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포돛배 2008. 6. 25. 17:15
 

사부곡


무덤 앞을 가리던 소나무 한 그루 베어내

맑은 가을 햇살 한 자락 당겨올 수 있더니

언덕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바다

두 해만에

그 터에 엎드려 숨죽이다가

허리를 펴고 갑자기 자라는 관목들


골짜기를 따라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머물다간 빈자리를 메우는 세월

돌보지 않아도 절로 자라 무성해지는 기억

긴 생애의 나날이 단순한 동작의 되풀이라면

관성에 이끌리는 그리움 따위는 다듬지 않은 채

헝클어져 있어도

잊지 않고

꽃을 피우고 구름도 끌어오고 가끔씩 휘파람을 불기도 하는

생명의 신명

이 언덕 돌무지 속에 누워있지만

깊은 밤 꿈속에서 내 얼굴을 들여다보거나

거실 벽 가운데 걸린 사진 속에서

변화 없는 표정으로 늘 나를 살피고 있는

여전히 그리운

그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