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포돛배 2008. 9. 8. 11:59

오래 된 글들을 이곳에 옮긴다.

달리지 못하지만 늘 달리는 꿈을 꾼다.

 

- 장소 : 제천 청풍호반 순환 코스

- 시간 : 3시간 35분 9초 (11:06 - 14:41:09)

- 거리 : 42.195km

- 종류 : 대회참가

- 페이스 : 5'06"/km

- 속도 : 11.77km/h

- 운동화 : -젤 디에스 트레이너 713



달리기를 하는 것보다 달리러 가는 것이 더 힘이 든다.

섬에서 때를 맞추어서 나오는 것도 그렇고.........

금요일쯤 나오자면 연가를 내야하는데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9월 1일자로 윗분이 바뀌었는데 아직은 어렵게만 느껴진다.


가을철이라 바다 날씨가 사나워졌고 워낙 변동이 심해서 애간장을 태우는데,

파고가 4미터인데도 배는 들어와서 허겁지겁 나올 수 있었고.........


포항에 도착을 하여 머물다가 경주에 볼 일이 있어서 가서 밤 기차를 타고 올라가서, 새벽 4시가 넘어서 제천에 도착을 해서 찜질 방에서 잠시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 하고........


두어 시간 새우잠을 자고 비가 오는 길을 나서서,

아침 식사는 콩나물 해장국으로 때우고 공설운동장으로 택시를 타고 가서 무료 셔틀 버스에 올랐다.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청풍으로 가는 도중에 창밖을 보니 길이 장난이 아니다.

저 길 가운데 어느 길이 코스일까 궁금증이 일지만 생각뿐이다.

지금까지 참가한 하프 몇 대회조차도 어느 대회든지 한 번이라도 코스를 알고 간 적이 없다.


그냥 멋모르고 달리는 거다.


이번도 예외는 아니었다.

안내가 부실하여 참고할 자료가 되질 못하였고........

풀코스를 달리는 사람조차 몇 되지 않으니 길을 못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우도 든다.


청풍에 도착하니 빗발이 더 거세어졌고 준비하는 사람들만 바쁜데 주차장인지 넓은 공간은 진흙탕이고 경기보조원 아이들이 좁은 천막 안에 오들오들 떨고 앉아 있으니 비를 피할 곳조차 없다.


단체로 온 몇몇 분들이 농담 삼아서 대회 참가 포기 이야기를 하신다.

걱정이 되었지만 멀리 온 것을 생각하면 어떤 경우든지 달리고 볼 일이다.

비가 제법 내려서 스트레칭을 할 공간도 없고 겨우 몇 번 느리게 달리다가 말았는데 이게 화근이 된 탓인지 후반부에 근육통증으로 애를 먹었다.


코스는 초반부터 오르막인데 말로 듣던 것보다는 낫다.

아니 내가 워낙 가파른 울릉도 섬 둘레를 몇 번 뛴 탓에 육지의 가파른 길은 가파른 길도 아닌 셈이다.

그러나 초반 5킬로를 달리고 시간을 재보니 예상보다 2분 정도 빠르다.

3시간 40분을 목표로 대충 목표 시간을 정해서 팔목에 적어 두었는데 경험이 없어 지키지는 못했지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오른쪽으로 호반이 눈에 들어오는 코스였는데 호수 가장자리에 쓰레기가 많이 있어서 눈에 거슬린다.

그 쓰레기들은 모두 우리 사람들이 버렸거나 빗물에 씻겨 온 것이다.


바다나 호수나 쓰레기로 몸살이다.


중간 중간에 달리는 주자들에게 말을 붙이고 소개를 하고 어떤 분들과는 이야기도 나누면서 1-2킬로를 함께 달리는 식으로 그렇게 달렸다. 25킬로 정도 까지는 한 번도 추월을 당하지 않은 셈이다.

하기야 풀코스를 달리는 사람이 워낙 적었으니.........


목표보다 7-8분 정도 빠르게 달렸다.

이러다가 일을 내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고 보스 톤에 참가 인정을 해 주는 공식 기록대회는 아니지만 은근히 3시간 30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흥분이 되기도 하고 닥쳐올 후반이 염려가 되기도 하고........


비가 계속 내렸지만 그런대로 앞으로 쑥쑥 잘 치고 나갔다.

처음 5킬로는 25:04

이후로는 23분대로 고른 페이스였고 언덕이 있은 큰 언덕이 있고 반환지점인(?) 30킬로 지점에서부터 다리에 쥐기 날 것 같아서 속도를 늦추었더니 35킬로까지는 25분이었는데, 문제는 마지막 40킬로까지가 무려 34분이나 걸렸다.

그리고 남은 2.195킬로는 내리막길인데도 이미 다리 근육이 뭉쳐서 13분이나 걸렸다.


달리는 동안에 길 곳곳에 주민들이 나와서 응원을 해 주었고 지나가는 차에서는 창밖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는 큰 소리로 응답을 해 주었고........


첫 도전이라서 의욕이 넘치는 탓인지 한 마디로 컨디션은 괜찮았는데,

문제는 30킬로 이후부터 왼쪽 허벅다리가 불편했다.

이어서 오른쪽 골반 근처가 아팠다.

쥐가 날 것 같아서 염려가 되었다.

속도를 늦추기도 하고 잠깐씩 스트레칭도 하고........


몇 번 긴 거리를 달렸어도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왼쪽 발바닥에 문제가 있으니 그런 것인가.........

초반에 지나치게 방심을 하여 빨리 달린 탓인가.........


이후 10킬로 정도는 뛰다가 걷다가........

몸이 내 의지대로 되질 않았다.

이른바 마라톤 벽이다.

높고 긴 벽이 느껴졌다.

좋은 기록을 얻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훈련을 통해 극복해야 할 부족한 부분이다.

속도 훈련을 하여 무산소성 역치 수준을 높이거나........

그저 꾸준하게 달리는 것 외에는 인터벌이나 가속 훈련 등의 구체적인 그런 훈련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호흡은 연습 도중에 한대로 복식 호흡을 했는데 효과가 있었다.

런다이어리나 마라톤 온라인 등에서 얻는 지식이 달리는데 많은 도움이 됨을 느꼈다.

알고 달리는 것과 모르고 달리는 것의 차이란 참으로 크다.

그리고 직접 경험을 하면서 달리는 것이니 더욱 깨달음이 빠른 셈이다.


결승점에 오니 다리가 뻗뻗해지고........

3시간 35분 정도의 기록일 것 같은데..........

(나중에 스피드 칩에서 문자 메시지로 3시간 35분 9초 58이란다)

그러나 첫 도전인데 뛰다가 걷다가 한 것이 부끄럽지만 그래도 완주는 완주다.

본 사람은 없지만 걷지 않으려는 의지가 꺾였으니 앞으로도 이런 낭패를 몇 번이나 더 겪을는지.........


달리면서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늘 묵주기도를 하시던 마지막 길.

하나 아들인 내가 참 애를 많이 먹였는데,

아니 내 술 버릇 때문에 돌아가실 때 까지도 걱정을 하셨을 텐데 좀 더 일찍 내가 변하여서 살아 계실 때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버지는 틀림없이 덤덤하게 '그리 힘든 다는데 말라꼬 달리노........"하셨을 것이고.


달리는 도중에 비가 그쳤는데 기온도 날씨도 괜찮았다.

칩을 반납하고 나서 국수를 두 그릇 먹고,

셔틀 버스를 타고 제천으로 나가서 목욕을 하고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포항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 내려왔다.


이렇게 되는구나.

몇 년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했던 일인데.


달리기를 시작한 이래로 많은 것을 잃고 또 새로운 것을 얻고........


그토록 사람들 가운데 서서 기고만장하여 마시던 술을 거의 마시지 않으니 어울릴 기회가 잘 없어서 동료나 친구들과의 사이가 멀어지는 듯하지만 달리는 시간에는 나를 돌아보고 일상생활에서 절제란 단어를 수시로 떠올리는 생활이 자리를 잡아 간다.

가족과 떨어져 있어 아쉬움도 미련도 많은 혼자만의 섬생활인데 그래서 달리기는 버팀목이다.


다음에 달리기를 하는데 좀 여유로워지면 너무 극단적으로 치닫는 듯한 지금의 생활 방식을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남과 잘 어울리지 않거나 차가운 인간이 아니라 잘 절제되지만 따뜻하게 사는 길을 택할 수 있을 텐데........


이런저런 생각 속에 달린 내 첫 풀코스 도전.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지금처럼 완주에 의미를 두거나 기록 단축에 치중하기 보다는 즐겁게 달릴 날이 있을 테지.

그것이 진정한 달리기일 텐데..........


비가 많이 내렸고 정신이 없어서 런다 가족으로 보이는 분들을 몇 분 봤으나 인사를 못 드렸다.

김학윤님과 이경두님, 그리고 탐님도 오셨다던데..........


달리다가 땡볕이나 비가 오는 주로에서 봉사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 예사롭지 않다.

내가 선생이어서 그럴까?

이번 대회 때도 일기가 불순한데도 음료 봉사나 응원을 하거나 본부에서 일을 한 아이들이랑 수고가 참 많았다.

아이들이 착하고 친절하여 보기에 좋았다.


그리고 해병대 예비역들도 길 통제를 위해 고생을 많이 하였고........


대회는 준비나 진행을 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미비점이 있었지만 그런대로

만족할 수준이었다.

대회 운영 경비 등의 경제적인 면에서 따지자면 다만 참가자가 적어서 고생을 한 보람이 없을 것 같아서 안타까웠고 미안할 지경이었다.


집에 와서 일기 예보를 검색해보니 바다 날씨가 심상치 않아서,

이제는 또 들어가는 일이 걱정이다.


그러나 춘마 점검주를 겸해서 달린 오늘 하루 달리기 여행은 그런대로 뜻 깊고 의미가 있다.

이제 곧 춘마다.

이번 달리기를 거울삼아 춘마 때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야겠다.

춘마는 이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인원이 오니 초반에는 빠르게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 없을 것이고 후반에는 어떨는지.

그러나 할 수 있다는 자신을 얻은 것이 큰 수확이다.


오랜만에 일지를 공개한다.

그러나 공개 여부에 관계없이 내가 존재하는 한 나는 달린다, 아니 달릴 것이다.

그리고 좋은 자료가 될 일지를 꾸준하게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