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포돛배 2008. 6. 17. 19:12
 

   밤풍경


    목련은 검은 하늘을 이고 서 있고

    바람은 겨우 분다

    예절바른 이 도시의 사람들은 늦은 시간에 전화를 걸지 않으므로

    불이 켜진 공중전화 박스는 비어있다


    술 취한 사내가 길 한가운데로 거침없이 걸어간다

    중력보다 큰 힘이 사내를 길바닥에 주저앉히려고 하고

    사내는 무너지지 않으려고 버티지만

    자전하는 지구가 사내의 발목을 잡아 넘어뜨린다

    곁에 서 있는 어둠은 구경꾼으로 와서

    말없이 쳐다본다


    이따금 비치는 차량의 불빛 때문에

    긴장으로 마른침을 삼키며 밤잠을 놓친 고양이들이

    거리를 가로지르며

    날카로운 울음소리로 굳어있는 어둠을 갈라놓고 있을 때

   사내는 이미 길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