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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통신 - 봄날 온통 연초록의 나른함이란

황포돛배 2008. 6. 17. 18:58
 

영양통신 - 봄날 온통 연초록의 나른함이란


골짜기마다 바람 앞에 일어서다

미련처럼 남아있던 비탈진 응달의 눈도 마침내 녹아 내린다

간지럼을 태우던 가벼운 바람은

몸 속에 간직했던 희망을 세포로 밀어 올려

생장점 끝 부분 연한 얼굴 만들어

저마다 새로운 얼굴 내밀며 나서는 길

언덕마다 장식처럼 봄꽃 여린 대궁이 등불을 켜고

길 머리에 나와 봄을 기다리며 줄을 서 있고

청기로 가는 구비 길을 넘어가면

살구고개 저녁 꽃은 일월산 옆구리로 숨어드는 해를 지키고 있었지

착한 얼굴들은 하나같이 연초록 꿈을 지니는가

저 어린 꿈들 생채기 나고 주름 생기면

버썩대는 한 잎 낙엽이 되어

다시 꿈 접고 돌아갈 것이지

길 나섰다 돌아오듯

그렇게 쉽게 돌아갈 것이지


길을 나서면 산은 버티고 서서 바람을 모았다가

바라보는 사내 가슴에 바람을 불어넣고

한 낮의 숨막히는 고요함에 나른한 사내는 몸부림을 치지만

바람을 잡지 말 것이며

유혹이 곳곳에 숨은 산에 오르지 말아야 할 것임을

산 너머에 있는 산은 또 다른 산을 불러

산에서 벗어나려는 발길 앞에 놓으니

산에 들어가면 파묻혀 버려야 산의 무게를 견딜 수 있어

저마다 다른 이름 지닌 풀잎과 꽃잎들

대지에서 푸른 물 부지런히 퍼 올리고

햇살에서 아름다운 빛깔 골라 받아들여

떨고 있는 곁에 서서

바라보면

온 산은 고요하나 숨가쁘게 자라나며

말이 없어

늘 그 산으로 있는데


잠을 자도 꿈속에 산

눈을 뜨면 눈앞에 산


길을 나서면 잃어버릴 듯이 가슴 졸이며

그렇게 쉽게 산으로 돌아오는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