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이 남아있는 마라톤 이야기/완주기(마라톤, 울트라)

다시 출발선에서-대전MBC마라톤 참가

황포돛배 2008. 9. 16. 19:33

다시 출발선에서-대전MBC마라톤 참가


- 장소 : 대전시 EXPO 공원 일원

- 시간 : 1시간 39분 13초 (10:03 - 11:42:13)

- 거리 : 21.0975km

- 종류 : 대회참가

- 페이스 : 4'42"/km

- 속도 : 12.76km/h

- 운동화 : -아식스 젤 1070



오래 기다리던 대전대회다.

하늘이 도왔는지 이틀간의 폭풍주의보가 해제되어 뱃길이 열렸고, 새벽 3시반에 일어나서 뒤척이다가 배를 타기 위해서 도동으로 이동하였다.

혹시 늦잠을 자서 못나갈까봐 긴장을 해서 잠을 설쳤는데........


아이들이 돌아오고 아내가 퇴근을 한 뒤 법원 앞에 포마클 연습장소에 인사를 갔다가 네 시 무렵인 오후에 대전으로 올라갔다.


대전은 서울과 부산을 포함한 지금의 국토의 중간이라는데도 참 먼길이다.

6년을 넘게 주인을 싣고 충직하게 앞만 보고 달린 애마 갤로퍼는 이제 늙은 티를 내기 시작한다.

노쇠의 기미가 보인다.

특히 지난 검강검진 때 배기가스를 줄이기 위해 부란자를 조정한 뒤에 그대로 두었더니 자주 숨이 차다고 한다.

달리는 도중의 나를 닮았나보다.

새로운 말들이 휙휙 앞질러 간다.

약이 좀 올랐지만 속으로,

"자식들!

그래도 나는 달리러 간다.

너네들이 새로 산 말 갈아탔다고 폼 내는데 내려서 나랑 한 번 달려볼래?

이래뵈도 성인봉 아래서 갈고 닦은 달리기다.

..............."


한 물 간(?) 고물차를 모는 자격지심에 혼자 중얼거린다.


추풍령 고개를 넘어 먼 길을 운전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잠만 잔다.


몇 년 전에 교원대학에 공부하러 다닐 때 다닌 이후로 이 길이 오랫만이다.

옛 시조의 글 귀처럼 산천은 의구한데 나는 또 그 세월동안 많이 변했다.

들과 들이 이어지는 넓은 대지를 바라보니 좁은 섬에 갇혀 있었던 것이 실감난다.


달리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우리 나라의 땅덩어리가 넓다는 것을 알았다.

차나 비행기로 가면 휙하니 잠깐인 길도 발로 걷거나 달려가면 참 멀고 힘이 든다.


회덕 인터체인지에서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유성쪽으로 가서 충남대학 입구에서 숙소인 탐호텔을 찾아갔다. 침절한 안내 덕분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시설이 좀 오래 된 것을 보고 아이들은 실망을 하는 눈치였으나 나는 오히려 그렇고 그런 러브 호텔류가 아니어서 다행스러웠다.


인근 식당에서 알탕을 시켜서 저녁을 먹고 가까운 곳을 산책을 한 뒤에 바로 누웠는데, 피곤하기는 해도 잠이 잘 오지 않는다. 객수인가?

늘 느끼는 것이지만 객지에 오면 좀 여유있게 도착을 하여 인근의 별미집을 알아뒀다가 한 번 맛보는 것도 여행의 진미인데 그런 준비가 참 부족하다, 나는.


늘 시간에 쫓기고.........


아침 일찍 일어나니 아이들은 아직 곤하게 자고 있었고........

혼자 인근에 있는 해장국 집을 물어서 찾아가 밥을 먹었다.

밥이 푸석하다. 아침 식사를 찰밥으로 준비를 해왔으면 했는데 아내는 아직 그런 것을 모른다. 아니 출퇴근길이 먼 직장 생활의 피곤을 잊고 따라나서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일찍 나서서 KBS 부근의 갑천둔치에 차를 댔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이미 도착을 하여 서성거린다.

런다천막을 찾아가니 해시계님, 보리오빠, 갑천뜀바기, 소크라테스 등 몇 분이 나와 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이어서 부산의 대빵이신 금정산지기님, 푸른나루, 철인, 파워맨, 노고운해,

님등이 보였다.


인사를 나누고.........

일지에서 한 번이라도 서로 이야기를 나눈 분들은 쉽게 다가서지는데 닉네임은 자주 보고해서 알아도 방문이 없었던 분들에게는 서먹서먹함을 느꼈다.

평소에 부지런히 인사를 닦아야하는데........


이어서 미사에 참여를 했다.

가톨릭마라톤 동호회 회장이신 최신부님과 대전에서 사목하시는 신부님 두분이 집전을 하셨고........

지난 2월 초순의 사고 이후로 석 달 가까이 냉담을 해 온 나는 부끄럽지만 미사에 참여를 했지만 성체를 모시지는 못했고........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났다.

임종 전에도 내게 묵주기도와 미사에 빠지지 말 것을 부탁을 하셨는데.......

참 못난 자식이다.

가끔씩 많이 마셔서 걱정을 끼쳤던 술은 이제 완전히 끊었는데........


이어서 계속 뒤늦게 도착한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진주, 부산 동서들이 모두 왔다.


시간에 쫓겨서 천막 뒤편의 주차장 부근에서 가볍게 움직이다가 스트레칭을 충분하게 하지 못한 채 출발선으로 갔다.

출발선에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준비 운동을 하는 것이 여의치 않았지만 뒤편으로 물러나서 뒤편 빈터 주변을 가볍게 뛰어다녔다.

이어서 출발 신호.

아이고, 다 나가는데 몇 분이 걸리는 많은 참가자들.

벌써 선두는 한참 돌아나간다.

출발을 하니 걸리는 사람들이 많다. 느리게 뛰면서 여럿이 옆으로 죽 늘어서서 뛰니 뒷 사람에게 방해가 된다. 다리를 건너는데 사람 사태를 만난 것 같다.


페이스고 뭐고 그냥 사람들을 헤치고 허겁지겁 뛰다보니 5킬로 지점의 통과 기록이 23분이다.

또 오버 페이스다.

그런데 경주에서 처럼 숨이 차지 않았다. 다시 록 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10킬로 지점까지 달렸다. 45분이 채 되지 않았다.

오늘 일내는 것 아닌가?

14킬로 지점에 언덕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래 달리면 35분내로도 들어갈 것 같다.

처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데 숨을 헐떡거려도 나는 역시 잘 달린다(?).

14킬로 언덕도 뛸만했다. 1시간 40분대 페이스 메이커들의 조언처럼 손을 아래로 땅을 긁듯이 하니 한결 수월했다.

땀이 비오듯하지만 달리기에는 적당한 날씨다.

옷이 등에 붙는다.

시원하다는 유니폼인데 내가 땀을 많이 흘리는 탓인지 아니면 옷이 광고문구나 실제 보기처럼 시원치 않은 탓인지........


언덕을 넘으니 내리막인데 전민동성당이 눈에 보이질 않는다.

땅에서 손이 하나 올라와서 발목을 잡아 끄는 것 같다.

시계를 들여다 보니 시간은 빨리 지나가는 것 같고........

이러다가는 40분 안에도 못 들어가겠다.

한 발 한 발이 멀다.

내 능력을 알 것 같다.

내가 즐겁게 달리려면 50분 정도를 목표로 달린다면 라스트에서 폼나게 들어갈 수 있을 것인데, 평소에 달리는 속도에 비해서 35분이라는 기대는 무모하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

무거운 몸을 옮기는데 푸른나루님이 "빛나리 힘"을 외친다.


결국은 마지막 급수대에서는 물을 세 번이나 마셨고 얼굴을 잔뜩 찡그린채 결승선을 통과했다.


누가 같이 뛴 것도 아니고 혼자서 하프를 용을 쓰면서 달렸다.

애초에는 40분 페이스 메이커들과 5킬로까지는 같이 뛰고 이후에는 혼자 차고나가려고 했는데.........

뒤에 서서 늦게 출발을 한 탓인지 그 분들의 얼굴도 못봤다.


이것도 좋은 경험이다.


결승선을 통과하고 나니 땀을 많이 흘린 탓인지 몸에 한기가 돌았다.

그래서 옷을 갖고 있는 아내를 찾았는데 보이질 않는다.

한참 뒤에 만난 아내에게 짜증을 부렸다.


나중에 생각하니 좀 미안했다.

아침부터 나와서 기다린 아내인데,

달리는 도중의 참담함을 분풀이 한 것 같아서.


런다천막 아래서 간식을 먹고.......

기념 촬영을 하고........

왁자하니 떠들고 분위기가 좋았다.

와룔산, 무장공비, 런런런, 국사봉도 만났고.........


철인님이 페이스에 대한 좋은 충고를 해주셨다.


특히 음식을 준비하는 회원들과 부인되시는 분들의 수고에 감사함을 느꼈다.

해시계님께만 겨우 간다는 인사만 드리고.........


그리고 동서네들과 다리밑에서 점심을 먹고, 좀 쉬다가........

다시 먼 길을 되돌아 왔다.


오면서 생각하니 역시 뒷풀이가 제 맛인데,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참가하여 고맙다는 인사를 드려야 도리인데, 그리고 얼굴도 좀 더 익히고........


특히 황후 등 여자 회원님들께는 부끄러워서 인사도 못드렸고........


참 좋은 만남이었다.

달리는 사람들이어서 함께 참가를 하니 더욱 좋았고.


이런저런 고마운 분들을 일일이 열거하지 못하지만 반가웠고 달리는 기쁨을 누린 대회였다.


좋은 날씨였고 코스도 좋았는데 능력을 모른 채 기록 욕심을 낸 것이 화근이 되어서 괜히 허덕였을 뿐이다.

그래서 아쉬움도 남는다.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는 스피드 훈련을 통한 무산소성 역치나 젖산역치 수준을 높이는 일이 과제로 남는다. 늘 좁은 운동장만을 도니 무릎 걱정이 앞서서 속도를 느리게만 달렸었고........


이제는 어느 정도 속도를 올려서 달리는 연습을 해야할 때다.

성급하지만 언젠가는 30분 이전의 기록으로 달려보고 싶다.

그런 이후에는 내가 애타게 찾았던,

남들의 페이스 메이커로 즐겁게 함께 달리기도 하고.........


어제 아침 배로 섬으로 돌아와서 늦게 참가기를 쓴다.


다시 또 다른 출발선 앞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