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소쿠리/자작 시 모음
사과를 씹으며......
황포돛배
2008. 6. 17. 18:26
사과를 씹으며......
아침에 사과 한쪽을 씹다가
안개 속에 서 있는 오래된 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폭이 넓은 강을 따라 올라오면
마른 모래 가득한 강바닥 옆에
가늘게 흐르는 물줄기 잠시 돌아가는 굽이진 곳
나무 울타리 밖의 돌무더기
강바닥과 금을 그어
경계는 아직도 선명하지만
낡은 창고가 겨우 버티고 서 있는 버려진 과수원 가운데
양로원의 늙은이처럼 쓸쓸한 나무 한 그루 서서
지난 세월을 되새김질하고 있다
지나가는 바람 이름 부르고
굽은 허리 숙여서도 한쪽 어깨는 새들에게 빌려주고
붉은 열매 초파일 등처럼 달고 버티던 지난 시절 힘 자랑 모자라
여전히 주절거리며 밭둑을 걷다가
살을 파고 달려들던 모질던 지난 해 겨울 바람을 만나다
이제 곧 다시 돌아올 때가 되었다는 말에
절로 몸이 움츠려진다
부르지 않아도 오는 계절이 두려워
해소 기침하듯 우우 소리 지르지만
무서운 것들은 이제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스스로 온다
어김없이 주는 것을 받는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마른 알갱이로 내려앉은 습기는
신경통을 몰고 와
온몸에 달려들어 손을 놓지 않고
파삭한 몸뚱이 날로 삭는다.