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포돛배 2008. 9. 8. 15:15

 

이렇게라도 달려야 하는가?

 

- 장소 : 고성군 일대

- 시간 : 3시간 26분 25초 (10:03 - 13:29:25)

- 거리 : 42.195km

- 종류 : 대회 참가

- 페이스 : 4'54"/km

- 속도 : 12.26km/h

- 운동화 : -젤 디에스 트레이너 7

 

 

도대체 나는 뭣 때문에 달리는가?

입상하려고?

잘 달린다는 소리를 들으려고?

대회에 참가하여 완주를 하고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주로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기록이 조금이라도 늦어질까 봐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나는 무엇을 목표로 하는 달림이인가 하는 의문이 생길 만큼 부끄러운 행동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서 올해도 고성대회에 참가하였다.

하루 전날 출발을 하여 사천 처가에 들러서 인사를 드리고, 아내는 두 어른이 잡수실 간단한 밑반찬을 해놓고 나서 진주 하늘맑음 동서 집으로 갔다.

진주로 가기 전에 지난번 거제 대회 때처럼 운동을 멈추고 가볍게 걷기만 하고 이틀을 푹 쉬었더니 몸의 상태가 한결 나았다.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하지 않은 부산 동서네 가족까지 응원차 내려와서 네 동서가 다 모였다.

사천 서포에서 공수해 온 싱싱하고 맛있는 굴과 포도주가 있었지만 입만 대는 시늉을 하고 말았다.

대신에 막내 동서인 박서방에게 올해 시작을 할 철인 3종 경기에 대해 궁금한 것을 이것저것 물어보고 조언도 듣고 했다.

모처럼 우리 네 명의 동서가 다 한자리에 모였으니 반가워서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싶었지만 이번 대회는 내 몸의 상태를 시험해보는 대회인 만큼 아쉽지만 참고 또 참았다.

올해 목표로 내 건 200분대 진입을 서울동아 때 이루려면 이번 대회에서 어느 정도는 접근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어깨 부상 등으로 몸의 상태가 썩 좋지 않던 지난해에도 동아에서는 기록이 200분대에 근접했기 때문에 조금만 더 연습을 하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고성은 공설운동장 인근의 학교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활용하여 주차 시설은 좋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여유 있게 일찍 나선다는 것이 내가 꾸물거리는 바람에 여덟 시가 넘어서 출발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운전을 하는 동서인 하서방의 고향이 고성 쪽이라서 지리를 잘 아는 탓에 지름길로 가서 한 시간 전쯤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운동장 근처의 진주마라톤클럽 천막 근처에 가니 우리 포항마라톤클럽 회원 몇 분이 이미 와 있었다. 포항에서 고성은 먼길인데 아내와 아들이 10킬로 부문에 참가를 하였기 때문에 함께 가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하였지만 복잡한 운동장 근처에서 미리 만나 인사라도 하고 옷이라도 갈아입을 수 있었으니 다행이었다.

 

나이 어린 조카들도 모두 5킬로에 참가를 한다고 하여 카메라와 지갑을 갖고 간 것이 부담스러워서 맡길 데가 마땅하지 않아서 이리저리 망설이다 보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스트레칭도 제대로 못하고 운동장 바깥 도로에서 10여분을 천천히 달리다가 스트레칭을 시작하였고 장내 아나운서가 이봉주 선수를 소개하고 내빈들을 소개할 때도 운동장밖에 있다가 출발 시간 몇 분 전에 운동장 안으로 들어갔다.

 

출발 대기 지점의 끝인 맨 뒤쪽에 서서 계속 스트레칭을 했다.

마음은 급한데 평소에 가볍게 연습할 때만큼도 스트레칭을 하지 못했지만 한 달 여 동안을 꾸준하게 스트레칭을 했기 때문에 이전보다 유연성이 많이 좋아졌고 더구나 웨이트 트레이닝도 좀 했기 때문에 초반에 무리하지 않으면 그런대로 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을 다독거렸다.

 

출발 대기선에서 달리는 의사회의 김학윤원장님과 늘 푸근한 웃음으로 인사를 하시는 대구의 조현홍원장님을 만났다.

출발 신호가 울리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운동장을 빠져나갔지만 무리를 하여서 후반에 근육경련이 일어나지 않도록 초반에는 천천히 달리기로 했다.

동해 쪽으로 접어들어서 알렉스님과 달복도사님 그리고 강남마라톤소속의 김종복님도 만났다.

모두 잘 치고 나가셨다.

 

네 시간 반 페이스 메이커를 3킬로 지점쯤에서 만났으니 초반에는 정말 느리게 달린 셈이다. 속도를 그리 높이지 않으니 호흡이 편안하여 적당하게 추월도 하면서 달렸는데 킬로 당 약 5분 페이스였다.

 

목표를 세 시간 반으로 잡았으니 초반 10킬로를 50분 정도에만 달리면 될 터여서 느긋하였다.

 

급수대가 곳곳에 있어서 충분하게 물을 마실 수 있었지만 초반에는 급수대 수가 적고 불과 10여 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에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무척 혼잡스러웠다.

나이 드신 어른들께서 직접 나오셔서 봉사를 하니 고맙기도 하였다.

지난해보다 더 교통통제가 잘 된 주로는 한마디로 달리기 편했다.

다만 목표 시간을 의식하여서 응원을 해주는 분들에게 일일이 다 응답을 못해주니 미안하기도 했다. 순박한 시골 분들이 꾸밈없이 보내는 응원이야말로 바다가 보이는 적당하게 경사진 코스와 함께 고성 마라톤의 큰 매력이다. 차량 통제 때문에 주민들이 짜증을 내는 일이 거의 없으니 참 달리기 편했다.

달리다가 포마클의 윤창호님과 네 시간 페이스 메이커를 따라 달리는 홍준영선생님을 만났다. 그리고 사진잡지 등에서 얼굴을 익혀온 사진계의 거장이신 김영수선생님이 100회 마라톤 클럽의 유니폼을 입고 달리는 것을 보고 인사를 드렸다. 16킬로 지점쯤 가니 이미 반환점을 돌아 힘차게 달려오는 선두 주자가 보였다. 뒤를 이어 달려오는 고수들을 보니 부럽기도 하였다. 우리 포마클의 고수인 안천수님도 열몇 번째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힘을 외쳐주었다. 나는 아직 반환점에 가려면 한참 남았는데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반환점을 돌아서 달려왔다. 이러다가는 중간 정도 순위에 들기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중에 기록을 대충 훑어보니, 지난해와는 달리 올해는 고수들이 대거 참가를 했고 날씨도 무척 포근하고 바람도 없어서 달리기 좋았기 때문에 서브-3가 100여 명도 더 되는 것 같았다.

김영곤, 정종영, 염우정, 신진우, 이상원님 등 우리 포마클의 회원 대부분이 반환점을 나보다 10여분 이상씩 빨리 돌아서 지나갔으므로 무척 부러웠다. 그리고 이런저런 대회에 참가를 하면서 낯이 익은 얼굴들도 많이 보였다.

그러나 반환점을 돌고 난 후반부에 전반부에 앞질러 갔던 많은 사람들을 다시 만났다.

 

후반에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을 추월하면서 달렸다.

내가 속도를 높인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지쳐서 뒤로 쳐진 셈이다.

마지막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전반과 후반의 기록이 거의 일치를 할 만큼 일정한 속도로 달렸다. 페이스를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면서 달렸는데 가끔씩 오버 페이스에 빠져들 때는 스스로 억제할 수 있었다.

 

다만 아는 분들을 만나도 내가 힘이 부치고 시간 계산에 집착하여 30분대 안의 기록으로 골인하는데 몰두하느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내 욕심만 차리면서 달렸기 때문에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이렇게 몰인정하게 무엇 때문에 달리는가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오랜만에 해시계님, 갑천뜀바기님도 주로에서 뵙고 인사를 드렸다.

 

38킬로 지점에서 힘이 좀 모자라는 듯하였지만 달리는 내내 호흡이 골랐고 비록 경사가 얕은 언덕이라고 할지라도 꾸준하게 달릴 수 있었다.

페이스 메이커를 따라 달린 것이 아니라 내 몸의 반응대로 달렸는데 5킬로 페이스를 따져보니 거의 목표에 일치하는 시간대에 달릴 수 있었다.

러닝머신에서 달릴 때 2-3분씩 속도를 많이 높여서 달리기를 반복한 것이 효과가 있었고 오래 하지는 않았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의 덕을 많이 본 듯하여 앞으로 꾸준하게 할 작정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기록을 한 번쯤 당겨보려면 일정한 구간을 빠르게 달리는 스피드 훈련을 좀 더 많이 하여야 할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이번 대회는 연습주인 셈이다.

동아 때는 실전이다.

비록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목표 기록에 도달하려면 초반 페이스를 조금은 더 올려야 한다.

뒤에 기록을 보니 내 기록 근처의 사람들 가운데 반환점을 나만큼 느리게 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후반 기록이 전반보다 1분 정도 더 빨랐으니 전반에 얼마나 조심을 하였는지 알 수 있다.

 

운동장에 들어서서 결승지점까지는 속도를 더 올려서 달렸는데 안전 면에서 볼 때 이건 위험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과시가 아니라 시험이었으니 만족한다.

아내와 아들도 무사히 10킬로를 완주했다고 하여서 기뻤다.

 

철인인 막내 처제와 동서는 회원들과 나란히 손을 잡고 결승지점을 통과하여 많은 박수를 받았다.

 

후반에 주로에 구급차들이 바쁘게 다니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사망 사고가 두 건이나 일어났다고 한다.

언제나 조심하고 경계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달리고 나서 조금 걷고 스트레칭을 하고 저녁에 진주에서도 걷고, 다음날 아침에도 한 시간 정도 걷고 가볍게 조금 뛰었더니 회복이 빠르다.

 

부산으로 바로 내려가려는 동서를 붙잡아서 진주에서 모처럼 네 동서가 생맥주를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11월 초에 순천에서 네 동서 부부대항 하프 기록 겨루기를 약속했다.

네 자매 중에 맏이라서 가장 소극적이던 아내가 이제 본격적으로 달린다고 하니 다행이다.

 

며칠 뒤에 울릉도에 들어가도 걱정이 되지 않는다.

겨울방학을 시작할 때 학교에 러닝머신을 한 대 샀기 때문에 섬에 들어가 있는 열흘 동안에도 마음 놓고 뛸 수 있으니 다행이다.

 

이제 동아다.

이 대회 기록이 내 달리기 목표의 전부는 아니지만 한 과정이니 기다려진다.

남은 기간 동안 꾸준하게 연습을 해야겠다.

 

구간 기록 :

 

5 킬로 25:05:24

10킬로 25:17:78 (50:24:02)

15킬로 22:35:95 (1:12:59:00)

21킬로 30:18:96 (1:43:18:00)

25킬로 18:52:53 (2:02:11:00)

30킬로 23:35:72 (2:25:47:00)

35킬로 25:17:87 (2:51;05:00)

40킬로 24:35:56 (3:15:40:00)

결승지점 10:47:94 (3:26:28:00)

 

공식 기록은 3:26:25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