고생을 한 일이 하도 여러번 있었고 몸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으니 욕심을 낼 처지도 아니었습니다.
첫 5킬로를 28분이 조금 넘는 느린 속도로 달렸는데 후반에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이것은 정말 잘 한 짓이었습니다.
공기가 맑고 경치가 좋은 바닷가를 달리니 비록 코스는 험했지만 기분은 좋았습니다.
육지에 나와서 기분이 난다고 며칠 동안 좀 심하게 달렸더니 무릎과 발바닥 그리고 발뒤꿈치 윗부분인 아킬레스건 부위가 아파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런대로 달릴만 했습니다.
대회 사흘 전부터 한 두 시간씩 걷기만 하고 달리지 않은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되었나 봅니다.
달리는 도중에는 런다분들을 몇 분 보았지만 친근하지 않다는 핑게로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달리는 의사들의 골수 멤버이신 고영우원장님과 이경두 원장님 그리고 이원락원장님을 뵙고는 인사를 드렸습니다.
저보다 한참은 더 연배이신 그 분들은 참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얼마 전에 메스컴을 탄 석병환님 형제분도 뵈었습니다.
늘 만나는 장영신님도 만났습니다. 몇몇 대회에서 이분과 제 기록이 비슷한데 그러다보니 주로에서 자주 뵙게 된 셈입니다.
달리는 도중에 길가에 서 있는 도로표지판을 보니 지명들이 다 낯익었습니다.
지금은 제 친구들이 그곳의 중고등학교에 근무를 하고 있고, 그리고 스무 해도 더 전에 제가 알던 여자후배가 이곳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를 한 곳입니다.
옛날 제게 온 편지 겉봉에 적혀 있던 주소라서 낯익은 지명이었습니다.
누군들 아련하지 않은 과거가 있겠습니까마는 옛날 생각이 나서 한참을 지난 지금에 와서도 콧등이 시튼해지고 햇살탓만은 아닌데도 눈물이 나더군요.
지금은 도로가 포장이 잘 되고 길도 시원스럽게 뚫렸지만 스무 해 전에는 외롭고 구석진 곳이었지요.
나이 어린 처녀가 혼자 가서 근무하기에는 그곳은 멀고 힘든 곳이었지요.
한 사람에게 한 사람의 얇은 어깨가 의지가 되는 줄을 그 때는 왜 몰랐을까요?
이런 상념에 젖어 달리다가 먼저 출발한 페이스 메이커들을 차례로 만났습니다.
붉은 유니폼을 입은 광화문레이심팀이 주축이된 페이스 메이커님들이 3시간 45분대부터 15분 단위로 포진하여서 험한 주로에서 고생을 많이 하셨지만 저는 그분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제 몸 상태대로 그냥 달렸습니다.
가다가 네 시간 페이스 메이커를 따라서 천천히 달리던 막내동서인 판때기를 만났습니다. 잠깐 얼굴을 보고 제가 먼저 달려 나갔습니다.
장승포 입구에 있는 반환점을 향해 달려가다가 이미 반환점을 돌아오는 하늘맑음 동서를 만났습니다. 뒤늦게 발견하였는데 벌써 저만치 달려 가더군요. 저보다 1킬로 쯤은 앞서 가는 듯하였지만 30킬로 지점을 조금 더 지나서 후반에 다시 만났습니다.
전반에 천천히 달린 탓에 후반에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을 추월하였고 28킬로 지점인 마의 언덕 구간에서도 쥐가 나지 않고 달릴 수 있어서 잘만하면 목표 시간으로 정한 40분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자신을 얻었습니다.
마지막 38킬로 언덕을 지나서 내리막을 달리면서 부터는 말 그대로 후반 스퍼트의 짜릿함을 맛보면서 달렸습니다. 저는 무릎이 약하고 대퇴이두근(허벅다리 뒷쪽 근육)에 쥐가 잘 나서 내리막에서도 속도를 낼 수 없었는데 이날은 예외였습니다. 내리막을 달릴 때에는 허리를 좀 낮추고 달리니 무릎에 오는 충격도 줄었고 달리기가 수월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입상을 노리는 선수가 된듯한 착각으로 막판을 신나게 달렸습니다.
풀 코스에 열 몇 번을 참가했지만 그런 느낌은 정말 처음이었습니다.
마지막에는 골인 장면을 멋지게 사진 찍힐 일을 염두에 두고 앞 사람과 거리를 두고 속도를 조금 늦추어서 여유있게 달렸습니다.
하프에 참가한 우리 포항마라톤클럽의 회원인 신진우님께서 마중을 나와서 함께 달려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저는 3시간 37분 41초의 기록으로 골인했습니다.
비록 제 기록은 시원치않지만,
부상 부위의 악화에 대한 두려움과 오랜 쥐(다리 근육 경련)의 악몽에서 벗어나서 기분 좋게 달렸습니다.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었던 것은 초반에 느리게 달린 것과 짧았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한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포항-영천간의 국종달 때 장거리 훈련을 겸해서 먼 거리를 천천히 달린 것도 큰 도움이 된 듯합니다.
완주 후에는 따뜻한 유자차를 한잔 얻어 마셨습니다.
향기부부의 이태재님도 만났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클럽 회원인 신진우님 가족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왔습니다.
거제는 코스가 험하고 포항에서 멀기는 하지만 한 해를 시작하는 첫 대회로, 그리고 동아를 준비하는 겨울철 장거리 훈련을 겸해서 참가를 하면 좋을 대회였습니다.
주로는 호미곶보다 험하다지만 섬에서 섬으로 이어지는 다도해의 쪽빛 바다를 내려다보는 풍경은 정말 좋았습니다.
한 마디로 환상의 마라톤코스였습니다.
기록을 욕심내기 보다는 달리는 일 자체를 즐기기에는 더 없이 좋은 코스였습니다.
내년에는 많은 분들과 함께 달리러 가고 싶어서 좋은 마라톤 여행 코스로 추천을 합니다.
하루가 지났는데도 그리 아픈데도 없고 몸 상태는 좋습니다. 며칠 쉬고나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꾸준하게 해서 서울 동아마라톤에서는 목표 시간인 200분대(3시간 20분) 안에 진입을 하겠습니다.
추운 날씨에 힘들게 하는 겨울 훈련의 결실은 돌아오는 봄철에 맛본다고 하니 부지런히 달리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곳 런다에도 면면들이 많이 바뀌엇습니다.
두어 해 전에 열성적으로 일지를 올리시던 많은 분들이 보이지 않지만 꾸준하게 관심을 가지고 안부를 여쭙는 아는 런다 회원님들께 자주 인사를 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올해 새학기에는 육지로 나옵니다.
주로에서 자주 반갑게 만나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일지도 종종 공개하겠습니다.
모두 즐겁게 달립시다.
끝으로, 제 구간 기록입니다.
급수대가 5킬로 마다 있은 게 아니라 길 가장자리에 넓은 공터가 있는 곳에 있다보니 거리 표지판과 일치하지 않아서 대부분 못본채 그냥 지나�습니다.
따라서 랩은 정확하게 재지 못했지만 후반에 지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5킬로 - 28:29:16( 28:29:16)
반환점 - (1:51:15:36)
25킬로 - 2:09:04:62(1:40:35:00)
30킬로 - 2:34:23:64( 25;19:02)
35킬로 - 3:01:43:27( 27:19:63)
42킬로 - 3:37:46:94( 36;0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