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소쿠리/자작 시 모음

고래 살 속에 숨은 얼음 조각

황포돛배 2008. 6. 25. 15:05
 

고래 살 속에 숨은 얼음 조각


붉은 피를 푹신하게 깔고 해체된 이후

마디 굵은 등뼈는

홀로 깊은 바다 속을 헤엄칠까

볕 좋은 땅 어느 곳에서

시간에 얹혀 삭고 있는가

 

바람 부는 어느 겨울날

바다가 비킨 포구의 난전에 둘러앉아

저마다 한 점씩 얼음 덩어리를 입 속에 밀어 넣으며

질긴 겨울 추위를 씹고 있는데

살 속 깊이 박힌 얼음 냄새

입 속에서 매끄럽게 튀어나온다

살점에 깊이 박힌 고래의 숨소리나

날마다 숨차게 허덕거리는 바다가 양념으로 묻어 있어

씹을 때마다 숨이 막혀 목 울대가 일어섰다 앉을 때

먼저 따라 나서는 바람


바다를 쓰다듬던

매끄러운 검은 껍질 속 지방층

여전히 붉은 속 살덩이 위에 붙어

어금니로 묵직하게 씹어도

목젖 부근에 머물고 있고


서너 해를 장생포 부둣가 비린 냉동창고 안에 누워

숨을 죽이고 산

향유고래

뺏겨버린 향주머니 대신

살 속을 남극 극한의 바다에 떠다니던 얼음으로 채울 때

여전히 그 바다에 깊은 몸 담그고 있는 기억 한 조각

떠다니는 빙산이 되어 겨우 드러내고

나머지 여덟 조각 분량의 몸뚱이

뼈가 시린 바닷물 속에 담그고 견디었나


모서리가 닳은 식탁 위의 묵은 얼음 냄새

토막 나고 잘려

조각조각 식탁 위 접시에 얹혀 따라 다니고

소금기를 풍기며 앉아 있는

말라버린 바다의 눈물 자국

무직근한 육질의 기억

 

결정체로 불빛 아래에서 빛나는

바다를 모두 말린 투명한 소금 덩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